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예수되게 하라 ( 마1:18~25 )
2000년, 선교일행 중 한 명인 한 전도사가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여권을 잃어버린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도 그랬지만, 그 후로 오랫동안 해외에 나가는 일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우리는 남미를 갈 때면 늘 미국을 경유해서 가는데, 미국대사관이 비자를 재발급해주지 않아 한 전도사는 미국에 도착하면 공항에서 혼자 몇 시간씩 대기해야만 하는 고통을 받았습니다.
전혀 도와줄 방법이 없었습니다. 비자가 없으면 미국 입국이 안 되는 것이 미국법이기 때문입니다. 또 그보다 오래 전에 제가 캐나다 밴쿠버에 갔을 때에 집회를 마치고 오펜하이머 공원에서 전도를 하러 나갔는데, 그 곳의 담당자가 종교 형평성을 운운하며 마이크를 사용하는 대대적인 전도는 안 된다고 해서 육성으로 복음을 전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그곳의 법이니 안타깝지만 지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듯 어느 나라나, 어느 단체나 법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 법을 지켜야 그 나라에서, 그 단체에서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이런 말을 잘 합니다. “법 위에 잠을 자지 마라.” 즉 법을 우습게 여기지 말고, 법을 준수하라는 뜻입니다.
천국(天國)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고로 그 나라에도 분명히 법이 있습니다. 미국에 비자가 없으면 제 아무리 유명인사라고 해도 들어갈 수가 없듯이 천국은 예수로 인하지 않고는 그 누구도 절대로 들어갈 수 없는 나라입니다. 그것이 천국법이요, 천국의 주인 되신 하나님의 법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은 그의 자녀와 백성들만 들어갈 수 있는 나라이며, 죄가 없는 정결하고 신실한 자들만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그러니 죄 많고 흠 많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노아의 방주를 연상해보십시오. 노아의 방주에 들어간 자는 노아를 비롯한 그의 가족 8명뿐이었습니다. 그 많은 사람 중에 의인으로 여긴 8명만을 택하여 하나님은 방주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즉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창6:9). 방주는 장차 우리가 들어갈 천국을 예표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천국은 의인들만이 들어가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의인이 되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럼 우리가 의인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방주 밖의 사람들과 다를 게 하나도 없는 죄인이었습니다. 죄악이 관영한 세상을 따라 사는 것이 그렇고, 사특한 마음과 생각이 더욱 그러하며, 악을 꾀하는 것이 그들과 같습니다. 그러니 방주 곧 천국에 들어갈 수 없음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는 마리아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되어 이 땅에 오신 하나님 아들로,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십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은 이 땅에 육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서 보혈을 쏟으심으로 우리 죄를 씻으셨고, 다시 부활하심으로 사망을 멸하시고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습니다. 곧 죄인 되었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의인이 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가 되었느니라”(롬3:23,24). 이제 왜 천국 문이 예수라는 열쇠로만 열리는지 아셨을 것입니다. 죄인에게는 절대로 열리지 않는 천국, 그러나 예수로 인하여 이제 의인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에게 천국 문은 활짝 열린 것입니다.
예수 외에 다른 구원자는 없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4:12). 성 어거스틴이 45세 때에 쓴 ‘고백록’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그의 방황에 대한 회개와 감사가 기록된 책입니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을 아는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그는 다른 무언가를 찾아 헤맸습니다. 그래서 철학에 온갖 정열을 쏟아도 보았고, 마니교에 심취하여 그의 영혼의 갈증을 해소하려고도 했으며, 회의주의에 빠져 영혼의 빈곤을 채워보려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모든 것에서 환멸을 느꼈을 뿐, 더욱 진리에 대해 더욱 목말랐습니다. 그는 결국 하나님만이 생명이시며, 길이심을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와 성자라 불릴 만큼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의 그 무엇도 우리에게 사망대신 영생을 줄 수 없고, 죄인인 우리를 의인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한 분만이 우리의 영·혼·육의 구원자가 되십니다. 제가 하루가 멀다 하고 전 세계로 나가는 것은 이 진리, 곧 예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전하러 나가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지상명령이 바로 이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당신에게 질문 하나를 던지겠습니다. “만일 당신이 지금 죽는다면 천국에 갈 자신이 있습니까?” “당신은 주님이 언제 다시 오시든지 들림 받을 자신이 있습니까?” 만일 당신이 이 질문에 대답하기를 주저한다면 분명하건데 당신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왜 당신이 당당하게 ‘갈 수 있다’고 답하지 못하는 줄 압니까? 그것은 당신에게 예수가 아직 예수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예수님이 당신의 구원자가 되심을 온전히 믿지 못한다는 말이고, 예수로 인하여 당신이 의인됨을 믿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마태복음 24장 40절에 두 여자가 매를 갈다가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한다고 했고, 두 사람이 밭에 있다가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나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한다고 했습니다. 버려둠을 당하는 자가 교회를 안 다니던 사람일까요? 아닙니다. 그도 예수를 알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버림을 당한 것은 그의 심중에 예수가 예수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교회 뜰을 밟는다고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천국 문 앞에서 “나 예수 압니다.” 한다고 문이 열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가 예수됨을 믿는 믿음의 카드가 있어야 합니다.
곧 주님은 다시 오십니다. 다시 오셔서 당신의 피로 산 자녀들을 천국으로 데리고 가실 것입니다. 저는 늘 그 날을 꿈꾸며 그리며 삽니다. 그 날을 생각하면 지금 겪는 고통과 아픔은 정말 별 것 아니구나 싶고, 세상 것이 하나 같이 시시해집니다. 오직 ‘어떻게 하면 더욱 주를 위해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만 가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천국 문을 열면 바로 문 옆에 십자가에서 구원받은 강도와 롯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부끄러운 구원을 받은 자거든요. 우리는 그들처럼 되지 맙시다.
이왕 예수로 인하여 의인이 되었으니 의인답게 신의 성품에 이르고, 이왕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하나님의 자녀답게 권세와 능력으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살아봅시다. 그래서 주님이 오라 하실 때 노아처럼 당당히 그 나라에 들어갑시다. 가서 상도 받고 면류관도 받고, 한 고을의 왕도 되고, 더는 예수님과 한 상에 앉아 떡을 떼고 심판도 합시다.
세상은 예수 외에 다른 길도 있다고 하고, 예수 외에 다른 법도 있다고 합니다. 이는 “뭐 더 좋은 다메섹 강도 있는데 꼭 더러운 요단강에 들어가야 문둥병이 낫느냐?”고 말한 나아만 장군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꼭 요단강에 들어가야 문둥이 병이 낫듯, 꼭 예수라야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롯이 부끄러운 구원을 받은 것은 죄가 죄인 줄 몰라서가 아니라 죄에서 빠져나올 믿음, 세상을 거스릴 믿음이 없어서입니다. 우리는 롯처럼 바람 따라 움직이는 얼음조각 같은 자가 되지 말고, 바람이 어디로 불든 해류를 따라 흐르는 빙산 같았던 아브라함처럼 꿋꿋한 믿음을 가지고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주를 위해 삽시다. 천국에 당당히 입성하기 까지. 할렐루야.
해류를 따라 흐르는 빙산 같은 자가 되라
예수 그리스도를 관념적으로 믿지 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