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 (살전5:1~11)
세 명의 석공이 돌을 다듬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그들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지금 뭘 하고 계십니까?” 그랬더니 한 석공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습니다. “보면 모르오? 지금 돌 다듬고 있잖소. 당신하고 말할 기운도 없소. 저리 가시오.” 그 사람은 다른 석공에게 또 물었습니다. “지금 뭘 하시오?” 하자 “일하잖소.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어쩌겠소. 돌가루 마셔가면서라도 일을 해야지.”라고 답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석공에게 다가가 되물었습니다. “뭘 하고 계십니까?” 그러자 그는 환하게 웃으며 “나는 지금 조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돌을 잘 다듬어 아름다운 조각품을 만드는 일이 내가 하는 일입니다. 어서 그 작품을 완성하려면 일을 열심히 해야 한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 ‘미래를 내다보는 삶’은 이렇듯 질주하게 합니다. 고무줄 한 쪽을 묶어놓고 다른 쪽에서 잡았다 놓아보세요. 그러면 묶어놓은 쪽으로 고무줄이 바로 당겨가듯, 목적이 있는 삶과 결과를 아는 삶은 부지런해지고 그것을 향해 몰두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대기업의 연구소는 밤새 불이 켜져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은 바쁩니다. 그들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먼저 그 분야에서 신제품 개발의 실적을 올려야 하고, 그 연구개발한 것이 출시되고 발표되어야 이 나라의 경제가 살고, 기업이 성장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들은 엉덩이가 짓무르도록 연구에 박차를 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루살이 인생들을 보면 어떻습니까? “오늘 먹을 거 있으면 됐지. 그러니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그들은 미래에 거둘 소망과 결실을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에, 오늘이 전부이기 때문에 나태한 것입니다. 거북이가 토끼를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산 위에 있는 깃발을 보고 달렸기 때문 아닙니까?
미개하고 가난했던 싱가포르, 인구 4백만에 국토면적도 서울과 비슷한 그 작은 나라가 어떻게 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대국이 되었습니까? 그 답은 리콴유 수상의 말에 있습니다. “부지런함만이 우리의 살길입니다.” 리콴유 수상은 자원도 없고 면적도 작은 싱가포르가 부유케 되는 길은 오직 부지런함이라고 국민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싱가포르가 부국이 되면 어찌 되는지, 그들이 누릴 혜택이 무엇인지 소상히 가르쳐 그들이 미래를 동경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싱가포르 국민들은 누가 더 채찍질하지 않아도 부지런하게 일을 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1970대 그러지 않았습니까? 새마을운동 당시에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하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일하지 않았습니까? 잘 살아보겠다는 소망이 있었기 때문에 열심히 일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감람산에 올라가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신 것은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찢어 인류를 구원하셔야 하는 목적이 있었기에 그 분은 주야로 기도에 몰두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주님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잠시도 기도하지 못하고 자고 있습니다. 왜요? 목적이 없으니까요. “너희는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마26:40). 사도바울이 굶주리고 매 맞고 헐벗어도 복음에 매진한 것은 그 날의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니라”(고전15:19). 사도 바울은 그 날을 아는 자였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화가 있다고 고백하면서까지 열심히 복음전파를 했던 것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저도 사람인데 왜 쉬고 싶지 않겠습니까만 그 날을 알기에, 저의 목적이 확실하기에 오늘도 내일도 땅 끝까지 달려가는 것입니다. 어떻게 체력을 감당하느냐고 물으시면 저는 이렇게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목적이 있는 자는 피곤하지 않다.”
신앙생활을 나태하게 하는 자는 분명 그 날의 소망을 잃은 자일 것입니다. 불분명하니까 교회에 끌려 나오고, 일 있다고 빠지고, 뻑 하면 시험 들고 그러는 겁니다. 그러나 그 날에 받을 상과 면류관을 아는 사람은 정말 열심히 전도하고 기도하고 봉사하는 것을 봅니다. 그런 성도를 볼 때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사나 신앙생활이나 일반으로 이왕 하는 것이면 열심히 해야 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미치려면 미쳐야 한다.” 어떤 목적에 미치려면(及) 그 일에 미쳐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연 부지런해야 할 밖에요. 열심히 신앙 생활하는 자들을 잘 보세요. 굉장히 바쁩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기도하고 아이들 챙기고, 집안 살림하고 또 전도하고 교회도 가야하니 부지런을 떨 수밖에 없습니다. 기업의 간부들 보세요. 일반 평사원보다 더 바쁩니다. 평사원이 출근하기 전에 임원회의를 해야 하기 때문에 더 빨리 출근해야 합니다. 모 그룹에 전무로 있는 장로에게 물었더니 아침 8시면 임원회의가 시작된다는군요. 그러나 그들이 힘들다고 합디까? 아닙니다. 그들은 회사가 지향하는 목적을 확실하게 알기 때문입니다. 되레 지각하는 자들이 더 죽겠다고 합니다.
야곱은 굉장히 부지런한 자였습니다. 그가 외삼촌 집에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것은 부지런함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내었나이다”(창31:40).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52일 만에 재건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부지런히 일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오로지 이 일에 몰두하여 그들의 원수조차도 놀랄만한 기간 내에 일을 마친 것입니다.
성경은 부지런한 자가 되면 부자가 되고(잠10:4), 사람을 다스리게 되며(잠12:24), 마음의 풍족함을 얻고(잠13:4),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게 된다(히6:11)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반면 게으른 자들에 대해서는 잠자는 것을 좋아하고(잠6:9), 일용할 양식을 위해 일하는 것도 싫어하고(잠12:27), 식사마저 일로 생각하며(잠19:24), 헛된 정욕에는 강하고(잠21:25), 부질없는 핑계가 많으며(잠22:13), 폄론을 하는 자(딤전5:13)로 그 결과는 가난하게 되고(잠10:4),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며(잠10;26), 남의 부림을 당할 것이고(잠12:24), 어려움이 많을 것이며(잠15:19), 그리고 구걸해도 얻지 못할 것(잠20;4)이고, 또 패가망신을 할 것이며(잠18:9), 굶주릴 것이고(잠19:15), 쇠퇴할 뿐 더러(전10:18),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된다(마25:26~30)고 하셨습니다.
이제 사도 바울의 모범을 배웁시다.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과 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노라”(살전2:9). 사도바울에게서 배우기가 힘들다면 앞마당에 있는 개미에게서라도 배웁시다.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간역자도 없고 주권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잠6:7,8). 부지런하다는 것이 꼭 아침형 인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머리를 부지런히 회전시키는 것 또한 포함됩니다. 손발로 일하는 것도 일하는 것이지만 머리로도 일하거든요.
우리 열심히 삽시다. 학생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주부는 살림 열심히 하고, 직장인은 직장에서 남의 시간을 도적질 하지 말고 열심히 일합시다. 그리고 기도도 열심히 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고, 전도도 열심히 해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합시다. 게으름은 곧 악이요, 악을 인격화하면 귀신입니다. 그러니 자신이 게으르걸랑 귀신을 쫓아내고 일어나십시오. 그리고 확실한 목적을 정하고 달려가십시오. 그러면 환희에 찬 미래가 당신에게 달려올 것입니다. 할렐루야!
불 꺼진 항구에 배는 출입할 수 없다
성공은 소망의 열도에 정비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