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올 때 세상에 믿음을 보겠느냐?
‘주여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옵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행4:29,30)’
제사장과 관원들에게 붙잡혀 옥에 갇혔다가 풀려난 사도들이 모여 기도하는 대목이다. 거룩한 하나님의 종, 권세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의 모습이 그려진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신앙, 오직 하늘로부터 공급되는 것으로만 사는 그리스도인의 자세가 엿보인다.
목사님은 어떤 집회에서든지 단에 오르시면 항상 동일하게 이 사도행전 4장 29절, 30절의 말씀을 들고 기도하신다.
“주여, 지금도 악한 마귀의 위협함을 하감하옵시고 종으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거룩한 손을 들고 기도하는 이 모습에 날선 성령의 검이 번뜩이는 느낌을 받는다. 아마 이 순간에 악한 마귀와 더러운 귀신들도 산천초목이 떨듯 혼비백산할 것이다. 그리고 나타나는 성령의 역사는 언제 어디서나 동일했다. 이는 성령께서 오직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만 의지하는 종들과 함께 역사하시는 표적이다.
우리는 지난 주일예배에 1992년 4월 8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있었던 서울집회 실황을 영상으로 함께 보았다. 강력한 성령의 역사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고, 불같이 뜨거웠던 우리의 신앙을 돌아볼 수 있었다. 잠실학생체육관에 가서 금요철야예배에 참석하는 것만으로 일주일을 넉넉한 마음으로 살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다른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렇게 물불을 가리지 않고 주님을 만나는 기쁨에 들떠있었다. 서울장안 뿐만 아니라 전국을 소동케 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주님만을 바라보던 우리의 눈길은 우리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했고, 우리의 현실에 안주하기 시작했다. 결과만이 과정을 대변한다고 목사님은 누누이 말씀하신다. 오늘의 우리는 우리가 지나온 과정의 결과일 뿐이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계산이 오고가기 시작하면 이미 아버지와 아들의 순수한 관계는 금이 가고 만다. 구름이 끼고 천둥이 치는 것이다. 정직하게 자문해볼 일이다. 우리가 그 시절보다 물질적으로 풍요해지고 여유가 생겼는지는 모르나 과연 더 행복해졌는지, 진정 하나님으로 기뻐하며 살고 있는지 말이다.
예수님은 요한계시록을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다른 짐을 지우지 않을 것이니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겠다.”(계2:23~26)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분의 약속이다. 우리가 이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 지켜야할 것이 무엇인지 명심하길 바란다.
우리가 예수를 만나 가장 값진 진주를 얻었건만, 그 진주가 귀한 줄 모르고 그 가치를 모른다면, 아니 망각한다면 우리 삶은 더욱 불쌍할 뿐이다. 열면 닫을 자 없고 닫으면 열 자 없는 하늘과 땅과 땅 아래의 권세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그 나라를 유업으로 받고자 한다면, 우리가 어디에서 떨어졌나 돌이켜 회개하고 그 뜨거웠던 첫사랑, 영혼에 목말랐던 심령으로 돌아가야 한다.
“내가 올 때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18:8)”고 하신 말씀을 심상히 여겨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내하며 지키는 자가 이기는 자다.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히3:14)’
우리가 처음 가졌던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다시 한 번 부흥의 역사를 쓰는 믿음의 주인공들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