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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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호 목차 › 붕우칼럼

누명을 썼는가?

350호 · 2006-11-08

사실 나는 요즘 많이 곤고했었다. 꽉 짜인 해외집회로 인해 육체도 많이 지쳤고, 여러 가지 요인들로 인하여 심신이 고달팠었다. 그러다보니 문득 몇 년 전 작고하신 믿음의 어머니가 그리워졌다. ‘이럴 때 그 분이 살아계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어느 사람이 문제가 생겨 궁지에 몰리자 그만 믿음의 어머니에게 누명을 뒤집어씌우고 발뺌을 하는 통에 어머니께서 곤란한 지경에 처하게 되었다. 나는 ‘어머니께 진실을 밝히면 되지, 왜 고통을 당하시냐?’고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랬더니 하시는 말씀이 참으로 놀라웠다. “이 목사, 그 사람이 살겠다고 나를 밟은 것인데 나마저 살아보겠다고 그 사람을 밟으면 그 사람은 어디로 가란 말인가.”

그 말씀은 내게 큰 교훈이 되었다. 살다보면 억울하게 나와는 관련 없는 일에 얽히는 경우가 있다. 물귀신 작전이랄까. 괜한 누명, 오해를 받아 타격을 받았던 기억이 내게도 있다. 이럴 때면 나는 믿음의 어머니의 말씀을 되씹는다.

그 교훈을 깨달은 이후로 나는 정말 그런 마음으로 살았다. 주위에서 고소를 하는 것이 옳다고 할 때도, 지면을 통해 해명이라도 해야 덜 억울하지 않겠느냐고 할 때도 나는 그러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 없었다.

세월이 흐르다보니 믿음의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옳다함을 피부로 느낀다. 해 아래 드러나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조금 더디 드러날 지라도 반드시 진위는 가려지지 않던가.

누군가 나를 짓밟아 살아날 수 있다면 기꺼이 그 발에 밟혀주는 자가 되고, 누군가 나에게 누명을 씌워 회생할 수 있다면 누명 속에 갇힌 자가 되자. 하나님이 내 진실을 아시는데 내게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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