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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예배의 성공이 곧 모든 것의 성공이다 ( 요 4:23~24 )

416호 · 2008-02-14

제가 몇 년 전에 뇌출혈을 일으켜 거의 실명위기에 처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가 맞을 짓을 했습니다. 외국 집회 중에 여러 가지 복잡한 일로 노심초사하고 있었는데, 속을 썩이던 어느 목사가 의논도 없이 일방적으로 예배시간을 잡아 놓고는 와달라고 했습니다.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있던 저는 그에게 화를 버럭 냈습니다. 그러나 잡아놓은 예배시간이라 어쩔 수 없이 마지못해 끌려가서는 정말 대충 예배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왔는데, 바로 그 날 밤에 뇌출혈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께 한 방 얻어맞은 겁니다. 예배를 대충 드린 대가지요. 저는 하나님께 회개했습니다. 다윗이 침상이 젖도록 울며 회개했듯이 저도 울며 회개했습니다. 그 후로 저는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예배에 임합니다. 사람 수에 괘념치 않고, 장소에 상관하지 않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정말 최선을 다해 예배를 드립니다. 마치 구약시대에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는 심정으로, 이 예배를 하나님이 흠향하지 않으시면 죽는다는 심정으로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해 예배에 임합니다.

우리 모두가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예배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낯을 뵙는 것 아닙니까? 그 분께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 것이고, 그 분이 하시는 말씀을 듣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어찌 소홀할 수 있답니까? 그 분은 만왕의 왕이시오, 우리의 창조주 되시며, 만물의 주관자가 되시는데요.

복 받기를 원하십니까? 올해 이삭이 누린 것처럼 당년에 백배의 축복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예배에 성공하십시오. 예배의 성공은 모든 것의 성공입니다. 부(富)와 장수와 명예가 다 그 분으로부터 말미암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예배가 하나님을 감동시키기기만 하면 당신은 부와 장수와 명예를 손에 쥘 수 있습니다. 영생은 두말할 것도 없고요.

솔로몬을 보십시오. 그가 어떻게 은을 돌덩이처럼 쓰는 복을 누렸나요? 그가 어떻게 장수를 얻었고, 그가 어떻게 지혜를 얻었나요? 진실한 예배를 통해서 입니다. 솔로몬이 드린 일천 번제가 곧 예배입니다. 그는 번거롭기만 한 제사를 정성껏, 그것도 일천 번이나 드렸기에 하나님이 감동하셔서 그에게 나타나 ‘내가 무엇을 줄꼬?’ 하고 물으신 것입니다(왕상3:5). 당신이 진정과 신령으로 예배를 드리면 솔로몬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이 당신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나사 ‘내가 무엇을 줄꼬?’ 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끝난 것 아닙니까?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그런데 요즘 예배 실태를 보면 정말 가관입니다.

무슨 바람 쐬러 가는 차림새로 느지막이 와서 뒤에 앉아 있다가 축도가 끝나기 무섭게 나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기도시간에도 묵념을 하는 것처럼 눈만 감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손뼉 치고 춤을 추며 찬양을 해야 마땅한데 금붕어처럼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자신은 예배 드렸다고 자위하겠지요. 교회 출석했다고 하겠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 예배를 받지 않으신다는 겁니다. 주님이 그런 자들에게 하는 통탄의 음성을 들어보시겠습니까?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말1:10).

주기철 목사가 전도사 시절, 학교 스승이었던 조만식 선생이 그 교회 장로로 있었습니다.

어느 주일, 조만식 장로가 급한 일로 손님을 만나다 예배 시간에 늦게 도착했습니다. 조만식 장로가 예배당에 도착하여 막 신발장에 신발을 넣으려고 하는 순간, 주기철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장로님, 거기 서 계십시오.” 조만식 장로는 신발을 든 채 그 자리에 섰습니다. 그 상태로 설교가 끝나고 주기철 목사님은 “장로님, 기도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조만식 장로는 신발을 든 채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오늘 큰 잘못을 했습니다. 사람 만나느라 하나님 전에 늦게 왔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을 용서해주시고, 주의 종에게 심려를 끼친 것을 용서해주시고, 장로로서 성도들에게 본이 되지 못함을 용서해주십시오.”

조만식 장로가 매주일 예배에 늦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 한 번 늦은 겁니다. 조만식 장로 같은 분이 늦을 때에야 얼마나 황급한 일이었겠습니까? 그러나 주기철 목사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주기철 목사가 졸렬해서가 아니라 무엇보다 예배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날이 갈수록 제사 드리는 것을 번폐스럽게 생각하고, 또 도적질한 물건이나 저는 것, 병든 것을 헌물로 드리는 등,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치 못한 일들을 일삼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많은 선지자를 통해 그들에게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마지막으로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경고를 하십니다.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주의 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함을 인함이니라”(말1:7).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지 않은 것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며, 불신앙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말라기 선지자 후로 400년 동안이나 이스라엘에 대해 침묵하셨습니다. 침묵이 무엇입니까? 무관심입니다.

당신이 간신히 교회 뜰이나 밟고 가는 것, 그것은 하나님의 단에 더러운 떡을 드림과 같고, 당신이 세상의 일들을 먼저 생각하다 예배에 늦게 참석하는 것은 저는 것, 병든 것으로 헌물함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예배를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왜 안 받으셨을까요? 곧 신령과 진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하나님은 침묵하십니다. 가장 심한 벌이 무엇인줄 압니까? 침묵입니다.

오래전에 제 둘째 녀석이 거짓말을 하기에 제가 그 녀석에게 침묵했던 일이 있습니다. 4개월가량 동안이나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을 걸어도 대꾸하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지나고 그 녀석 하는 말이 “아버지, 차라리 매가 낫지, 침묵하시는 것은 정말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침묵하시기 전에 당신은 깨닫고 진정한 예배자로 거듭나야 합니다.

“정말 교회에 일찍 오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됩니다.”, “와서 열심히 기도하고 찬송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됩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왜 그것이 안 될까요? 이는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더 사랑하는 것에 마음이, 몸이 먼저 가게 되어 있습니다. 당신이 세상을, 권력을, 돈을, 애인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교회보다 먼저 그것을 좇아가는 것이고,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예배 시간에 그 생각으로 가득한 것입니다. 다른 것을 버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선순위를 정하라는 것입니다. 세상 어느 것도, 세상 누구도 하나님보다 먼저 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먼저요, 우선되어야 하나님도 당신을 먼저로, 우선으로 생각하고 챙기실 것 아니겠습니까?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그리고 신앙에 녹이 슬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뒷전인 것입니다. 녹이 슨 총은 방아쇠를 당겨도 총알이 나가지 않습니다. “무딘 철 연장 날을 갈지 아니하면 힘이 더 드느니라”(전10:10). 평상시에 세상만 좇다가, 기도 한 번 안하다가 교회에 오면 기도는 물론이요, 찬양도 나오지 않게 되고, 말씀도 들리지 않게 됩니다. 신앙이 녹슬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늘 기도해야 합니다.

무시로 기도하고 늘 기쁨으로 찬양해야 예배시간에 기도의 줄이 잡히고, 춤을 추며 찬양하게 되고, 말씀이 레마가 되어 내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쪼갤 것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5:17).

예배는 하나님의 낯을 뵙는 것입니다. 삭개오가 주님의 낯을 뵈니 주님이 그 집에 유하지 않습니까?(눅19:5). 당신이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해 예배할 때 하나님이 당신에게 찾아오실 것입니다. 아직도 하나님을 뵙는데 소홀하시겠습니까? 늦게 가시겠습니까? 대충 차려입고 가시겠습니까? 스스로 생각하십시오. 할렐루야!

네가 경고를 무시하면

경고도 너를 무시한다

대접을 받고자 하면

먼저 남을 대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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