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사
생활예배에 거룩함을 나타내어 삶을 기름지게 하자
누구와 함께 있느냐가 대단히 중요하다
‘나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고백하라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군사들이다. 찬송 ‘십자가 군병 되어서(391장)’는 우리의 본분이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분명하게 말해준다. 그런데 우리들은 너무 걱정이 많고, 너무 많은 부분에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이는 세상의 군대도 군인으로서 필요한 기본적인 모든 것들을 다 제공해주는데 하나님의 군대는 어떠한지 묵상해보지 못한 까닭이다. 하늘의 나는 새까지도 친히 챙기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직접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싸우려는 우리를 얼마나 섬세하게 챙겨주시는지 어떻게 모를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느낌이 아닌 우리 믿음의 문제다.
요한복음 1장 12절을 보면 하나님께선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확언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는 자들’이라는 우리들 가운데에는 막상 살아가는 가운데 역경의 순간이란 장면의 주인공이 되어 지면 두 가지의 상반된 반응을 보이는 것 같다. 하나는 그 상황 가운데 삼켜져 여지없이 낙심하는 것이요, 또 다른 반응은 믿는 자로서,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사용할 기회를 얻었다고 기대하는 믿음의 반응이다. 한번은 오사카의 이순종 전도사가 한국으로 나와 함께 서울 88체육관에서 금요철야 예배를 드릴 기회를 갖게 되었다.
내 차에 태워 같이 입구를 지나가게 되던 중 창문을 여니 언제 봐도 사랑하는 우리 성도들이 나와 이순종 전도사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오랜만에 조우한 수많은 성도들과 인사를 나눈 뒤 창문을 닫고 차를 주차한 후 주차장에서 걸어오는데 이순종 전도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목사님, 참 목사님 덕분에 제가 이렇게 많은 사람과 인사를 나누고 많은 환대도 받아보네요. 누구와 함께 있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이 때 난 이마를 쳤다. 그렇다! 누구와 함께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입버릇처럼 ‘나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한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며 그 어떤 곳에서도 나를 안위하게 해주실 든든한 피난처이시기 때문이다.
예배에는 세 종류의 예배가 있다. 첫째는 하나님과 나와의 일대일 관계로 이루어지는 ‘개인예배’요, 둘째는 여러 사람과 함께 하나님을 경배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공급받는 ‘회중예배’이며, 셋째는 회중예배 때 받은 말씀을 가지고 삶 속에서 믿음으로 표현하여 하나님의 사람임을 드러내는 ‘생활예배’가 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평소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하는 개인예배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진리를 공급받는 회중예배에는 열심인 반면 진정한 믿음이 드러나는 생활예배는 경홀히 여기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회중예배 때 받은 은혜와 진리는 그저 그 예배시간동안에만 불타오르고 꺼질 성냥개비가 아니다. 이는 묵직하며 온연히 타오르는 숯불과도 같은 것이다. 그 숯불이란 바로 예수님을 닮은 ‘거룩함’을 말한다. 이 거룩함은 예배가 끝난 뒤 세상을 마주할 때 더욱 그 능력을 드러내어 하나님의 사람과 세상의 자녀를 완전히 구분지어 놓는다.
그렇다면 세상과 나는 간곳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는 나의 거룩한 삶을 위하여 우린 언제나 생활 속에서,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열납 하시는 아벨의 제사를 온전히 드려야 하지 않을까? 거룩한 은혜의 숯불을 지닌 자는 내 맘의 시기, 질투, 원망, 불평과 같은 찌끼를 거룩한 불꽃으로 제거하여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언제나 세워주며 교회를 성령으로 더욱 뜨겁게 한다. 빈부귀천 남녀노소 상관없이 사람을 볼 때에 그 영혼의 가치로 바라본다. 그렇다면 내 안에 하나님의 은혜의 숯불이 타오르고 있는지 확인해봐야 하지 않을까.
생활 속에서 나는 예수님을 닮은 거룩함이 드러나는가, 여전히 분쟁을 일으키며 살아가고 있는가? 사람을 외모로 보는가, 하나님의 눈과 같이 영혼의 가치로 바라보는가? 생활예배에 승리하여 하나님과 동행하고 예수님을 닮은 자로 살아가야 할 것이 아닌가?
이제 초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베드로를 기억하자. 예수님을 바라보면 바다위도 홀연히 걸을 수 있겠지만, 바다의 폭풍을 바라보고 지레 겁을 먹는 순간 바다에 삼켜지고 말 것이다. 요셉을 기억하자. 핏줄에게 팔려 노예가 되고, 억울한 누명으로 죄수가 되어도 그의 시선은 하나님과 하나님이 주신 꿈을 향하여 요지부동이었다.
때문에 그에겐 세상은 이해하지 못할 형통한 복이 임하지 않았는가?
올해 기름진 땅에서 백배의 축복을 기대한다면 먼저 우리 자신을 돌아보자.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것을 뛰어넘어 진심으로 그분을 믿고 신뢰하고 있는가? 현재 눈앞에 보이는 허상에 여전히 두려움을 먹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결코 작지 않다.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잖나? 비바람이 불고 폭풍우가 몰아쳐도 우리의 아버지를 바라보자. 우리의 자녀 된 권세가 하나 둘 회복되는 역사를 체험할 것이다.
내 안에 거룩함을 향하여 달음질하게 만드는 진리와 은혜로 채워지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삶이 변화되어 권세 있는 자녀의 모습이 회복될 것이다. 기어코 내가 서있는 자리가 기름져지고 백배의 축복을 맛보고야 말게 될 것이다. 믿음의 능력과 역사가 올 해 우리 모든 성도들의 삶 가운데 속속들이 드러나고 펼쳐지는 기름진 한 해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