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강해 (14)
마 7:13,14 좁은 문과 좁은 길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어느 날 나는 참으로 외로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없이 20년 가까이 주의 종으로 살다보니 친구가 다 떨어져 나간 것도 모르고 지냈다. 그런데 왜 새삼 갑자기 외롭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세상에도 주안에도 마음을 털어놓을 친구 하나 없는 것 같았다. 이 길은 외로운 길인가보다.
그런데 마음 한쪽에서 ‘내가 있지 않니?’ 하는 음성이 들려온다. 주님이시다. 나의 참 좋은 친구, 영원히 변함없는 친구, 언제나 나를 기다려주고 내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이해해주는 변함없는 친구. ‘그래 나에겐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가 있지.’ 멋진 친구며 부끄러움 없는 친구, 그래서 나는 이 길을 간다. 외로운 길, 그러나 외롭지 않은 길, 힘든 길, 그러나 힘들지 않은 길, 고난의 길, 그러나 영광이 기다리고 있는 길, 바로 좁은 길이지만 생명길이다. 나는 외롭지 않다. 나는 생명으로 풍성하며 기쁨으로 풍성하다. 그리고 소망으로 가득하다.
그런데 이 좁은 길을 기쁨으로 가는 우리에게 항상 따라다니며 유혹하는 길이 있다. 그 길은 넓은 길이다. 편안하고 자유롭고 재미있는 길이란다. 그러나 나는 그 길을 내 스스로 버리고 온 사람이다. 더 낳은 세상을 알기에, 더 낳은 본향을 알기에.
예수를 만나고 어느 날 꿈을 꾸었다. 넓은 들판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어디론가 정신없이 바쁘게 가고 있다. 나도 가다보니 벌판 한가운데 허름한 집이 있는데 문이라고는 아주 작고 좁은 문 하나뿐이다. 많은 사람들은 본체도 안하고 지나간다. 좁은 문을 삐끗 열고 들어가 보니 의외로 그 안이 넓고 붉은색 카펫이 깔려 있고, 실내에 살아있는 큰 나무들이 드리워져 있고, 그 아래서 아주 평화로운 모습으로 사람들이 벤치에 앉아 담소를 하고 있다.
신기해서 들어가 보니 그 공간은 넓으나 끝이 막혀있어 돌아 나왔더니 옆에 또 하나의 작은 유리문이 있는데 그 안은 어두컴컴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그 안에 좁은 길이 나 있는데 어두워서 바닥이 잘 안 보이고 자갈이 밟혔다. 칙칙한 길로 혼자서만 갈 수 있는 좁은 길이었다. 그런데 아주 멀리 밝은 빛을 발하는 별 한 개가 깜빡깜빡하며 길을 인도하고 있었다.
예수 안에 들어와서도 편안하게 앉아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예수 안에 들어와서 계속적으로 좁은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다. 편안한 신앙생활을 자랑하지 말고 일어나 좁은 길로 들어가라. 핍박과 고난이 있더라도 주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기꺼이 가야한다.
‘이 교회는 사도들이나 다니는 교회라고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겠다.’며 교회를 떠나가는 사람을 보았다. 사도들이나 다니는 교회인줄 정말 알았다면, 열심히 다니면 당신도 사도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왜 못하는지 안타까웠다.
천로역정은 천국까지 가는 길을 그려놓은 책이다. 그 책에 보면 길에 참으로 샛길도 많다. 유혹의 도시, 허영의 도시..... 끝까지 가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한다.
잠언 16장 31절에 ‘백발은 의의 면류관이라 의의 길에서 얻느니라’고 하셨다. 나이 먹는 것 자체가 면류관이요 상급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오직 의의 길에서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 밖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오직 예수 안에 있는 좁은 길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 좁은 길을 가자. 그 길은 찾는 이가 적으나 오로지 한길뿐인 생명길이다. 모로 가도 한양만 가면 된다지만 천국은 오직 한길 예수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