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인생의 목적이 무엇이냐?
집회 마지막 밤을 앞두고 우리는 주일예배를 위해 오부아시 오순절 교회를 방문하였다. 높은 언덕 위에 세워진 예배당 풍경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성전까지 계단을 오르는 동안 어린 꼬마들이 손을 흔들며 달려온다. 그들에게 우리 황인종은 신기한 구경거리인 모양이다.
예배당을 가득 메운 성도들은 한껏 멋을 부리고 앉아있었다. 성가대원들은 학사모에 검은 가운을 걸치고 있어 무슨 졸업식에 온 느낌이었다. 유리창 너머로는 어린 꼬마들이 기웃거리며 목사님의 설교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 정겨웠다.
목사님은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을 가르치셨다.
“많은 사람들이 삶의 목적도 없이 하루하루를 부평초처럼 떠다니고 있습니다. 목적지가 없이 바다 위에 떠있는 배는 제 아무리 큰 함선이라고 해도 표류하다 암초에 걸려 좌초하고 맙니다.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우리를 향한 목적을 갖고 계십니다. 따라서 각자에게 필요한 달란트를 주셨고, 성경을 통하여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성공하는 삶의 지침을 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당신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는 분(빌2:13)입니다. 무슨 뜻이냐면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바라시는 바를 이루시기 위하여 그 소원하는 마음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꿈을 가지고 인생을 설계하고 그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것도 다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인생의 목표를 세우고 그 꿈을 향하여 부지런히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만약 아직도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고 삶을 허비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오늘, 지금 분명한 생의 목표를 세우고 구체적인 실천을 시작하기 바랍니다. 목표만 크다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비록 작은 목표라도 실천에 옮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목사님은 직접 회중 속으로 들어가 성도들에게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질문하셨다. 그런데 하나같이 교과서적인 답만 하고 있었다.
‘하나님을 더욱 잘 섬기고 하나님을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내고 더 신앙생활 잘하고…’
크리스천의 맹점이 여기에 있다. 이는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 크리스천의 기본 덕목이다. 그런데 많은 크리스천들에게 ‘당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질문하면 마치 정답을 외우듯 이렇게 답하곤 한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 앞에 진실하지 못한 태도다. 성경의 소경 바디매오는 정확한 것을 구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하고 외치며 나오는 그를 모두가 벌레 보듯 하며 떠들지 말라고 제지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당당히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그는 그가 원하는 것을 얻었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바디매오의 솔직함이 필요하다. 당장 먹을 것이 없는데, 당장 일자리가 없어 굶게 생겼는데, 병이 걸려 죽게 생겼는데, 왜 솔직하게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 일자리를 주세요, 병 고쳐주세요!’ 하고 하나님께 매달리지 못하는가?
성경에 하갈을 보라. 사막으로 쫓겨나 자식이 죽게 되자 마냥 울어대지 않던가? 한나는 자식이 없는 서러움을 토해내지 않던가? 성경 어느 구석을 보아도 하나님께서 엉뚱한 것을 구한다고 질타한 적 없다. 모두 그들의 소원대로 응답해주셨다. 바로 이분이 우리 하나님 아버지시다.
목사님의 핵심을 찌르는 설교에 모인 모든 성도들의 얼굴이 해같이 빛나고 있었다.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자유 아닌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음은 바로 자녀의 권세를 가지고 세상을 지배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며 자유를 누리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오해하지 말라. 오늘 인생의 분명한 목적을 알고 하나님 앞에 진실한 자세로 나아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