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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있는 자의 공통점은 담대함이다

405호 · 2007-11-28

벌써 오래 전의 일입니다만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절로 나는 일이 문득 떠오릅니다. 예수 믿기 전에 저는 거의 매일 친구들이나 거래처 사람들과 술자리를 하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은, 술을 마실 때는 호탕하던 사람들이 자리를 파할 때면 괜히 신발 끈을 오래 매거나 화장실이 급하다고 먼저 나가거나 그러는 겁니다. 왜 그러냐고요? 그야 술값을 내지 않으려고 그랬지요. 사실 월급쟁이들이 내기에는 꽤나 부담스러운 가격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저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계산서를 손에 들고 당당히 계산을 했습니다. 제 주머니에 돈이 두둑했었거든요. 돈이란 것이 저를 늘 당당하게 만들더군요.

예수를 믿고, 주의 종이 된 지금도 저는 여전히 담대합니다. 타고난 배짱이라서 그럴까요? 아닙니다. 세상에 있을 때는 제 주머니 안에 있는 돈을 믿음으로 담대했지만, 하나님의 사람이 된 후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하게 된 것입니다.

대전에서 집회를 할 때입니다. 집회 장소로 기독교연합회관을 계약했는데, 아마 대전 기독교 측에서 딴죽을 걸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집회장소를 빌려줄 수 없다는 통보를 해왔습니다. 제가 가만히 있을 사람입니까? 그래서 계약 파기에 따른 이의를 제기했더니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집회 장소를 쓰쇼. 그러나 전기는 끊겠소.” 그래서 제가 “베니스의 상인도 못 읽어봤는가? 전기를 끊는 건 좋다. 그러나 불은 들어오게 해라.” 라고 쩌렁쩌렁한 소리로 응수했더니 그들은 군소리 못하고 장소를 내주었습니다. 제가 뭘 믿고 그렇게 소리쳤을까요? 제가 믿는 것은 오직 나의 아버지 되시고, 나의 주인 되신 하나님이었습니다.

담대함은 이렇듯 믿음에서 비롯됩니다. 믿는 구석이 있어야 두렵지 않고 담대할 수 있는 법이지요. 그것이 돈이든, 지식이든, 빽이든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이 세상 어디에서든, 어떤 상황에서든 담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엡3:12).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전당에 오른 자들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서 또 다른 공통점을 찾는다면 담대함입니다.

빗방울조차 구경하지 못했던 때에 모든 사람들의 비웃음을 이겨내고 방주를 만들었던 노아, 갈 바를 알지 못하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담대하게 본토를 등졌던 아브라함, 또한 자신을 통해 자손이 번성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아브라함이 자신을 제물로 삼으려할 때 도망치지 않았던 이삭, 그리고 환도뼈가 부러지면서까지 하나님의 사자와 싸워 이긴 야곱과 하나님 앞에 득죄할 수 없다고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뿌리친 요셉이 신실한 믿음을 소유한 자인 동시에 담대한 자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또한 모세 역시 담대함이 있었기에 200만이나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생 라합이나 기드온 등…, 더 나열할까요?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히11:32).

위에서 보건대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기에 그토록 담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람들이 어느 경우에, 무엇에 담대해야 할까요?

먼저는 신앙의 위협을 당할 때 담대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이유로 당장 풀무불로 던져질 위기 앞에서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는 담대했습니다. 말 한마디 잘못하면 평소보다 칠 배나 뜨거운 불에 던져질 상황 앞에서 그들의 담력이 어떠했는지 보시죠. “느브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단3:16,17).

대단한 담력입니다. 그것이 어디서 비롯되었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믿음, 즉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건져내시리라는 믿음이 그들을 그렇게 담대하게 만든 것입니다. “내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사43:2). 복음을 위하여 숱한 고난과 핍박을 받은 사도바울의 고백도 곁들여봅시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8:31).

둘째는 죄에 대하여 담대해야 합니다. 이는 죄를 떳떳하게 여기라는 말이 아니라 죄를 숨기지 말고 당당하게 밝히고 회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높게 평가되는 까닭은 죄를 토설하고 회개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아의 처를 취한 후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받은 다윗은 침상을 적시며 하나님께 고백합니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시51:4). 다윗이 어떻게 죄 앞에 담대할 수 있었을까요?

그는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1:9).

셋째로 위기 앞에서 담대해야 합니다. 하만의 궤계로 이스라엘 민족이 멸절될 위기에 처했을 때 에스더의 사촌 오라비인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담대할 것을 촉구합니다. 그 담대함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나온다는 것을 모르드개는 알았기에 사흘 금식을 명했고, 금식 후 에스더는 담대하게 왕 앞에 나가 이스라엘 민족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에4:16).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믿은 것은 화(禍)를 복(福)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이었습니다. “유다 족속아,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이방 가운데서 저주가 되었었으나 이제는 내가 너희를 구원하여 너희로 축복이 되게 하리니 두려워 말지니라 손을 견고히 할지니라”(슥8:13).

넷째, 하나님 앞에 담대해야 합니다.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노하여 진멸하시려는 하나님께 모세는 담대하게 아뢰었습니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 하시나이까”(출32:11). 또한 수로보니게 여인은 귀신들린 딸을 고쳐달라고 예수께 간청했으나 개 취급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막7:28).

모세나 수로보니게 여인이 하나님 앞에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인자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4:16).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왜 담대하지 못하고 두려워 떠는 줄 아십니까? 이는 기도의 부족 때문입니다. 기도가 없는 것은 배터리가 방전된 휴대폰과 같습니다. 하나님과의 전화가 불통이니 두려울 수밖에요. 그러므로 늘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세상에서도 담대하십시오. 저는 자주 이런 말을 합니다. “이자가 무서우면 사업을 말고, 이혼할까 두려운 자는 결혼하지 말라.” 담대하라는 말입니다. 아무리 사나운 개도 눈싸움에서 이기면 꼬리를 내리고, 용감한 자가 미인을 얻는법. 사나운 세상에서, 경쟁의 사회에서 이기는 길은 담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천국만 담대하게 침노한 자의 것이 아닙니다. 세상도 동일합니다.

세상사 일체유심(一體唯心)이라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당신의 후원자이신 하나님을 믿고 담대하십시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시42:5).

의욕을 상실한 자에게서

지휘봉을 뺏어라

난공사에 이익이 많고

난세에 영웅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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