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보물을 찾아라 (행4:1-22)
얼마 전, 한 TV방송에서 필리핀에서 보물을 찾는 사람들에 대한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방영한 적이 있습니다. 꽤 많은 사람들이 깊은 동굴을 파고 들어가 보물을 찾고 있었습니다. 왜 필리핀에서 이런 일들이 성행 하는가 했더니 2차 세계대전이 종식될 무렵, 일본이 아시아 각국에서 약탈한 금괴와 보물을 필리핀 동굴에 숨겨놓았다는 제보가 있었다는 겁니다. 그들의 말을 빌리면 정말 동굴에서 금괴가 발견되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그들은 거기에 목숨을 걸고 보물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보물만 발견한다면 그들은 돈방석에 앉아 여생을, 아니 자자손손 넉넉한 생활을 할 겁니다. 발견만 한다면요. 그러나 그것이 어디 기약이 있어야지요. 그런데 정말 운이 좋아서 보물을 찾았다고 합시다. 그것이 인생을 완벽하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돈으로 침대는 살 수 있지만 잠은 살 수 없고, 음식은 살 수 있으나 식욕은 살 수 없으며, 옷은 살 수 있어도 아름다움은 살 수 없고, 집은 살 수 있지만 가정은 살 수 없으며, 약은 살 수 있으나 건강은 살 수 없다.’는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결국 돈이 만사를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보물로 죽은 자를 살릴 수 없고, 더욱이 영생을 살 수 없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지요. 그러니 그 보물이 완벽한 인생을 보장한다고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제가 오늘 보물 이야기로 서두를 연 것은 진짜 보물, 보물 중의 보물을 소개하기 위함입니다. 갑자기 눈이 동그래진 것을 보니 보물이 좋기는 좋나봅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께 소개하고자 하는 보물은 바로 ‘예수의 이름’ 입니다.
예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우리의 구원자가 되심을 인정하고 시인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덧붙여 성경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행1:8)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이 회개하고 사모하면 성령을 받게 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권능입니까? 그것은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께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양하신 권세를 동일하게 우리가 예수 이름으로 받는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네게 주셨으니’(마28:18). 권능이란 권세와 능력을 말합니다.
암행어사의 권능이 마패에 있듯, 우리의 권능은 ‘예수 이름’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권능이 어떤 것인지 볼까요? 먼저 구원의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 이름을 통하여만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히7:25). 둘째, 만물을 복종케 하는 권세입니다.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빌3:21). 셋째, 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내어 쫓는 능력으로 복음서를 통하여 충분히 증명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로 믿느냐’(마9:28). 그리고 생명을 다스리는 권세도 예수님께 있습니다.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요10:18). 또 영생을 주시는 권세도 있으니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요17:2). 죄를 사하는 권세도 그 분께 있습니다
.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마9:6). 또 예수님에게는 천사를 부리는 권세도 있습니다.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 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마26:53). 곧 예수님의 권능은 만유와 만물을 다스리는 것이고 초자연적인 것이며, 아무도 대적할 수 없는 무한한 것입니다. 그 권세를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이름’으로 명령하면 만물과 만인이 복종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베드로가 성전 문에 앉아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걷게 한 데서 발단된 것입니다. 베드로가 미문에 앉은뱅이를 일으키자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상황이 점점 확대되자 사도들을 가두고 대제사장과 관원, 장로와 서기관들이 묻습니다. “무슨 권세와 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그러자 베드로가 말합니다. “이는 너희가 죽였으나 다시 사신 예수의 이름으로 한 것이라.”
그렇습니다. 베드로는 확실히 예수의 이름 안에 권능이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이름의 권세와 능력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그 이름이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제가 22년 목회를 어떻게 했습니까? 제 지식으로 했습니까? 제 지혜로 했습니까? 아닙니다. 오직 ‘예수 이름’의 권능을 사용했을 뿐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고 수없는 병을 고쳤으며, 예수 이름으로 사이클 경기장에서 태양을 작은 구름으로 가렸고, 몽골 메인스타디움에서 집회를 할 때 비를 멈추게 했습니다. 또 한여름 학생체육관에서 더워 기진했을 때, ‘예수 이름으로 찬바람은 나올지어다.’하고 명령하여 에어컨보다 더 시원한 바람을 일으킨 것입니다. 제가 지금 세계 70여 개국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오직 ‘예수 이름’의 권세입니다. 예수 이름만 소유하면 성공하고 건강할뿐더러 부유하고 만사형통하다고 가르칩니다. 예수 이름을 주신 것은 곧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신 것임을 널리 알리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저는 해외 선교사로 나가는 자들이나 지교회로 나가는 주의 종들에게 말합니다. “내가 돈을 주랴, 예수 이름의 권세를 가르쳐주랴.” 물론 돈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돈으로 목회를 성공한다면 재벌들이 잘 할 것 아닙니까? 다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고, 예수 이름으로 능력을 행한 자들이 성공했습니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요16:23).
예수 이름의 권세는 사도들이나 주의 종들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인천교회 한 집사 부부가 집을 내놓았는데 도무지 팔리지 않는다고 제게 기도를 받으러 왔습니다. 어린 아들과 함께요. 저는 기도를 해주고는 ‘예수 이름으로 집은 팔릴지어다.’라고 명령하라고 가르친 후 집에 돌려보냈는데, 그들이 집에 들어가려고 하니까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이 그랬답니다. “예수 이름으로 명령하니 이 집은 팔릴지어다.” 그리고는 엄마, 아빠에게 ‘아멘’하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딱 한 시간 만에 그 집이 팔렸다는 것입니다. 우연이라고 우기는 사람하고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이는 오직 그 이름의 권세를 믿는 자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 이름의 권세는 이처럼 어린 아이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총알이 장전되어 있으면 누가 방아쇠를 당겨도 나가는 것이니까요.
우리는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고, 상황을 역전시켰습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아프면 병원부터 가고, 문제가 생기면 사람부터 찾는 변절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보물을 주머니에 넣고는 굶고 있는 어리석은 자들이 되고만 것입니다. 보물을 꺼내십시오. 금괴보다 좋고, 다이너마이트보다 강력한 예수 이름을 두고 왜 고통 속에서, 아픔 속에서, 가난 속에서 지내십니까?
사업에 문제가 있습니까? 베드로의 사업장인 갈릴리에 폭풍이 일 때 예수님이 명령한 것처럼 하십시오. 병들었습니까? 베드로가 행한 것처럼 “금과 은은 없으나 예수 이름으로 병을 들게 한 귀신아 나가라.”고 외치십시오. 묶인 것이 풀리지 않습니까? 집사의 어린 아들처럼 예수 이름으로 명령하십시오.
예수 이름, 천상천하에 가장 귀하고 좋은 이름입니다. 그 이름이 녹슬지 않도록 늘 사용하십시오. 할렐루야!
하나님의 자녀들이여! 권세를 회복하라
개, 돼지에게 진주를 주지 말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