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운명을 낳는다 ( 막 9:23 )
목회 초기에 제 몸무게가 56kg까지 내려간 일이 있습니다. 왜 그랬느냐 하면 제가 예수님처럼 3년만 목회를 하고 세상을 떠나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딱 3년만 멋지게, 혼신을 다해 목회를 하고 주님 곁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하니까 안 먹고, 안 자게 되더라고요.
그러니 얼굴에 광대뼈가 나오고, 바람 불면 휘청거릴 지경까지 되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제 키가 175cm인데, 56kg 이었으니 뼈만 앙상했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다 생각했습니다. ‘내가 생각을 잘못해도 한참 잘못했구나. 자식이 3년만 살겠다고 하면 어느 부모가 ‘그래라’ 하겠는가. 부모 마음이 갈가리 찢어지지 않겠는가. 우리 아버지 하나님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 때문에 마음이 무지 아프겠구나.’ 그래서 생각을 고쳐먹고 건강을 찾았습니다.
지금은 우리 성도들이 저더러 120살까지 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이 말이 좀 과하다싶었는데, 어디를 가나 꽃 120 송이를 가져다주는 우리 성도들에게 어느 새 세뇌가 되었나 봅니다. 이제는 저도 120살까지 살아야겠다 싶은 게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을 하고 나니까 ‘120살까지 산다면 이제 겨우 절반의 인생을 산 것이구나. 한창 때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러니 힘이 나지요. 그래서 내친 김에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나왔던 배도 많이 들어갔습니다. 늘 다리에 힘이 없었는데, 틈나는 대로 걸었더니 이제는 한참을 걸어도 괜찮습니다.
생각이란 것이 이렇게 무서운 겁니다. 보이지 않는 생각이 내 사지 육신을 지배하고 움직이게 하더란 말입니다. 늘 말했듯이 생각이란 씨앗인 것입니다. 토질에 따라 배추가 나고 무가 납디까? 아닙니다. 무엇을 심었느냐에 따라 제각각 결실을 맺는 것입니다. 당신은 어떤 씨앗을 심었습니까?
집회 차 모스크바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한 호텔에 머물렀는데, 수도를 틀어보니 녹물이 나오는 겁니다. 호텔인데 왜 이러나 생각했다가 이건 수도국의 문제가 아니라 파이프라인의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깨끗하게 정화된 물을 수도국에서 보낸다고 해도 파이프라인이 녹슬었으면 맑은 물을 쓸 수 없습니다. 동일합니다. 우리의 생각이 녹슬었다면 어떠한 좋은 조건이나 상황이 온다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겁니다.
두 세일즈맨이 아프리카에 갔습니다. 신발을 팔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아프리카의 사정을 돌아본 후에 본사로 이렇게 전화를 했습니다.
“여기 사람들은 거의 맨발로 다닙니다. 신발 팔기는 그른 거 같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사람은 흥분해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대박 날 겁니다. 신발을 신은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무진장 팔 수 있습니다.”
이렇게 두 사람의 말이 다른 것은 파이프라인이 녹슬었느냐, 안 녹슬었느냐의 차이입니다. 생각이 녹슨 사람은 아무도 신발을 신지 않은 상황이 부정적으로 보인 것이고, 생각이 녹슬지 않은 사람은 동일한 상황이 긍정적으로 보인 것입니다.
그 후로 모스크바에 가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모스크바에 설치된 파이프라인을 교체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모스크바 시민들은 녹슨 물을 마시고 있을 것입니다. 제가 지금 모스크바의 수도 사정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당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면 평생 당신에게 형통함은 없을 것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생각이란 자동차의 핸들을 돌리는 것과 같습니다. 왼쪽으로 갈 것이냐, 오른쪽으로 갈 것이냐, 직진할 것이냐는 운전자가 자동차의 핸들을 어느 쪽으로 돌리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그 이치에는 반박할 여지가 없지요? 그렇다면 생각은요? 어떤 생각을 하느냐 하는 생각의 전환도 자동차 핸들조작과 다를 게 하나도 없습니다.
당신의 결정사항이라는 겁니다. 당신이 왼쪽으로 핸들을 꺾지 않기 때문에 자동차가 왼쪽으로 못가는 것이지 자동차의 문제가 아니듯, 당신이 행복의 길, 성공의 길로 가지 못하는 것도 당신이 그쪽으로 당신의 생각을 전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 탓도, 당신의 운명 탓도 아니란 말입니다. ‘잘 살아보자’는 생각으로 전환한다면 당신의 내일은 분명 잘 살게 될 것입니다.
‘나도 병 고침을 받고 말겠다’는 생각이라면 분명컨대 고침 받습니다. 정말 그런지 성경을 한 번 볼까요? 마가복음 5장을 봅시다. 거기에는 열 두해 혈루증을 앓던 여자가 나옵니다. 그녀의 생각은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막5:29)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무리에 섞여 밀리다가 예수의 옷 뒷자락에 살짝 손을 댔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손을 대자 열 두해 동안 낫지 않던 그의 혈루 근원이 다 말랐습니다.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댔을 뿐인데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날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댄 사람이 이 여인 하나였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이 당신에게서 능력이 나감을 아시고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고 묻자 제자들이 “참나, 예수님. 무리가 이렇게 에워싸는데 누가 손을 대었느냐고 물으시는 게 이상한 거 아닙니까?” 했을 정도로 예수님 주변은 난리였습니다.
그렇다면 손을 댄 사람들 모두가 나음을 받았을까요? 아닙니다. 그런데 유독 이 여인만 고침을 받은 것은, 그녀의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에게서 나간 능력은 동일한 것이지만, 낫고자 하는 생각과 부딪칠 때 강한 역사가 인 것입니다. 다시 묻겠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느 방향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생각이란 기차와 레일과의 관계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기차가 제아무리 최신형이라고 해도 절대 레일을 떠나 달릴 수 없는 법. 당신의 삶이 기차라면 생각은 당신의 레일인 것입니다. 기차가 레일 위로 달리듯 삶도 생각을 토대로 달리게 된다는 겁니다. 생각이 행동을 낳고, 행동이 습관을 낳고, 습관이 운명을 결정하는 법이거든요.
제 목회 23년은 눈 덮인 산야요, 물 없는 사막 같은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모함과 핍박은 물론이고, 집이 없어 온실 속에 지냈고, 갈 곳이 없어 설교를 끝내고 남의 밭에 차를 대놓고 잠을 자야할 만큼 힘들었습니다. 가족 간에도 마찰이 심했고, 교회도 깨진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픈 경험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세상 부모나 형제가 줄 수 없는 사랑과 풍부함을 온 세계 성도들에게 받고 있고, 명성도 얻었습니다. 사도바울의 표현을 빌리자면 저는 비천에도 처했고, 풍부에도 처해봤으며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궁핍에도 처해봤습니다(빌4:12).
그래서 얻은 것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일체의 비결입니다. 즉 특수한 상황이나 평상적인 상황을 극복할 수 있게 되었고,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승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바탕에는 이런 생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주님이 함께 하시면 어떠한 환경도 이길 수 있고, 어떠한 조건에도 굴하지 않는다는 생각, 곧 믿음이 있었기에 눈 덮인 산야를, 물 없는 사막을 걸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제가 담대하게 귀신을 쫓는 것은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요14:12)는 생각이 밑바탕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 생각이 저로 하여금 사도의 길을 가게 하는 것입니다.
생각만큼 큰 파괴력을 가진 것은 없고, 생각보다 빠른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생각의 전환만큼 쉬운 것도 없습니다. ‘나는 안 된다.’, ‘나는 못한다.’, ‘이건 불가능해.’ 이런 생각을 버리세요. 나쁜 씨를 뿌렸으면 지금 파내고 다시 씨를 뿌리세요. 파이프라인이 녹슬었으면 지금 교체하세요. 씨를 뿌리고, 파이프라인을 교체하는 것은 힘도 들고 돈도 들지만, 생각을 바꾸는 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나는 할 수 있어.’ 이렇게 바꾸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그 생각이 엄청난 파괴력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가 주신 생각이요, 그 분이 내게 주신 능력입니다. 우리 힘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주님이 주시는 능력 안에서는 모두 가능합니다. 불가능이 있는 것은 불가능이란 생각이 존재할 뿐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외치십시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할렐루야!
사과씨 속의 사과를
헤아릴 수 있겠는가?
생각을 바꾸는데
돈이 드는가? 시간이 드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