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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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심어야 백배로 거둘 수 있다 ( 고후 9:5~11 )

411호 · 2007-01-11

저는 농사꾼의 자녀입니다. 제 부모님들은 봄이 되면 씨를 뿌려 농사를 지으셨습니다. 논에다 벼농사를 지으시고, 밭에는 고추와 콩, 감자 등을 심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는 다른 집과는 달리 논두렁과 밭두렁에까지 씨를 뿌리셨습니다. “왜 거기에까지 씨를 뿌리느냐?”는 제 질문에 어머니는 “많이 심어야 많이 거두는 거란다.”라고 일축 하셨습니다.

어머니 말씀대로 수확할 때 보면 다른 집에 비해 우리 집의 수확량은 훨씬 많았습니다. 어머니는 그것을 내다 판 돈으로 또 땅을 사들여 더 많은 씨를 뿌렸고, 우리 집은 더욱 번성할 수 있었습니다.

‘심고 거두는 법칙’은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자연의 법칙을 통해 우리에게 계시하십니다. “거두기를 원하느냐? 그러면 심어라. 많이 거두기를 원하느냐? 그러면 많이 심어라.”

이 진리를 파악한 자가 있었느니, 그는 바로 솔로몬입니다. 다윗을 이어 왕위에 오른 솔로몬은 일천 번제를 드렸습니다. 번제가 무엇입니까? 제물을 태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한 번 제사를 드릴 때마다 소 한 마리를 제물로 드렸다면 일천 번제에는 소 천 마리를 드렸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솔로몬이 그냥 은을 돌덩이처럼 쓴 것이 아닙니다(왕상10:23~27). 많이 심었기 때문에 많이 거둔 것입니다. 그가 그렇게 심었기에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고 하신 것입니다(대하1). 하나님이 이렇게 물어보시면 끝난 것 아닙니까? 무엇이든 주시겠다는 말씀이니까요. 솔로몬이 이렇게 심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아비인 다윗을 보고 배웠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전을 위하여 다윗은 몸소 먼저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내가 이미 내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힘을 다하여 예비하였나니 곧 기구를 만들 금과 은과 놋과 철과 나무며 또 마노와 박을 보석과 꾸밀 보석과 채석과 다른 보석들과 화반석이 매우 많으며 성전을 위하여 예비한 이 모든 외에도 내 마음에 내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므로 나의 사유의 금, 은으로 내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드렸노니 곧 오빌의 금 삼천 달란트와 천은 칠천 달란트라 모든 전 벽에 입히며 금, 은그릇을 만들며 공장의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쓰게 하였노니 오늘날 누가 즐거이 손에 채워 여호와께 드리겠느냐”(대상29:2~5).

다윗이 하나님께 드린 헌물은 계산이 힘들 정도로 엄청난 것입니다. 그렇게 심은 다윗이 어떤 복을 누렸습니까? 역대상 마지막 장에는 그가 거둔 풍요로운 결실에 대해 잘 나와 있습니다. “저가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하다가 죽으매 그 아들 솔로몬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대상29:28). 이보다 큰 결실이 어디 있답니까?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고 했는데, 늙도록 부하고, 거기에 존귀까지 겸해서 얻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면 다윗이나 솔로몬이 왕이기 때문에 많이 심을 수 있었다고 공박하실 분을 위하여 제가 평범한, 아니 그 이하의 사람을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사르밧의 과부입니다. 남편 없이 달랑 아들 하나와 살고 있는 가난한 과부, 그것도 기근이 심하여 먹을 것조차 없었던 그 과부가 주의 종인 엘리야에게 무엇을 심었습니까? 자기의 가진 전부를 털어 만든 눈물의 떡이었습니다. 그것을 심자 어떤 열매가 맺혔습니까? 통의 가루가 마르지 않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않았으며, 또 죽은 아들을 되돌려 받는 엄청난 결실을 거뒀습니다(왕상17). 심어야 거두는 법입니다. 그 과부가 드린 것이 적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는 전부를, 자기의 최대치를 드렸습니다.

하나님도 당신에게 가장 귀하고 큰 당신의 아들을 심어 우리를 얻으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마음으로 드려야 할까요? 이는 인색한 마음이나 억지로 하는 마음이 아니라 기쁨으로 드려야 합니다. 잘 생각해봅시다. 사랑하는 연인이 있다고 칩시다. 사랑하면 서로에게 선물을 주고 싶어집니다. 맛있는 것도 사주고 싶고, 예쁜 옷도 사주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그 때 인색한 마음이 듭니까? 아니요, 아무리 비싸도 아깝지 않습니다. 만일 아까운 생각이 든다면 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생색내고 줍니까? 아닙니다. “이거 별거 아니야. 자기 마음에 들어야 할 텐데….” 하면서 줍니다. 사실 자기 딴에는 과용한 것이고, 무리한 것인데 별 거 아니라고 합니다. 왜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드릴 때 어떻습니까? 헌금시간이 되면 지갑을 열어 만 원권이 나오면 밀어놓고 천 원짜리로 골라 동냥하듯 헌금 주머니에 넣지 않습니까? 그것을 하나님이 가납하시겠느냐 이말 입니다(말1:8). 왜 그러는 줄 압니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 최 집사님 부부가 어느 날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제게 꿈 이야기를 했습니다. 최 집사가 꿈에 천국을 가서 주님을 만났는데, 주님이 대뜸 이렇게 말씀하시더랍니다. “너는 지금까지 천국에 예금한 액수가 10,3000원이다.” 순간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답니다. 최 집사는 “그것이 꿈이었으니 망정이지….” 하며 앞으로는 주님께 아낌없이 드리겠노라고 했습니다. 마음에 없는 물질은 위선입니다. 또한 물질이 없는 마음은 무효입니다.

세리 삭개오을 보십시오. 예수를 모신 그가 무슨 말을 합니까?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눅19:8)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그 당시 세리는 면허증 가진 강도나 다름없는 자입니다. 그런 자도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더니 자신이 생명보다 귀히 여긴 재물을 내놓지 않습니까? 그랬더니 주님이 뭐라 하셨습니까?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눅19:9).

많이 심어야 많이 거둔다는 말씀은 액수나 양(量)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치는 자의 마음, 곧 사랑을 측량하시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1장을 보면, 과부가 두 렙돈을 연보궤에 넣는 것을 보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있는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눅21:3,4). 과부는 겨우 동전 몇 개 넣은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누구보다 많은 헌금을 했다고 하셨습니다. 늘 중심을 보시는 주님이 그 과부의 중심을 보신 것입니다. 이렇듯 정성을 다해, 마음을 다해 미리 준비하여 드리는 자의 제물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저는 이번 송구영신을 통하여 이삭처럼 당년에 백배의 축복을 받자고 했습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이 제발 모두 자기 소유의 집을 가졌으면 좋겠고, 자가용도 타고 다녔으면 좋겠습니다. 제발 꾸러 다니지 말고 남에게 주면서 사는 자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밤이 맞도록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주님, 주님이 부요하신 자로서 가난하게 되심은 주님의 가난함을 인하여 우리로 하여금 부요하게 하시려고 하신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왜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난합니까?” 그랬더니 성령님이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심어야 거둘 것이 아니냐?” 맞습니다. 심어야 납니다. 씨를 뿌려야 거둘 것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목사들이 가장 설교하기 힘든 설교를 제가 한 것입니다. 성도들이 시험 들까봐 이 설교를 못하는 것은 아이가 힘들까봐 공부하라는 말을 못하는 것이나 진배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중에 아이가 대학에 못가고 취직할 곳이 없다면 이는 공부하라는 말을 못한 부모 책임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난함은 목사들이 심는 법칙을 가르치지 않은 까닭입니다. 왜 못 가르치는 줄 압니까? 자기가 먼저 심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먼저 심으니 온 백성들이 즐겨냈던 것입니다(대상29:9). 심어야 거둡니다. 많이 심어야 많이 거둡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거짓말을 하시지 않으십니다. 당신이 스스로 정한 법을 초월하시지 않으시고, 당신의 이름을 두고 맹세하심으로 그 뜻이 변치 않음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심고 거두는 이 법은 영원불변인 겁니다(히6:13~18).

지금 심읍시다. 정성껏 많이 심읍시다. 그러면 분명히 올해 이삭과 같이 백배의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마음이 없는 물질은 위선이며

물질없는 마음은 무효다

사랑은 구호가 아니라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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