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심하지 말게나
여보게,
나는 이런 말을 자주 한다네. “머리 되려고 하지 마라.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머리 아프다”고. 사실 많은 성도들을 관리하고, 교회 내의 많은 문제와 직면해야 하는 내 입장으로서는 머리가 상당히 복잡하다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고, 70여 개국을 돌아봐야 하는 내가 근심거리가 왜 없겠나? 그래서 때론 밤이 맞도록 부심하기도 하고, 고뇌하기도 하지.
그런데 말일세, 그렇다고 달라질 것이 없다는 거지. 근심하면 그나마 없는 머리카락만 빠지고, 얼굴에 굵은 주름만 더해질 뿐 결과는 같다는 거야.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이것일세.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벧전5:7).
나는 기독교는 맡기는 종교라고 생각하네. 타종교가 스스로 해답을 찾아가는 고행의 종교라면, 우리는 맡길 상대가 있기에 의탁하는 종교라고 생각하네.
그러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해결하실 분이 있는데, 왜 고심하고 근심하는가 말일세.
언젠가 내 큰 아들 녀석이 고민거리가 하나 있었나보네. 그것을 가지고 끙끙 앓고 있는 것을 본 둘째 녀석이 바로 해결을 해줬다더군. 어떻게 했는지 궁금한가? 둘째 녀석이 제 형에게 그랬대. “왜 형은 고민하고 있어? 아버지한테 말씀드리면 되지. 아버지가 어련히 알아서 해주시지 않겠어?
아버지 능력에 그 정도 일도 해결 못하실 거 같아?” 큰 아들 녀석은 제 깐에는 스스로 해결해 보려고 고민하고 번민한 거지. 그런데 둘째 녀석이 내게 맡기라고 한 거야. 그래서 내가 해결해 주었다네. 그 녀석에게는 그것이 큰 고민거리였지만, 내게는 대수롭지 않은 거였거든. 동일하다네. 우리에게는 생사가 오가는 문제가 하나님께는 아주 간단한 문제지. 그러니 그 분께 맡기면 만사 오케이 된다는 거야.
여보게,
왜 근심하는 줄 아는가? 내가 하려고 하니까 그러는 거야. 내가 해결하려고 하니까 근심하고 고민하고 번뇌하는 거라네. 그러지 말고 맡기게나. 하나님이 맡기라고 하는데 굳이 자네가 끼고 있을 게 뭐람? 아버지가 무거운 가방 들어준다는데 굳이 자기가 들고 가는 어리석은 자처럼 굴지 말게. 그래놓고 팔 아프다고 하면 아버지가 뭐라 하실까? 잠언의 말씀을 들어보게.
“근심이 사람의 마음에 있으면 그것으로 번뇌케 하나 선한 말은 그것을 즐겁게 하느니라.” 지나친 근심은 낙담과 절망을 부르지. 주님도 말씀하시지 않던가?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열락에 빠진 자는 씨가 가시떨기에 떨어진 자라고 말일세. 그러니 신앙을 포함해서 모든 것에 열매를 기대할 수 없지.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맡기고 기뻐한 것처럼 자네도 이제 근심을 털어버리게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