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은 넘어져도 의인이다
비와 바람을 예수 이름으로 몰아내며 시작된 칸쿤 집회는 2007년 첫 해외집회의 역사로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목사님은 축구장을 가득 메운 인파를 향해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선포하셨다.
“하나님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려 하나밖에 없는 아들까지 죽이신 분입니다. 내 말을 잘 듣기 바랍니다. 내 아들이 걸어가다 넘어졌습니다. 그는 내 아들입니까? 아닙니까? 여전히 내 아들 맞지요? 마찬가지입니다.우리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음으로 모두가 의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 의인이 가다 넘어졌다 칩시다. 그러면 그는 의인입니까? 죄인입니까? 바로 여기서 오해가 생겨 많은 사람들이 넘어지고 있습니다. 여기 100달러짜리 지폐가 있습니다. 구겨지고 발에 밟혀도, 그러다 조금 찢어져도 이 100달러짜리 지폐는 여전히 100달러의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주인이 그 돈을 잘 펴고 찢어진 곳을 붙여 은행에 가져가면 다시 바꿔주기도 하고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살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전히 100달러이기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의인은 비록 실수하여 넘어져도 의인입니다. 돌아온 탕자는 부모의 재산을 허랑방탕하게 다 날려버린 자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습니다. 오직 살아 돌아온 아들이 기뻐 잔치를 베풀어주며 사랑으로 끌어안아주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진정한 뜻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구겨지고 찢어지고 넘어졌어도 여러분은 여전히 하나님의 아들, 딸입니다. 스스로 자포자기 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여러분을 자녀로서 사랑하시고 다시 일어나 새로운 미래를 향해 전진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 하고자 하는 자녀를 향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으시려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계신 분입니다.
조금도 실망하거나 낙심치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다시 일어나 새 역사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들판에 울려 퍼지는 목사님의 외침은 모여든 칸쿤 시민들의 가슴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고동치게 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부르짖음은 더욱 간절할 수밖에 없었다. 모인 모든 무리가 통성으로 기도하자 성령의 뜨거운 임재가 축구장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처처에서 더러운 귀신들이 드러나 소리를 지르며 요동하였다.
목사님은 무리 속으로 들어가 더러운 귀신을 예수 이름으로 쫓기도 하셨고, 휠체어에 앉아 있는 자, 목발을 짚고 있는 자들을 향해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명령하셨다. 고구마 밭에서 캔 고구마 줄기를 따라 무수한 고구마가 딸려 나오듯, 각색 병자들이 나와 예수 이름으로 고침을 받았다. 목발을 들고 걷는가 하면, 벙어리가 말을 하고, 소경이 눈을 뜨는 대역사가 이어진 것이다. 칸쿤에 대소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멕시코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묘했다. 집회 기간 내내 멕시코 전국 각지에서 목회자들이 찾아와 집회를 해달라고 아우성이었다. 2008년, 2009년까지 일정을 잡아야할 지경이었다. 멕시코의 동서남북을 메주 밟듯 돌며 벌써 20개 도시 이상에서 집회를 가져왔다. 멕시코와 결혼했다는 목사님의 표현이 무색치 않게 멕시코는 명실상부한 하나님의 나라로 접수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이 목사님과 세계 선교를 위해 우리 성도들이 기도와 금식으로 끊임없이 후원해준 결과이다. 이를 피부로 느끼는 것은 한국의 주일예배 시간과 멕시코 현지 집회 시간이 거의 일치하는데 바로 그 시간에, 성도들이 합심하여 기도해주는 그 시간에 성령이 더욱 강력하게 역사하심을 직접 목도하기 때문이다. 주의 이름으로 감사를 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