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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믿음이 깨지면 오해가 생긴다 ( 히12:1~17 )

371호 · 2007-04-05

우리 교회 장로님이 주일오전예배를 드리고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글쎄 우리 딸아이가 저를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무슨 오해를 해요?” 하고 물었더니 장로님이 숨을 한 번 몰아쉬더니 말을 이었습니다. “얼마 전에 결혼한 딸 내외에게 제가 한 달에 50만원씩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다 생각이 있어서 그랬지요. 걔네들이 아끼고 저축해서 언제 아파트 하나 장만하겠어요? 그래도 부모인데 싶어 아파트라도 하나 마련해주려고 그런 건데, 제 속을 모르는 딸아이가 그게 좀 야속했나 봅니다. 아빠는 부자면서 돈 내라고 하느냐고 하잖아요. 보태서 집 사주려고 한 건데요.” 자신의 마음을 몰라준 것 때문에 속이 상한 장로님께 제가 “그러니까 자식이지요. 부모 마음 다 아는 자식이 어디 있겠어요?” 하고 위로를 했습니다.

왜 이런 오해가 생겼을까요? 그 이유는 상대에 대한 믿음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장로님의 딸이 아버지에 대한 믿음이 확고했더라면 “아버지가 50만원 가져오라고 하신 이유가 분명히 있을 거야.” 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저는 장로님과 장로님의 딸의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 하나님과 우리와의 모습일 수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에 대해 오해를 참 많이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하는 오해가 무엇이냐 하면, 고난이나 고통이 우리에게 오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거야. 그렇지 않고는 이러실 수가 없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당신의 오해입니다. 어느 아비가 자식이 밉다고 고통 속에 넣겠습니까? 악한 아비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으로 주려고 할진대, 하물며 당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죽이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이 어찌 피로 산 우리를 미워함으로 고통 속에 밀어 넣으시겠느냐 이 말입니다. 우리에게 오는 고통은 훈련이거나 징계입니다. 아버지 되신 하나님이 우리를 튼튼하게 단련하시려는 것이고, 또 정금같이 쓰시려고 불에 넣으시는 것이며, 바르게 자라라고, 나쁜 길로 가지 말라고 때리시는 것입니다.

왜요? 낳으셨으니까요. 아버지는 자식을 낳았기 때문에 잘 키워야 할 책임이 있거든요. 그런데 그것이 미워서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신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을 볼까요? 아브라함은 백세가 되어 하나님께 아들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을 하나님이 다시 내어놓으라고 했습니다. 그것도 번제 제물로 내어놓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쯤 되면 대부분이 하나님을 ‘무서운 분’ 이나 ‘인정도 없으신 분’이라고 오해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말씀대로 순종하여 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에 올랐습니다. 왜 아브라함은 충분히 하나님을 오해할 수 있었을 상황인데도 묵묵히 그 말씀을 따랐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온전히 믿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아브라함은 한번 하나님을 오해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들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받고 세월이 무수히 흘러도 아들이 없자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자신과의 약속을 잊으신 것이라고 오해했었습니다. 그래서 사라의 종인 하갈을 통해 자식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하나님이 그 약속을 잊으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억측 같았던 하나님의 말씀에도 조용히 순종했던 것입니다.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롬4:20~22).

당신이 하나님에 대해 오해가 있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떨어지면 오해는 절로 발생되게 되어 있습니다. 한동안 제 아들들은 저에 대해 오해가 컸었습니다. 제가 좀 강하게 키우느라 징계를 서슴지 않았거든요. 어릴 적 녀석들은 ‘친 아버지가 아닌가 보다’하고 생각했답니다. 그들은 제가 자기들이 미워서 그런 줄 알았던 겁니다. 그런데 장성한 지금은 아비 마음을 좀 아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 덕에 이렇게 반듯하게 자랐다”고 하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지금 당신이 고난을 받는 것은 하나님이 미워서 때리는 것이 아니라 잘 되라고 훈계하시는 것입니다.

당신에게 향한 하나님의 뜻이 크기에 강한 훈련을 시키시는 것이니 하나님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장교의 훈련이 병의 훈련보다 세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오해하는 것 중의 두 번째는 “하나님이 저것은 하실 수 있는데, 이것은 하실 수 없을 거야.”라고 단정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감기는 하나님이 치유하실 수 있지만 암은 안 돼’ 이렇게 생각하는 것 말입니다. 이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제한하는 것입니다. 왜 이런 오해가 생기느냐 하면 이는 자기 수준으로 하나님을 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인간의 쥐꼬리만 한 지식으로 하나님을 계산하고, 인간의 잣대로 하나님을 재니까 불가능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계속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예수님이 행하신 기사와 이적을 보고도 광야에 모인 무리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자 “주님, 주님이 벙어리를 말하게 하셨고, 귀머거리를 듣게 하셨는지는 몰라도 가게 하나 없는 광야에서, 아니 가게가 있어도 돈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이 많은 사람들을 먹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라며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마9).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하시는 분입니다(눅18:27). 이 예화 한 번 들어보세요. 어느 목사님이 성도들에게 질문했습니다. “여기에 인형과 죽은 사람, 그리고 나무 막대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셋 중에 어느 것을 사람으로 만드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성도들이 자기네들끼리 답을 찾느라 웅성거렸습니다. 그리고 답하기를 아무리 하나님이래도 인형이나 막대기로 사람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고, 죽은 사람을 살린 사건은 성경에도 있으니 ‘죽은 사람’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습니다. “그것은 성도님들 수준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다 가능합니다.” 당신 수준에서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하니까 자꾸 오해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늘 선(先) 순종, 후(後) 이해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오해는 풀어야 합니다. 오해를 푸는 방법은 대화입니다. 아내와 오해가 있을 때 대화로 풀지 않습니까? 여야가 대화할 때 오해가 풀리듯, 하나님과 깊이 대화를 하면 자상하신 하나님이,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 당신에게 다 설명하시고 가르쳐주실 것입니다.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여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욥42:4). 그리고 하나님이 쓰신 성경을 상고하면 오해는 풀리게 됩니다. 거기에 모든 해답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그리고 성령에 충만하면 됩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2:10).

하나님과 오해가 쌓이면 손해 보는 것은 곧 우리입니다.

아브라함이 하갈을 통해 얻은 오해의 산물 이스마엘 때문에 골치 아파했듯, 우리가 하나님을 오해하면 인생이 골치 아파집니다. 축복이 막히고, 치유함이 없으며, 행복이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오해하지 마세요. 그리고 당신이 하나님께 오해가 생길 때면 이 한 구절을 생각하세요. 그러면 오해가 사르르 풀릴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할렐루야!

대화가 없으면 오해가 생기고오해가 길어지면 원수가 된다

진실은 통하는 법이다 가슴을 열고 대화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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