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계질서를 잡아라
여보게,
옛말에 이런 말이 있지. 손자를 예뻐하면 상투 잡힌다고. 귀한 손자라고 그냥 귀엽다고 봐주면 버릇이 없어져서 할아버지 상투를 잡고 흔든다는 뜻이지. 그러나 아무리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손자라 할지라도 버릇은 있게 키워야지, 안 그런가? 잠언에는 이런 말이 있다네. “종을 어렸을 때부터 곱게 양육하면 그가 나중에는 자식인 체 하리라.”
이 말씀은 종을 너무 대접해주고 감싸다보면 자신의 신분을 잊고서는 주종관계를 흐트러뜨리고 위계질서를 무너뜨린다는 거야.
죄의 시초가 바로 자기 자리를 이탈한 천사에게서 비롯되었지 않은가? 자기의 신분을 망각하고 감히 하나님과 비겨보려는 마음에서 반역을 도모하다가 쫓겨난 루시엘 천사장이 바로 사단이라네. 그러니 신분을 잊는 것이 얼마나 큰 죄악을 낳는지 알 수 있지.
어느 장로가 내게 와서 이런 하소연을 하더구먼. 자기네 회사에 우리 교회 성도를 채용했는데, 이 성도가 뻑 하면 이런다더군. “같은 교인끼리 그럴 수 있냐?”고 말이야. 같은 교인이라 이럴 때 봐주고, 저럴 때 봐주고 했더니 아주 노골적으로 그렇게 말한다는 거야. 그래서 내가 뭐라고 했는지 아는가? “잘라버려.” 그랬네. 공(公)과 사(私)를 구별 못하는 자라면, 위계질서를 파괴하는 자라면 당장 잘라내야 하거든.
그 사람으로 인해 일에 차질이 생기면 안 되지 않겠나? 또 어떤 성도도 내게 하소연하기를 자기 친구가 놀고 있기에 회사에 자리 하나를 해줬더니 이 친구가 사원들 앞에서 사장인 자기의 이름을 마구 불러대더래. 그러니 사장 입장이 얼마나 난처하겠는가? 자기 딴에는 사장과 막역한 관계임을 과시하려고 했던 거지. 그래서 어떡하면 되겠느냐고 하기에 동일하게 “잘라버려.” 했네.
여보게,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도 예쁘다고 ‘오냐, 오냐’ 하면 아무 데나 소변 놓고 드러눕고 하지. 그래서 무엇에든 적당한 간격이 있어야 하는 거야. 내가 사람을 향하여 늘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라고 하는 이유가 이것일세. 너무 사람을 가깝게 대하면 사람이란 주제 파악을 못하고 날뛰게 되지.
성경에는 분명히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자세히 말씀하고 있네.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 부부 사이의 관계, 그리고 상전과 종의 관계에 대해 우리가 알기 쉽게 쓰여 있다네. 틈나는 대로 에베소서 6장을 읽어보게나. 읽고 그대로만 행한다면 자네는 사회에서, 직장에서 성공할 것이고, 사람들과 화목하게 될 것이네.
사람에게 있어 자기 분수를 지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인가 보네. 사람 본성이 자고로 높아지려고 하기 때문일 거야. 그러나 자기 신분을 알고 자중할 때 높임을 받는 날이 오지 않겠나? 우리 그렇게 살아 보세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