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그릇이 되라
아들아,
너는 지저분한 크리스털 그릇에 담긴 음식을 먹겠니? 아니면 좀 볼품이 없고 투박하더라도 깨끗한 그릇에 담긴 음식을 먹겠니? 물론 깨끗한 그릇 쪽을 택할 것이다. 개, 돼지가 아니고서야 더러운 그릇에 담긴 음식을 먹을 자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말이다. 우리가 토기일진대 하나님께서 더러운 그릇을 쓰실까? ‘이건 귀한 크리스털이니 더럽긴 하지만 써야지.’ 하나님이 이러실까? 하나님은 분명히 더러운 것은 귀신이라고 하셨는데 말이다.
저 접시에는 과일이 담겨있고, 저 양동이에는 물이 가득한데, 네 안에는 무엇이 담겨있니? 깨끗하고 아름다운 것이 담겨 있니? 아니면 더럽고 추하고 냄새나는 것으로 가득하니? 네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는 네가 제일 잘 알 거다. 물론 아비도 네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안단다. 왜냐하면 네 안에 있는 것이 말과 행동으로 나타나거든. 잠언은 말씀하고 있지. ‘비록 아이라도 그 동작으로 자기의 품위의 청결하며 정직한 여부를 나타내느니라.’ 아무리 좋은 재질이라도 똥을 담고 있으면 똥 그릇이란다. 그것은 아무리 감춰도 똥냄새가 난다는 것을 기억해라.
아들아,
그러나 더러운 그릇을 씻으면 깨끗해질 수 있지. 요즘 그릇 닦는 세제가 아주 좋아졌고 많아졌더구나. 그것으로 닦으면, 그릇이 깨지지만 않았다면 다시 쓸 수 있지. 아주 묵은 때는 물에 불려서 닦으면 잘 닦일 거다. 마찬가지란다. 우리에게 주신 예수의 보혈이라는 세제로 우리 죄를 닦으면 다시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단다. 묵은 때도 다 벗겨진단다. 눈물로 회개하면 다 희게 되지.
하나님은 깨진 그릇에 대해서는 아예 말씀을 하지 않으셨단다. 깨진 그릇은 다시 못 쓰기 때문이지. 더러운 그릇은 회개라는 통로가 있기 때문에 깨끗함을 강조하시는 거란다.
주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회칠한 무덤이라고 표현하셨지. 아주 적합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회칠한 무덤은 겉은 멋있지만, 그 속에 들어가면 벌레가 우글거리고 악취가 나고 컴컴하거든. 요새도 이런 사람 많단다. 그래서 그들을 향한 질타의 말씀이 잠언에 있지.
‘스스로 깨끗한 자로 여기면서 오히려 그 더러운 것을 씻지 아니하는 무리가 있느니라’
아침에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나가도 저녁이면 더러워지듯 사람이 더러워지지 않을 수 없지만 그 때마다 바로 회개하면 때가 절지 않게 된단다.
네 몸은 주의 성전이고, 네 안에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시니 더럽고 추한 일일랑 삼가라. 그래야 하나님이 너를 귀히, 그리고 높이 쓰실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