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글씨 크기 보통16
413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백배의 축복을 받는 비결 ( 요 11:28~44 )

413호 · 2008-01-23

올해 기필코 백배의 축복을 받기 원하십니까? 올해 반드시 내 땅을 기름지게 하시렵니까? 하나님은 저를 포함한 우리 모든 성도들이 백배의 축복은 물론이요, 모든 면에서 백 퍼센트 회복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그래서 내 땅이 기름지고, 나로 인하여 내 가정과 내 이웃, 그리고 내 교회와 나라가 기름지기를 정말 갈망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다리기만 하면 저절로 백배의 결실이. 백 퍼센트 회복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2008년을 들어서면서 저는 우리 성도들에게 씨를 뿌리는 방법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씨를 뿌려야 날 것이 있다는 것과 좋은 것을 심으면 좋은 것이 나고, 많이 심으면 많이 나는 법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씨를 뿌렸으니 가꿔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씨만 뿌려놓고 방치하고 있으면 벌레가 다 갉아 먹어버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지런히 소독하고 길쌈을 매야 많은 수확을 할 수 있습니다. 이제 그 작업에 돌입해보겠습니다.

작업의 첫 단계는 서로 다투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삭은 그랄 목자들이 우물을 빼앗아도 그들과 다투지 않고 옮겨 다른 우물을 팠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더 큰 우물을 주셨습니다. 그 이름이 르호봇입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우리가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라’는 뜻입니다. 다투지 않았더니 더 큰 우물을 주신 것입니다.

복 받은 자들은 다 다툼을 멀리하고 피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람이 조카 롯과 다툼을 피하여 가나안쪽으로 갔고(창13), 마가의 일로 다툼이 났을 때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갔고, 바나바는 마가와 함께 구브로로 갔습니다(행15:36~41). 그들이 싸우면서 같이 다녔더라면 그들은 결코 복음의 전도자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투는 시작은 방축에서 물이 새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잠17:14). 방축에서 물이 새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습니다. 농사지은 것이며, 집이며 다 쓸어가 남는 것이 하나도 없게 됩니다. 그러니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시비를 그쳐야 합니다. 피하는 게 제일이라는 겁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더러우니까 피하듯, 싸움에 질까봐 피하는 게 아니라 싸움으로 야기될 일들 때문에 피하라는 것입니다.

다투는 것은 씨를 뿌려놓고 밭을 들쑤시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씨가 어떻게 견뎌내겠습니까? 씨가 몸살을 할 것이고, 흙 밖으로 튀어나와 말라 죽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잠21:9). 아내와 남편이 매일 다퉈보십시오. 그 안에 있는 부모, 자녀가 몸살이 날 것입니다. 그러다 가족 중 누군가가 집을 뛰쳐나가는 결과를 초래하겠지요. 다투기 전에 피하십시오. 에서와 야곱이 장자권 문제로 싸움이 일 것 같으니까 현명한 그의 어미 리브가가 야곱을 외삼촌 집으로 피난시키지 않았습니까? 만일 그대로 보고만 있었더라면 가인과 아벨 꼴이 났을 겁니다. 악한 마귀는 원래 사람들 사이에 쐐기를 박는 놈입니다. 다투게 하고 이간질하여 사람들 사이에 쐐기를 박는 것입니다. 다투게 하는 놈이 바로 마귀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틈타지 않도록 화해하고, 다툼을 멀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엡4:26,27).

두 번째 단계는 핑계를 대지 말아야 합니다. 언제 핑계를 댑니까?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때라든지, 일을 해내지 못했을 때입니다. 살다보면 약속을 못 지킬 때도 있고, 일을 해내지 못할 때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럴 때에도 핑계나 변명은 하지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변명할 것을 미리 연구치 않기로 결심하라”(눅21:14).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의 물음을 받자 그는 하와에게 핑계를 댑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3:12). 아론이 금송아지 만든 일에 대해 모세에게 변명합니다.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노라 하기에”(출32:23). 사울왕이 제사장 직분을 침해한 것을 변명합니다. “백성은 나에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은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치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삼상13:11,12). 또 사울은 금지된 전리품을 남긴 것도 변명합니다.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취하였나이다”(삼상15:21). 자신에게 주어진 한 달란트를 활용하지 못한 자의 변명입니다.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마25:24,25). 누차 말하지만 변명은 살아남기 위한 조잡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변명하고 핑계된 자들의 말로를 봅시다. 아담은 에덴에서 쫓겨났고, 우상 숭배자들은 다 도륙되었으며, 사울은 비참한 최후를 맞았고, 한 달란트의 소유자는 어둠으로 다 뺏기고 어둠으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누가복음 14장에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이 이리저리 핑계를 대니 주인이 크게 노하지 않습니까? 잘못을 인정하고 진솔하게 회개하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다윗처럼 말입니다. 나단 선지자의 말에 다윗은 우리아의 처를 범하고 훔친 죄를 자복하고 회개했더니(시32,51) 하나님이 마음이 합한 자라 하지 않습니까? 솔직하게 자신의 죄를 토설하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하나님 앞에, 사람 앞에 진솔해야 합니다.

강화에서 집회를 마치고 대구집회를 가야하는 데 길이 막혀 비행기를 놓칠 위기에 놓인 적이 있습니다. 사실 대구에 늦게 도착해도 저는 할 말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토바이를 잡아타고 대구에 정시에 도착했습니다.

저는 핑계나 변명할 소지를 찾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일을 해결할까를 더욱 고심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답은 나오더라고요.

셋째, 애통해야 합니다. 농사에 물이 절대적이듯, 애통하는 기도가 있어야 열매가 맺힙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5:4). 마리아와 마리다가 오라비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한없이 울었더니 주님도 그들의 눈물을 보시고 우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오라비를 살려주셨습니다(요11). 히스기야가 곧 죽으리라는 통보에 울었더니 하나님이 수명을 15년이나 연장해주셨습니다(왕하20:1~11).

나인성 과부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죽었을 때 통곡하자 주님이 ‘울지 말라’ 하시고 그 관에 손을 대고 ‘일어나라’ 하시니 그 아들이 살아났습니다(눅7:11~17).

남자는 일생에 딱 세 번 울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태어나서 울고, 부모님 돌아가셨을 때 울고, 나라가 망할 때 울어야 한다고요. 그런데 저는 목회를 하면서 정말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내 얼굴에 눈물의 강줄기가 날정도로 울었습니다. 부모님께 쫓겨나고, 아내와 두 아들이 떠났을 때, 교단에서 제명되었을 때, 교회가 깨졌을 때 저는 울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아프고 가난한 것을 보고도 울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저를 위로하시고 더 좋은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우는 것이 힘입니다. 우는 것이 능력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126:5,6). 사람 앞에서야 울 수 없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맘껏 우십시오. 물만 있으면 사막에서도 꽃을 피울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천사를 부리십시오. 천사는 하나님의 심부름꾼이며, 당신을 도우라고 보낸 자입니다(히1:14). 예수 이름으로 명할 때 분명히 당신을 돕고 지킬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믿고 행하면 백배의 축복을 받음은 물론이고 분명히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입니다. 할렐루야!

의미없는 고난은 없고

까닭없는 창상은 없다

목적이 있는 기다림은

오히려 행복한 것이다

413호 다른 글

커버스토리
옹달샘
지혜의 말씀
귀를 기울이세요
Cartoon
붕우칼럼
교단소식
나눔의 지혜
잠언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