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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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6호 목차 › 옹달샘

공짜라고요?

436호 · 2008-07-06

“이봐, 김 대리.”

홍보실 차 대리다. 사무실 식구끼리 점심 먹고 들어가는 참인가 보다.

“차 대리도 점심 먹고 오는 건가?”

“어, 자네도 점심 먹고 오는 길이지?”

“오늘 점심은 뭘 먹었나? 매일 점심 해결하는 것도 예사로운 일이 아닐세.”

그러자 차 대리는 아주 신이 난 듯 말한다.

“나는 오늘 점심 제대로 먹었지. 아주 잘 먹었어.”

“그래? 뭘 먹었는데?”

“오래 간만에 중국음식을 풀코스로 밟아줬지.”

차 대리는 배를 두드려가며 신이 났다.

“풀코스로 먹으려면 가격이 만만치 않을 텐데?”

“공짜로 먹었다네.”

“공짜라고?”

김 대리의 반응에 차 대리는 자초지종을 말한다.

“우리 홍보실 김 부장님 아들이 대기업에 취직을 했대. 대기업 들어가기가 하늘에 별 따긴데 말이야. 그래서 김 부장님이 한 턱 냈어. 매일 공짜로 이렇게 먹었으면 좋겠네.”

마침 계산을 치르느라 늦게 나온 김 부장이 차 대리가 하는 말을 듣고는 한 마디 하며 지나간다.

“차 대리, 우리 아들이 취직해서 나 무리해서 쏜 거야. 자네는 공짜 밥을 먹었다고 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그건 아니지. 자네가 값을 치르지 않았을 뿐이지. 안 그런가? 하하….”

김 부장이 성큼성큼 앞질러 회사로 들어가자 김 대리도 한 마디 한다.

“김 부장님 말이 맞지. 자네가 공짜 밥을 먹은 것이 아니라 김 부장님이 값을 치른 밥을 먹은 것이지. 그건 분명히 공짜라는 개념과는 다른 것 아니겠나?”

“그러게. 말을 듣고 보니 그러네. 하긴 그 중국집에서 그냥 밥을 준 것은 아니니 공짜가 아닌 건 분명하네. 암튼 공짜든, 김 부장이 돈을 냈든 점심 잘 먹은 것은 사실이니 나는 그것으로 됐네. 밥 한 그릇 먹고 너무 깊게 생각하면 소화가 안 돼. 그러니 단순해지자고. 난 돈 안내고 밥 잘 먹었으니 됐지 뭔가?”

“그래, 단순형 인간이 오래 산다고 하더구먼. 자넨 분명히 장수할 거야.”

“하하하….”

우리는 값없이 구원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이 공짜였던가? 절대 아니다. 가벼운 죄를 짓고 보석으로 풀려 나오려고 해도 보석금을 치러야 하는데, 껌 하나를 사도 돈을 치러야 하는데 악한 것들의 손아귀에 있는 우리가 자유를 얻는 값이 공짜일 리 없다. 억압된 우리를 자유케 하는 값이 없을 리 없다. 그것도 한 사람이 아닌, 전 인류를 속량하는 값이니 그 얼마였겠는가?

포로나 노예를 값을 치르고 풀어주는 것 아닌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값없이 팔렸으니 돈 없이 속량되리라”(사52:3). 주님이 우리를 속량하셨다. 주님이 그 대가를 다 치르셨다. 다 지불하셨다. 당신을 십자가에 내놓으심으로 그 값을 대신 내셨다.

수치의 상징인 십자가에 매달려 그 몸이 창과 칼에 갈기갈기 찢기시며 값을 치르셨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 분이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수욕을 참으시며 그 몸에 물과 피를 다 쏟으시면서 우리를 구원하는 값을 다 치르셨다. 그래도 구원이 공짜라고 말할 수 있는가?

값없다 함이 공짜를 말하는 것이 아니며, 값없다 함이 값이 싸다라는 말도 아니다. 주님은 말씀하신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55:1). 구원의 복음, 영원한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복음을 값없이 사라고 하신다. 내가 다 치렀으니 걱정 말고 마음껏 복음을 먹고, 그 복음으로 자유하고, 복을 누리라고 하신다. 그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 얼마나 복된 소식인가.

만일 구원의 값을 치러야했다면 구원은 부자들의 특권이고, 특권층의 점유물이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저 그림의 떡이었을지 모른다. 더욱이 악한 것들은 우리와 거래조차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셨고, 죽으셨고, 다시 사신 것이다.

우리의 구원은 거저 얻은 것이 아니다. 공짜가 아니다. 주님이, 우리를 진정 사랑하는 우리 주님이 이미 다 계산이 끝냈다는 말임을 알자. 그러니 악한 마귀에게 당당하라. 우리를 망하게 하고, 못살게 하고, 병들게 하는 악한 마귀와 그의 추종자 귀신을 쫓아버려라. 계산이 끝났으니 그래도 된다.

그리고 하나 더, 우리가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우리를 속량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보답하는 길은 마지막까지 믿음을 지키는 것이고, 속량이 되었으나 아직 죄 아래서 억압된 자들에게 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리라. 나를 속량하신 예수께 감사하자. 그리고 복음, 곧 우리가 죄에서 자유함을 널리 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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