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는 인생을 패망으로 이끈다 (창 4:1~8 )
얼마 전에 박 전(前) 대통령 생가보존회장이 피살된 일이 있었습니다. 곧 범인이 잡혀 취조했더니 그의 말이 “쓰레기를 줍고 있는데, 그 사람이 나를 나쁜 사람으로 몰면서 나가라고 해서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죽였다”고 했습니다. 쉽게 말해 홧김에 사람을 죽인 겁니다.
가인은 최초의 살인자입니다. 왜 그랬나요? 역시 화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창4:5~8).
믿음으로 드린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이 받으셨으나 가인의 제사는 열납하시지 않자 화가 나서 동생을 돌로 쳐 죽인 것입니다. “화났다고 동생을 죽일 수 있느냐?” 생각하시겠지만, 분노란 이렇듯 엄청난 일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분은 잔인하고 노는 창수 같거니와 투기 앞에서야 누가 서리요”(잠27:4). 창수가 무엇입니까? 비가 많이 와서 물이 넘치는 것이 아닙니까? 장마 때 물이 넘치면 사람도, 재산도, 집도 다 쓸어갑니다. 이건 귀한 거니까 안 쓸어가고, 저건 쓸어가도 되니깐 쓸어가는 게 아니라 무조건 다 쓸어간다는 겁니다. 그러니 동생이라고 예외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홧김에 뭐 한다’는 말이 있는 겁니다. 애인한테 차였다고 홧김에 집에 불 지르고, 회사에서 잘렸다고 홧김에 괜히 자동차로 역주행하고 그러는 겁니다. 분노는 질풍노도(疾風怒濤) 그 자체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분노하는 자에게 경고하셨습니다. “모든 혈기 있는 자가 일체로 망하고 사람도 진토로 돌아가리라”(요134:15). 이 경고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그래서 모세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었습니다.
광야에서 떠돌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므리바에 이르러 물이 없다고 불평을 하자 하나님이 모세에게 지팡이로 반석을 쳐서 물을 내라고 하셨습니다. 지팡이를 손에 쥔 모세는 늘 불평을 일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분노하여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내리쳤습니다. 물론 반석에서 물은 솟았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그는 그리도 갈망하던 가나안을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했습니다.
“아론은 그 열조에게로 돌아가고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에는 들어가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므리바 물에서 내 말을 거역한 연고니라”(민20:24). 천하에 온유한 자인 모세도 분노로 인하여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밟아보지 못하는 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분노는 마치 콜라와 같다고 생각됩니다. 콜라를 흔든 후에 바로 따 보십시오. 보나마나 거품이 퍽 올라와 옷도 버리게 되고, 주위가 난장판이 될 것이며, 정작 병 안에는 콜라가 별로 남지 않게 됩니다. 분노가 이렇습니다.
조금 흔들었다고 욱하고 노를 쏟아내면 지금까지 이뤄놨던 모든 것을 순간 잃게 되고,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게 됨은 물론이요, 나로 인하여 주위 사람들이 다 다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지니 그 행위를 본받아서 네 영혼을 올무에 빠질까 두려움이니라”(잠22:24,25). 콜라 거품이 일 때 병을 따면 병을 따는 사람만 콜라가 묻는 게 아니라 옆에 있다가는 콜라가 튀게 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분을 내는 사람 옆에 있으면 분노의 창수에 함께 휩쓸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옛말에도 떡치는 사람 옆에는 가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잘못하다가는 눈 빠질 수 있다고요.
그러나 아무리 흔든 콜라라도 바로 따지 않고 오래 가만 놔두면 거품이 다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거품이 잔뜩 인 콜라를 따려면 병뚜껑 부분을 다섯 번 정도 쳐주면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거품이 다 사라져서 안전하게 콜라를 딸 수 있답니다. 즉 화가 났을 때 길게 숨 다섯 번만 쉬면 격했던 노가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참을 인(忍)자 세 개면 살인도 면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화가 났을 때 홧김에 뭐하지 말고 조금 참으면 콜라의 거품이 가라앉듯 화가 사라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오래 참으라’ 하신 것입니다.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잠15:18).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인 자기를 십자가에 매달아 놓고 조롱하고 모욕하는 자들 앞에서 끝까지 평정심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맞받아치지 않으시고 끝까지 참으셨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2). 그래서 결국 승리하셨고, 당신의 뜻을 이루신 것입니다.
악한 것들은 직접 일을 망가뜨리지 않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분노하게 하여 우리 스스로가 다된 일을 엎어버리도록 유도합니다. 다 된 밥에 코를 빠뜨리게 하고, 아구까지 찬 물을 발로 차버리도록 합니다. 그러므로 자제력, 자기를 통제할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람의 힘이나 능력으로 될 수 없음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실 때, 성령의 충만함을 입을 때 우리는 그리할 수 있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22,23).
살다보면 화가 날 때도 있습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길게 숨을 다섯 번만 쉬세요. 아니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보세요. 그러나 절대 홧김에 일 치르지는 마세요. 악한 것들이 당신을 자꾸 부추길 것입니다. “나가 싸워.” “홧김에 사표 내버려.” “너 화났잖아? 이혼해버려.” 그러나 지금 콜라를 따면 큰일 납니다. 거품이 가라앉을 때까지 조금만 참으세요. 그 때 다시 생각하세요. 화가 가라앉은 다음에 다시 생각하면 그것이 별 것 아닐 수 있습니다. 참기를 잘했다 할 겁니다.
그리고 화가 났더라도 해가 지기 전에 얼른 풀어야 합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엡4:26,27). 마귀가 하는 일이 뭡니까? 쐐기를 박는 일입니다. 갈라놓고, 분열시키는 것입니다. 그 방책 중의 하나가 바로 분을 내게 함으로 갈라지게 하는 것입니다. 아내와, 남편과, 상사와, 성도 간에 분을 내게 해서 등을 돌리게 하는 것입니다. 화가 안 풀립니까? 마귀가 지금 획책하고 있는 겁니다. 마귀에게 속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어서 풀어버리세요.
누군가 주님도 화를 내신 적이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을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그들을 다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자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셨습니다.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는 집을 만들지 말라”(요2:16). 그러나 이것은 분노와 다른 의미의 의분입니다. 그것은 마땅히 내야 할, 책망의 쓴 소리였습니다.
주님의 당부를 들어보십시오. “이것까지 참으라.”(눅22:51).
이 말씀은 주님을 잡으려고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무리와 함께 다가와 입을 맞추자 베드로가 칼을 뽑아 들어 말고라 하는 대제사장의 종의 오른쪽 귀를 떨어뜨리자 주님이 그의 귀를 다시 만져 낫게 하신 후에 하신 말씀입니다.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자들에게까지 참으라는 것입니다. 자신을 잡아죽이려고 왔는데도 분노하지 말고 참으라고 하십니다. 그러니 무엇인들 못 참겠습니까? 아내가, 남편이, 상사가, 부하직원이, 성도가 화나게 해도 나를 죽이러 오는 사람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 분노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겁니다.
콜라 같은 자가 되지 맙시다. 흔들어도 늘 한결같은 생수 같은 자가 됩시다. 그런 자를 통해 하나님은 뜻을 이루실 것이며, 그런 자에게 친구가 더할 것이며, 그런 자가 대업을 넉넉히 이룰 것입니다. 홧김에 일 치르지 마시고, 길게 숨을 쉬세요.
“무릇 혈기 있는 자는 나 여호와가 내 칼을 집에서 빼어낸 줄을 알지라 칼이 다시 꽂혀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겔21:5). 할렐루야.
분노에 대한 좋은 치료약은
조금 늦추는 것이다
자제력 부재 현상은
멸망을 부를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