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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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7호 목차 › 성도들의 간증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437호 · 2008-07-13

작년 겨울에 저의 소속교구 성전이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기뻤습니다. 그러나 제 형편은 딸아이는 아파도 병원에 가지도 못하고, 월세(33개월)를 못내 방을 빼라는 통보를 받고, 아이들 학비가 없어 학업마저 중단시켜야 할 때여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뭔가 하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가슴이 메어오는 듯 했습니다. 너무 부족한 현실이 한탄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집에 와서 보니 아직 채워지지 않은 아주 작은 돼지 저금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갈등이 많았습니다. ‘저거면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갈 수 있고, 저걸 어머니께 드리면 조금이라도 생활하시는데 도움이 될 텐데’ 하는 마음에서였습니다.

그러나 ‘그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라’는 성령님이 주신 감동의 말씀을 따라 수요예배 때 누가 볼 세라 교구전도사님께 몰래 드리고 돌아설 때는 아무 생각이 없고 그냥 홀가분하더군요.

그런 후에 저희 가정에 뜻하지 않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금년 3월에 매일 월세를 주던가 나가달라던 집주인이 당분간 더 살라며, 이제부터라도 집세 밀리지 말라고 했고, 서울대 보라매 병원에서 딸아이의 치료를 해주겠다고 연락이 오는가 하면, 첫째 아들이 마지막 등록금을 못내 졸업을 못할 지경이었는데 학교 지도교수님이 어느 기업체 사장님께 의뢰를 하여 밀린 등록금 3백만 원을 받아 학교에 납부하였고, 졸업과 동시에 삼성 반도체에 취업을 했습니다. 할렐루야! 정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10여 년 전만 해도 대그룹의 인사기획실과 비서실, 감사실에서 승승장구하며 1남 1녀의 자녀를 두고 남부럽지 않은 풍요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찾아온 아내의 가출과 느닷없는 금융권과 사채업자들의 빚 독촉, IMF 등등 온갖 채무 속에 퇴사를 해야 했고, 당시 살던 아파트와 부동산, 동산 등을 정리 하고 난 후, 달랑 7백만 원을 든 채 남의 눈을 피해 야반도주를 해야 했습니다.

보증금 5백에 월 오십만 원짜리로 옮겨 이리저리 취업을 알아보았으나 나이 먹은 신용불량자가 들어갈 자리는 없었습니다. 급기야 집세가 밀리면서 보증금을 까먹고 더 싼 월세 집을 구해 어머니와 아이들을 숨겨놓고는 빚쟁이들에게 쫓기며 하루하루를 불안과 초조함에 시달리면서 지방을 전전하였고, 닥치는 대로 일을 했었습니다. 식사 값도 아까워 굶다 보니 몸이 무기력해지고 급기야 황달과 간경화까지 찾아왔습니다. 사는 것이 힘들어 자살을 시도하고 생각한 것만도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그럴 즈음 주변 사람의 소개로 점을 잘 보는 데가 있다고 하여 처음 발을 들여놓은 무녀의 집에서 제게 신기가 있으니 내림굿을 하여 박수무당이 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무당이 된다는 것이 쉽게 결정이 내릴 일은 아니었으나 무당만 되면 아픈 것도 낫고 부자가 될 거라는 유혹을 쉽게 뿌리치질 못했었습니다.

귀신을 잘 섬기어야 한다고 해서 물그릇과 쌀 단지를 수돗가에 놓고 아침저녁으로 세 번씩 물을 갈아주면서 절을 하고 생활하기 3년째, 아무것도 없는 제게 무당은 또다시 주문을 했습니다. 무조건 쌀을 싸가지고 아무 산이나 올라가서 공을 들이라는 것이지요. 정말 화가 나더군요.

‘내가 죽으면 귀신도 빌어 붙지 못할 테니 그냥 죽어 버리자.’ 하던 차에 그 당시 만나 사귀던 지금의 제 아내가 그 말을 듣더니 교회에 한번 가자고 해서 2005년 1월 15일, 무작정 당진에서 서울로 올라와 그 다음날 16일 아침에 88체육관에 첫발을 들여놓았습니다. 어수선하고 이상하고 낯설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앉아있는데 찬양을 시작하더군요. 남들은 신이 나서 박수를 치고 즐거워하는데 내 눈에서는 왜 그리 눈물이 쏟아지는지….

그 후로 정말 열심히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예수만 믿으면 뭐가 나오느냐고 호통을 치셨습니다. 새벽기도 갔다 오면 어머니는 새벽에 조계사 에서 불공을 드리고 왔다고 했습니다. 힘들고 지쳐가는 세월이었습니다. 이러던 저에게 신학교 입학하라는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래서 무작정 했습니다.

그런데 입학 첫날부터 고난이 오더군요. 점심시간에 밥을 사먹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천원이라는데 그 천원이면 집에 갈 차비인데, 눈물만 나오더군요. 남들 밥 먹는 시간에 성전에 들어가 울었습니다. 일주일을 성전에서 통곡하고 지쳐있을 때 동료들이 어찌 알았는지 밥을 사주더군요. 급기야는 총회장 목사님의 지시로 신학교 밥값을 안 받는다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또 집사람이 지역광고지를 보고 찾아간 곳에서 다음날부터 출근을 하라고 했는가 하면, 작년 부활절에 교회에 가려 하는데 어머니께 전화가 왔습니다. “너희 교회도 계란주냐?” 하길래 “그럼 드리지요.” 하면서 지나가는 말로 “어머니가 가시면 한판 얻어드릴게, 가실 겨?” 했는데 가자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 74년 인생에 첫 교회나들이였습니다.

현재 제 기도제목은 어머니와 저의 아들, 딸이 성령을 받고 구원과 영생을 얻는 것이고, 생활보호대상자 임대주택에 당첨되는 것과 딸아이가 대학을 진학해야 하는데 등록금문제를 놓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기도할 수 있고 제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문제가 있습니까? 사실 문제가 없는 가정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걱정하지 마세요. 기도할 수 있으니까요.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을 하십니까? 우리 아버지 되신 하나님은 우리의 신음하는 소리까지 다 듣고 계십니다. 우리의 필요를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니 염려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그분께 아뢰세요. 고난과 환난 중에도 나에게 평강으로 위로하시는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주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정일 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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