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심비(心碑)에 각인시켜라 (전10:10)
제가 기거하는 집이 하도 오래되어서 요새 보수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공사하는 것을 들여 보다가 저는 거기서 아주 단순한 진리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잘 박힌 못은 잘 안 빠진다’는 겁니다. ‘당연한 것을 가지고 웬 난리냐? 그것이 무슨 진리냐?’ 하고 반문하실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저렇듯 우리 심비에 잘 박힌 못이 된다면 우리가 쉽사리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지 않을 것이고, 첫사랑을 잃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고후3:3).
잘 빠지지 않는 못을 박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 못을 두드리고 다시 두드리고를 반복해야 합니다. 한 번에 못을 쑥 박을 수 있나요?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교훈이 한 번 들어서 심비에 잘 새겨지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한 말씀, 한 말씀을 읽고 읽어서 가슴에 각인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무의식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게 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초등학교 때 구구단을 얼마나 열심히 외웠습니까? 그랬더니 지금까지도 잊지 않고 ‘7X8=56’ 하고 바로 나오지 않습니까? 이처럼 하나님 말씀이 각인된 사람은 언제 어느 상황에서도, 의식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반복을 해야 할까요? 습관이 될 때까지입니다. 왜냐하면 습관이 운명을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WBC 대회에서 우리나라 야구선수들의 활약은 대단했습니다. 좀 아쉽게 준결승에서 일본에 패하기는 했지만 전 세계는 우리나라 선수들의 실력에 경탄을 금하지 못했습니다. 그 선수들이 어떻게 그리 잘 할 수 있었습니까? 그거야 말하나마나 반복적인 연습의 결과입니다. 투수는 하루에도 수백 개씩 공을 던졌을 거고, 타자들도 수없는 공을 쳐댔기 때문에 그 큰 게임에서도 자신 있게 경기를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손에 익었기 때문에 자신 있게 공을 던지고 내리친 것입니다.
각인이 된다는 것, 조금 세게 표현하자면 세뇌가 된다는 것은 움직이지 않는 생의 지표가 됩니다. 기업의 모든 임직원들에게 사주의 경영철학이 각인된다면 기업은 어떠한 풍랑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모 대기업에서 ‘1등만이 살아남는다’며 1등 제일주의를 전 사원에게 주입하고 각인시켰더니 정말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1등 아닌 상품은 만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사나 죽으나 예수’만이 각인되었던 사도 바울은 죽음도 불사하고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우리 교인들에게 각인된 사상은 이것입니다. ‘병사는 죽어도 전쟁은 이겨야 하고 핍박과 순교가 온다 해도 예수는 증거되어야 한다.’ 저는 성도들에게 이것을 각인시켰습니다. 그랬더니 우리 성도들이 모함을 받으면서도 예수를 전하고, 예수 전하는 일에 자신을 던져 오늘날 우리 교회는 ‘예수중심세계하나되기운동본부’를 갖게 되었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둘째, 삐뚤어지지 않는 못을 박아야 합니다. 어떤 것을 각인하느냐 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삐뚤어진 못을 박아놓으면 오히려 방해만 됩니다. 나쁜 것과 악한 것이 각인되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공산주의가 각인된 사람에게 아무리 민주주의가 합리적이라고 말해봐야 씨도 안 먹힙니다. 왜냐면 세뇌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이라크 쪽의 사람들이 하는 테러나 자폭 같은 행위를 우리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만의 사상에 절어 있기 때문에 그들의 행동이 옳다고, 그것이 신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겁니다. 자녀들에게 ‘너는 아비 닮아서 그렇게 못났어.’ 하고 엄마가 자꾸 말하면 아이 마음에 ‘그래, 나는 아빠 닮아서 못났어. 그러니 뭘 하겠어?’ 하고 각인되어서 학교에서도 자신 없고, 사회에 나가서도 기를 못 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곧은 못을 박아야 합니다. ‘믿음은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예수님이 넘겨받은 권세를 나도 갖고 있다.’ 이런 하나님의 말씀이 심비에 새겨져야 생이 아름답고 바르게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 연장이 좋아야 합니다. 못만 있다고 벽에 못을 박을 수 있습니까? 망치도 있어야 하고, 시멘트 벽돌에는 드릴도 있어야 합니다. 우리 심비에 하나님의 말씀을 박는 것은 기도입니다. 기도가 있어야 하나님의 말씀이 명령이 되어 내 심비에 새겨지는 것입니다. 제가 6개 국어를 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몇 개 국어로 된 성경을 읽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볼 때 그는 하나님 말씀이 자기 것이 되어 있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심비에 새겨지지 않았다 이 말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읽은 하나님의 말씀은 어느 성현의 말씀이나 별만 다르지 않게 느껴질 겁니다. 기도 없이 하나님의 말씀은 이해될 수 없고, 가슴에 새겨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령의 감동받은 자들이 적은 것이기에 성령의 감동 없이는 절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항상 기도한 후에 성경을 읽습니다. 기도한 후 읽은 말씀은 제 심령과 골수를 쪼개고 살아 움직임을 느낍니다.
넷째, 어깨의 힘을 빼야 합니다. 못을 칠 때 너무 힘을 주면 못이 튕겨 나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각인 되려면 내 의지나 내 생각, 내 뜻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것으로 가득 찬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주입될 리 만무하지 않습니까?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고후10:5). 괜히 힘주다 못이 튕겨나가면 눈 빠집니다. 괜히 내 생각대로 살다가는 큰일 난다는 겁니다.
못을 얕게 박아놓으면 뭐 아주 가벼운 것쯤은 걸겠지요. 그러나 아름다운 액자나 거울은 걸 수 없습니다. 걸었다가는 떨어져 산산 조각이 나고 말겁니다. 못을 깊이 박아 거울을 걸어야 세상을 비춰보고 나를 비춰볼 수 있게 되고, 액자처럼 아름다운 인생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못을 삐뚤게 박으면 의자나 책상이 삐거덕거리고 언젠가는 부서지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세상의 것으로 각인된다면 삐거덕 거리는 인생이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제게 가끔 성도들이 이런 말을 합니다. “목사님, 다른 설교 좀 하세요. 매일 듣는 말씀이 같아서요.” 그럴 때 저는 이렇게 답합니다. “집사님,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믿음과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이 집사님의 심비에 새겨질 때까지 계속 할 겁니다.” 맞습니다. 반복해서 망치질을 해야 못이 깊이 박히는 줄은 알면서 왜 하나님의 말씀이 심비에 박히도록 한 말 되하고 한 말 되하는 것은 모르는지 좀 답답합니다. 주님도 공생애 3년 동안 한 말씀 되하고 한 말씀 되하고 하셨습니다. “귀신을 쫓아라”, “서로 사랑하라”, “성령 충만 하도록 기도하라.”
계속 떨어진 물방울이 바위도 뚫는 법입니다. 반복하면 각인된다는 말입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용기로 각인을 시키세요. “넌 하나님의 자녀니 무엇이든 할 수 있어.” “넌 하나님을 닮아서 잘 생겼어.” 이렇게 말입니다. 기업 내에서도 ‘불량품은 기업의 암이야. 그러니 불량품을 만들지 말자.’ 하고 각인시키면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될 것입니다.
못은 박혀 보이지 않으나 그것이 박혀 가구도 되고 건물도 되듯, 하나님의 말씀은 보이지 않으나 그것이 심비에 박힐 때 거대한 인생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되새김하는 소에게서 진리는 배우십시오. ‘청하건대 너는 하나님의 입에서 교훈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네 마음에 두라’(욥22:22). 할렐루야!
반복은 습관을 낳고 습관은 운명을 바꾼다
당신의 심비에는 무엇이 새겨져 있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