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은 직업과 다르다
‘아름다운 언덕’이라는 뜻을 가진 인구 4만 5천의 작은 도시, 로마보니따(Loma Bonita). 도시가 작다보니 변변한 숙소조차 없었다. 1급 호텔이라고 하는 곳도 우리네 여인숙 정도라 할까? 더운 날씨에도 실내에 설치된 에어컨은 틀기 무서울 만큼 굉음을 낸다. 도착 첫날, 밤인데도 공기는 후덕지근하다. 에어컨을 켜자니 무슨 비행기가 이륙하는 소리만큼이나 소음이 커서 잠을 잘 수 없고, 끄자니 더위에 역시 잠을 이룰 수가 없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목사님이 가시는 곳마다 일기가 변한다는 점이다. 추운 곳에 가면 날씨가 포근해지고 더운 곳에 가면 시원해진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종들을 위해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준비하시기 때문이다. 로마보니따에서는 구름기둥을 보내주셨다.
야외집회인 관계로 날씨가 걱정이 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우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첫날 집회를 마친 뒤에야 비를 뿌려주셨다. 라파엘 목사에 따르면 오랜 가뭄으로 비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목사님이 비를 몰고 오셨다고 기뻐했다. 우리는 흐린 날씨로 인해 더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고 무엇보다 시끄러운 에어컨을 켜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감사의 조건은 늘 우리 곁에 넘쳐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문제는 아침식사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보통 호텔들은 아침식사(breakfast) 코스를 마련해주고 있지만, 이 작은 시골 호텔에는 그런 것조차 없어 차를 타고 나가 먹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시간이 곧 금인 영적 전쟁에 나선 우리가 먹는 것 때문에 장소를 바꿔가며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었다. 이 선교사와 김 선교사가 준비해온 햇반과 컵라면, 고추장, 김, 그리고 테네시 조 전도사가 싸준 비프져키(말린 소고기), 말린 고추 등을 펼쳐놓고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이민국을 통과하며 시빗거리가 되긴 했지만 먹는 게 아쉬울 때는 이것도 그만 아닌가.
과테말라(Guatemala)에서 온 힐베르또 목사 부자, 후지탄(Juchitan)에서 온 시로 목사 부자 등과 함께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며 아침식사를 했다. 그런데 아마 컵라면이 매웠던 모양이다. 뭐라고 말은 못하면서도 연신 입을 호호 불어대는 표정이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다. 목사님이 비프져키를 내밀며 먹어보라 하자 혹시 한국에서 온 개고기가 아니냐고 너스레를 떤다. 모처럼 박장대소를 하며 웃었다. 힐베르또 목사는 내일 아침부터는 금식을 하겠다고 엄살을 떤다.
식사가 아니라 벌이라나? 그러나 이렇게라도 먹을 수 있으니 또한 감사하다. 목사님은 연신 진수성찬보다 낫다며 잘도 드신다. 목사는 없어서 못 먹고 안 줘서 못 먹는 법이란다. 여느 부흥사들과는 달리 우리 목사님은 집회 내내 거의 전력을 다해 외치는 스타일이라 사실 엄청난 에너지가 소비된다. 따라서 다른 것은 몰라도 먹는 것만은 잘 먹어야 힘을 낼 수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신다. 그러나 그게 어디 우리 입맛대로 될 수 있겠나? 주면 먹고 안주면 못 먹는 게 선교 현장의 일이고 보면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권고가 새삼스럽게 주목된다.
잠자리에서 빈대나 이에 시달리는 일은 다반사니 별로 언급할 문제도 아니다. 단언컨대 우리가 돈을 벌기 위해 나섰다면 이러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는 직업으로 돈을 벌려고 나선 것이 아니요, 우리를 부르신 자의 명령을 수행하는 사명자로서 이 길을 나선 자들이기에 그 어떤 문제가 닥쳐도 피할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것이다. 오직 전쟁의 승리를 분명한 목적으로 삼고 전력을 다할 따름이다. 특히 이번 집회에는 혁혁한 전과를 올렸기에 그 모든 수고와 고통이 오히려 즐거운 추억일 수 있다.
사실 아무리 좋은 환경에서 잘 먹고 잘 자도 전쟁에 패한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정말 그럴 땐 하루가 천년 같고 무엇을 먹어도 모래를 씹는 기분이다. 그러기에 집회 첫날부터 목사님은 골방에 틀어박혀 몸부림을 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다면,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게 어디 사람의 힘과 능으로 하는 일인가 말이다. 비가 오기라도 하거나, 준비가 좀 소홀해보이면 목사님은 방에 틀어박혀 남몰래 애통하며 눈물로 하나님께 더욱 매달리시는 것이다.
메리다(Merida)에서 오전 세미나를 마치고 점심식사를 위해 식당을 찾았는데, 10분 후에 문을 연다고 하며 안내자나 통역관이 여유를 부리자 목사님은 당장 다른 식당으로 가자고 불호령이다. 현지 목사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전쟁을 앞둔 장수의 마음을 그 누가 알까? 목사님은 기도가 부족하면 몸이 아프고 단에 섰을 때 혼쭐이 나신단다. 그러니 집회 중에는 그 누가 찾아와도 열일을 제치고 골방으로 들어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다.
그것만이 사는 길임을 그분만이 알기 때문이다. 똑같은 성정을 가진 인간인 이상 왜 남들처럼 잘 먹고 잘 자고 놀고 싶고 즐기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목사님의 그런 모습을 보며 바로 저게 목사님이 성공하신 비결임을 깨닫는다. 그 어떤 환경에서도 결코 목적을 상실하지 않는 조직적인 정신력. 전쟁을 앞두고 홀로 고통 속에 몸부림치고 애통하지만, 집회의 성공이라는 승리의 성취만으로 지난 시간의 모든 고통을 기쁨으로 바꿀 수 있는 단순성. 간단히 말하면 오늘을 마지막으로 알고 최선을 다해 내 몸을 불사르는 열정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목사님을 쓰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하나님께 부름 받아 사명자의 길을 가는 자들이 유념할 대목이라 생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