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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4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오해를 푸는 열쇠는 대화다 ( 잠 18:12~21 )

434호 · 2008-06-22

저수지에 물이 가득한데, 논바닥이 쫙쫙 갈라져있다면 무엇이 문제일까요? 물꼬가 막힌 겁니다. 물꼬를 터야 논에 물을 대는데 물꼬가 막혔으니 저수지의 많은 물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주위에 사람은 많은데, 허심탄회하게 속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어 이 시대의 사람들 마음이 논바닥처럼 쫙쫙 갈라져있습니다. 역시 물꼬를 트는 일이 급선무입니다. 물꼬, 곧 대화입니다. 당신은 가족과 성도와 직장 동료나 부하직원과 물꼬를 트고 지냅니까?

어느 임금이 관원들에게 명을 내렸습니다. “저 우물을 바닥까지 다 퍼내시오.” 임금의 명령인지라 다들 어쩔 수 없이 우물로 가긴 했지만, 우물이란 것이 퍼낸다고 마르는 것도 아닌지라 모든 자들은 우물을 몇 번 퍼내는 시늉만 하고는 다들 퇴청하고 말았습니다. “어차피 우물을 다 퍼낼 수 없네. 내일 임금님께 퍼내도 다시 물이 나왔다고 아뢰면 되네.”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밤이 맞도록 우물을 퍼냈습니다. 동이 터오도록 물을 퍼내던 그 사람의 눈에 번쩍이는 것이 보였습니다. 꺼내보니 큰 금덩어리였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임금께 나아간 관원들은 “열심히 물을 퍼냈었지만, 우물 밑이 보이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임금은 보자기에 무엇인가를 싸들고 서있는 관원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전하, 우물을 퍼내다보니 그 속에서 큰 금덩이를 발견했습니다.” 그러자 임금은 그 사람의 손을 잡으며 “그대가 이 나라를 위해 일할 참된 일군이네. 우물을 길어내듯 백성들의 마음을 오래 길어 내다보면 백성들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알게 될 걸세. 그대를 오늘 부로 우의정에 제수하네.”라며 크게 기뻐했습니다.

저는 작금에 일어난 국민 촛불집회를 보면서 생각이 깊었습니다. 이 문제는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국민의 소리를 경청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 일입니다. 정부가 국민들의 소리를 듣지 않으니 아우성으로 변한 것입니다. 조선시대에 신문고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궁궐 앞 문루에 큰 북을 만들어놓고 억울한 일이 있거나 해결되지 않은 일이 있을 때 이 북을 치면 이를 접수하여 해결해주었던 제도였습니다. 백성들의 소리를 듣겠다는, 민의상달(民意上達)이 그 목적이었던 제도였습니다. 최고의 정치기술은 국민의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언젠가 신임 목사에게 제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성도들이 상담 오면 그저 다 들어줘라. 듣다보면 그 안에 답이 다 있다.” 사실 그렇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상담을 오는데, 잘 살피면 그들은 답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한참 들어주면 제가 처방하지 않아도, 다 진정되고, 다 해결되어 돌아가는 것을 저는 많이 보았습니다.

멀미했거나 체해서 속이 부글거리면 토하거나 똥을 싸면 속이 시원해지지 않습니까? 속이 부글거릴 때 소화제로 됩디까? 안됩니다. 토해내야 합니다. 성도들의 부글거리는 심정이 있을 때 ‘말씀 봐라’고 하지 마십시오. 토하게, 설사하게 두십시오. 속에 있는 말 다하게 두십시오. 그러면 절로 낫습니다.

노사분쟁의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대화의 단절입니다. 사원들의 소리에 귀를 막아버리는 사주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원들의 소리를 경청하면 사원들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엇이 불만족인지 알 것 아닙니까?

듣고 즉시 시정할 것은 하고, 당장 어려운 일이라면 대화로 서로 타협하면 될 것을, ‘개가 짖냐?’는 식이 되다보니 마찰이 일고 결국 머리에 띠를 두르고 투쟁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주 사주와 직원이 대화하다보면 ‘아, 우리 회사 형편이 지금 이렇구나. 우리가 조금 참아야 하겠구나.’ 하고 한 걸음 양보할 것 아닙니까?

떼었다 붙였다 하는 메모 기능의 ‘포스트 잇’을 개발한 3M 회사는 엘리베이터에 메모판을 만들어 건의 사항이나 불만의 내용을 적게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장이나 임원진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면서 사원들의 요구사항이나 희망사항을 보고는 때론 즉시 답을 써주고 가기도 하고, 시정내용을 따로 공고한다고 합니다. 그 회사에 문제가 있을 리 없겠지요.

요즘 가정도 숱하게 깨져 나가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역시 대화의 단절 때문입니다. 가족과 살고 있지만 외로운 겁니다. 마음을 터놓고 말을 나눌 상대가 없는 겁니다. 하루 종일 집안 일한 아내가 직장에서 돌아온 남편에게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좀 하려고 하면 “피곤하다.”고 자버리니, 속이 부글거리지요.

그러니 어쩝니까? 밖으로 나갈 수밖에요. 남편도 그렇습니다. 하루 종일 회사에서 지친 몸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하소연이라도 하려 치면 “돈, 돈, 돈” 하니 술집으로 가는 겁니다. 술집 여자는 돈 때문에 건성으로나마 다 들어주거든요. 거기서라도 심정을 털어놓는 남편이 얼마나 불쌍합니까? 자녀도 그렇습니다. 나름대로 고민이 많은데, 무조건 “공부나 해라”고 하니 누구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습니까?

사실 저도 아이들의 말을 잘 들어준 편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아들이 대화 좀 하자고 제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말을 밤새 들어준 적이 있는데, 그때 깨달았습니다. 내가 너무 아이들에게 대해 몰랐다는 것을요. 그들의 마음에 그런 깊은 상처가 있었는지 전 정말 몰랐습니다.

또 그들이 그만큼 장성했다는 사실도 몰랐습니다. 저는 그저 듣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딱 한 마디 했습니다. “미안하다. 몰랐다.” 그런데요, 그 말 한 마디에 아들 녀석들이 다 됐다는 겁니다. 들어준 것만으로 다 됐다는 겁니다. 다 용서했다는 겁니다. 지금은 외국에 있지만 전화상으로나마 자주 대화를 합니다. 그랬더니 부자지간의 정이 더욱 돈독해졌습니다.

당신은 남편과 대화하고 있습니까? 아내와는요? 성도와 진정한 마음의 교류가 있었습니까? 동료와 부하직원의 말을 경청하고 있습니까? 들어주면 다 됩니다. 다 해결됩니다. 가르치려하지 말고, 훈계하지 말고, 따지지 말고 그냥 들어주세요.

한 세일즈맨이 어느 회사의 CEO에게 계속 편지를 띄웠습니다. 좀 만나달라고 말입니다. 그 일이 쉽지 않음은 물론입니다. 그러나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드디어 그 CEO를 만날 기회가 생겼고, 그가 “10분만 할애해주십시오. 회장님이 어떻게 성공하셨는지 듣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하자, 그 CEO는 자신의 일생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약속한 10분이 훨씬 넘어가자 청년은 “회장님과 약속한 10분이 벌써 지났네요.” 하며 일어서려했지만 그 CEO는 경청하는 청년에게 매료된 듯, “아닐세, 마저 듣고 가게나.” 하며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른 채 이야기하던 회장은 “자네에게 무엇을 해주길 원하나?” 하고 물었습니다. 그는 단지 회장님의 성공담을 듣고 싶었을 뿐이라며 사의를 표하고 그만 돌아가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회장은 그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물었다. 마지못해 “보험세일즈맨입니다.” 라고 답했더니, 회장은 “그래? 그럼 내가 도와줌세.” 하더니 비서를 불러 회사의 보험을 이 청년에게 모두 바꿔들라고 명령했습니다.

저는 ‘이 CEO도 많이 외로웠던 사람이었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늘 ‘예, 예’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에 목말랐을 겁니다. 사실 저도 그렇습니다. 저도 사람인데 속을 털어놓고 싶을 때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다고 성도에게 할 수도 없고….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털어놓습니다.

급한 일에는 소리 높여 말씀 드리기도 하고, 속상하면 울며 아뢰고, 좋은 일에는 찬송으로 말씀드립니다. 그러면 좋으신 우리 하나님은 다 듣고 나서 응답해주십니다. 둘러봐도 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습니까? 우리 아버지 되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 분께 내 심중을, 내 형편을, 내 소원을 아뢰십시오. 우리의 하나님은 은밀히 하는 기도도, 부르짖는 기도도 다 들으십니다.

수가성 여인의 하소연을 다 들어주신 예수님처럼, 우리의 기도를 다 듣고 계시는 하나님처럼 큰 귀를 가집시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약1:19).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다

웅덩이에 물을 빼면

무엇이 있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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