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사람들은 어떤 말을 했는가? ( 민 13:25~14:23 )
제2차 세계대전에서 유대인들이 대량학살을 당했습니다. 그 수가 600만이나 됩니다. 왜 히틀러는 유대인들을 그렇게 많이, 참혹하게 죽였을까요? 히틀러의 개인적인 감정 때문이었을까요? 아닙니다. 다른 역사적인 이유도 있었겠지만 저는 그 이유를 성경에서 찾았습니다. 마태복음 27장에 보면 빌라도가 예수를 심문하였으나 그의 죄를 찾지 못하자 명절을 기하여 풀어주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선동하여 유명한 죄수, 바라바를 대신 놓아주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했습니다.
빌라도는 아내의 꿈도 있었고 해서 마음이 편치 못했으나 민란이 나는 것을 두려워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놓고 맙니다. 그리고 그가 말하기를 “나는 무고하니 너희가 당하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마27:25). 그 말을 하나님이 들으셨고, 그대로 행하신 것입니다. 자승자박(自繩自縛)인 셈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하나님의 귀에 들린 대로 행하신다고 했습니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민14:28).
말이 곧 씨앗일진대, 꼭 작정하고 심어야만 싹이 납니까? 아닙니다. 억지로 뿌려도, 실수로 뿌려도 싹은 나게 되어 있습니다. 말을 작정하고 하든, 억지로 하든, 실수로 하든 그 말은 하나님의 귀에 들리게 되어 있고, 그대로 싹이 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가나안을 탐지하러 간 12명의 정탐꾼들 중에 10명은 가나안 사람들에 비하면 자신들은 메뚜기와 같다고 했습니다. 그에 반해 여호수아와 갈렙 만은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말을 들으셨을까요? 안 들으셨을까요? 당연히 들으셨습니다. 그래서 그 말대로 해주셨습니다.
자신들을 메뚜기라고 한 10명의 정탐꾼과 그들의 말에 동요한 백성 모두는 메뚜기가 되어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메뚜기는 뛰어봐야 한 철이니까요. 그러나 가나안 사람들을 밥이라 한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사람들을 밥먹듯 진멸하며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다윗과 골리앗이 마주했을 때입니다. 다윗이 손에 막대기와 매끄러운 돌 다섯 개를 들고 나가니 골리앗이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삼상17:43)고 말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더러 개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스스로 자신을 개로 취급한 것입니다. 그러니 개죽음을 당할 밖에요.
그러면 믿음의 사람들은 어떤 말을 했을까요? 다윗은 처참한 지경에서도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시23:6) 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이 싹이 나고 열매를 맺더니 그의 말년이 부하고 존귀했습니다. 욥을 보십시오. 자식이 다 죽고 재산이 다 날아간 상황에서도 그는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1:21) 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이 열매 맺어 그는 갑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고 했습니다.
그의 말대로 사도 바울은 주님이 주신 능력으로 한 없이, 원 없이 주를 위해 평생을 살았던 것입니다. 제가 목회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무실에 ‘세계는 내 교구다’라는 표어를 써 붙였습니다.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그것을 바라보며 읽었습니다. 그랬더니 15년 만에 그것이 정말 이루어졌습니다.
“지난번에 내가 부정적인 말을 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나는 ‘할 수 있다’, ‘성공한다’고 뿌렸는데, 아직 이 모양이네.” 라고 하지 마십시오. 씨를 심었다고 바로 나는 것이 아닙니다. 임신했다고 아이가 바로 나옵니까? 자라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싹이 나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고, 열매를 맺는 시간은 더더욱 필요한 것입니다.
묵묵히 좋은 말, 긍정적인 말, 아름다운 말, 진취적인 말을 심으면, 때가 되면 그 열매가 당신 삶에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우크라이나를 처음 방문했을 때, 저는 참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때 우크라이나 1차 집회를 배설했던 최 목사님은 자기 교회에서 ‘부정적인 말에 면박주기’ 라는 이색적인 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내 팔자에 무슨 저택이야.’ 라고 부정적인 말을 하면, 이 말을 들은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지적하며, 그 부정적인 말이 잘못되었다고 말해주는 운동이랍니다.
그 운동을 일 년 동안 전개했더니 성도들에게서 부정적인 말이 사라졌음은 물론이고, 가난하거나 실패했던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기 시작하여 점차 그들의 말과 생활이 달라지고 윤택해졌다고 합니다. 우리도 이런 운동을 벌어야 할 것 같습니다. 말을 들어보면 너무 부정적인 것이 많습니다. 지난주에 주일 점심식사 문제로 인천교회에서 회의를 하는데, 다들 ‘이러면 안 된다’, ‘저래서 안 된다’ 하는 겁니다. 안 되는 이야기만 하는데, 될 리가 없지요. 그래서 제가 “왜 안 되는 이야기만 하느냐? 되는 이야기를 해야지.” 하고 호통을 쳤습니다. 왜 안 된다는 말만 합니까? 그러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사과 씨를 심으면 사과가 나지 포도가 열린답니까? 안 된다고 심었는데, 안 되는 것이 정상이지요.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뇨 이와 같이 짠 물이 단물을 내지 못하느니라”(약3:12).
성공하고 싶습니까? 성공한다고 뿌리십시오. 내 사전에 불가능이 없다고 뿌리십시오. 주님이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하나님이 당신을 성공 안 시키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안 주는 것이 아니라 당신 스스로가 성공을, 행복을 막고 있는 겁니다.
자꾸 안 된다 뿌리는데 하나님이 어쩌겠습니까?
잘못된 것을 뿌렸으면 싹이 나기 전에 빨리 뽑아내십시오. 이번 과테말라 집회를 마치고 프로골퍼와 한 차례 골프를 쳤습니다. 그런데 그 골퍼가 그날따라 공이 잘 맞지 않았습니다. 공을 치면 자꾸 다른 데로 나가니까 이 친구 왈 “지랄하네.”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이봐, 지랄하네 그러니까 공이 지랄하잖나.” 라고 했습니다. 다음 공도 그의 말대로 공이 지랄을 해서 다른 곳으로 가버렸습니다. 그리고 제가 공을 쳤는데 제가 친 공도 다른 곳으로 날아갔습니다. 그런데 저도 모르게 제가 “지랄하네” 하는 겁니다. 전염된 것입니다. 제가 말을 해놓고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나 저는 얼른 “취소하네.” 라고 잘못 뿌린 씨를 거뒀습니다. 그날 제가 프로골퍼를 이겼다는 것 아닙니까? 왜요? 그의 공은 그의 말대로 계속 지랄했기 때문이고, 저는 취소했기 때문에 공이 제대로 날아갔거든요.
저는 말(言)은 말(馬)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야생마는 스스로 절제하지 못하고 마구 뛰어다니고, 이리저리 발길질을 하며, 아무 것이나 들이박습니다. 타고난 기질대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이 그렇습니다. 길들여지지 않으면 타고난 기질대로 험한 말을 하고, 나쁜 말을 하고, 부정적인 말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담이 죄를 범한 후로 우리의 기질은 거칠어졌고, 부정적인 성향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야생마가 날뛰면 기물이 파손되고 주위사람들이 다치는 것뿐만 아니라 야생마 자신도 다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말이 야생마처럼 날뛰면 주위 사람들은 물론이고, 내 자신도 다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말을 다스려야 합니다. 그러나 말은 사람으로서는 길들일 수 없습니다.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약3:8).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스려질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고, 훈련받으면 악독이 가득한 혀가 풀릴 것이고, 부정이 가득한 혀가 선해질 것입니다. “나는 정말 멋지게 생겼어.”, “당신은 정말 아름다워.”, “너는 세계적인 인물이 될거야.” 이렇게 뿌리십시오. 머지않아 꼭 당신은 당신이 뿌린 씨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좋고 아름다우며, 멋진 열매로 말입니다.
말을 잘 뿌리십시오. 그 말이 바로 당신의 내일이고 미래입니다. 할렐루야!
입을 다스려야
세상을 다스릴 수 있다
말의 입에 재갈을 물리듯
네 입에 자갈을 물려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