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글씨 크기 보통16
305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역사의 주인공이 되라<br> (시119:162~165)

305호 · 2006-12-31

“목사님은 어떻게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소경된 자를 보게 합니까?” 하고 물으면 저는 “예수님이 저를 사용하시는 겁니다.”라고 답합니다. “목사님은 어디서 그런 능력이 나옵니까?” 하고 물어도 제 답은 “예수께 받은 능력”입니다. “어떻게 교회가 부흥했습니까?”해도 제 답은 동일합니다. ‘예수’입니다. 저는 천문천답(千問千答)이 다 ‘예수’요, 만문만답(萬問萬答)이 다 ‘예수’입니다. 왜냐고요? 제 중심에는 오직 예수만 서 있기 때문입니다.

2006년 우리 교단의 슬로건은 ‘역사의 변두리에 서 있는 자가 되지 말고 역사의 중심에 서는 자가 되자’입니다. 중심이 무엇입니까? 가운데 중(中)이요, 마음 심(心)입니다. 역사의 변두리에서 중심으로 진입하는 길은 마음 한복판에 무엇이 자리하고 있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즉 마음의 기둥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고려 말, 공민왕이 궁궐을 새로 짓기 위해 어전회의를 열었습니다. 왕은 중신들을 불러 모아놓고서는 어떻게 하면 더 아름다운 궁궐을 지을 수 있나 하고 여러 의견을 들었습니다. 이에 중신들이 앞 다투어 자신의 의견을 왕에게 고했습니다. 한 중신이 “전하, 궁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둥입니다. 이 기둥이 아름다워야 궁궐 전체가 돋보입니다. 그러니 기둥을 금으로 도색해야 합니다.”라고 고하자 다른 중신이 입을 열었습니다. “맞습니다. 기둥이 아름다워야 함은 옳습니다.

그러나 금 기둥보다는 은 기둥이 더욱 품위 있어 보입니다.” 중신들의 의견이 양분되어 옥신각신 할 무렵, 정3품격인 자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습니다. “전하, 기둥이 중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궁궐의 기둥이 금인들 백성들을 편하겠으며, 은인들 나라가 바로 서겠습니까? 감히 폐하께 아뢰기는 마음의 기둥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설 것입니다.” 그러자 중신들이 그를 향해 얼굴을 붉히며 “여기가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 정3품 주제에 누구를 가르치려 하는가?”고 하며 면박을 주었고, 왕도 중신들의 기세 때문이었는지 그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결국 고려는 점점 기울어갔고, 몇 대 지나지 않아 이성계에게 자리를 내주고 고려는 멸망하고 맙니다. 기둥이 바로 서지 않으면 나라가 허물어지는 것도 일순간입니다.

당신 마음의 기둥은 무엇입니까? 금 기둥인 재물이 버티고 있습니까? 아니면 은 기둥인 권력이 자리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얼마나 버텨줄 것이라 믿으십니까? 9.11 테러 때 맨해튼 중심에 있는 쌍둥이 빌딩이 한 대의 비행기 공격으로 순식간에 무너진 것을 보지 않았습니까. 그것이 부와 명성의 상징이었지 않았습니까.

저는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마음의 기둥은 오직 하나님으로 서야 한다는 것을요. 그래야 역사의 중심에 설 수 있습니다. 역사란 하나님의 시나리오입니다. 하나님이 끄는 수레바퀴가 인간들의 역사입니다. 그것을 바로 안다면 그 역사의 중심에 서는 방법을 알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역사의 중심에 서는 것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에 의한,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으로부터의 삶이 되어야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을 통하여 한 시대에 역사의 획을 그은 사람들 모두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아무도 몰라주는 객 같은 존재였을 때도 그들은 오직 하나님을 마음에 두고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랬고, 요셉이 그랬으며, 다윗이 그랬고, 입다, 에스더가 다 그랬습니다. 형들에 의해 적국에 팔려간 요셉, 그러나 그는 하나님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적국의 국무총리 대신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린 다윗이 왜 골리앗을 치러나갔습니까? 여호와의 이름을 욕보이는 골리앗을 용서할 수 없었기 때문 아닙니까. 그는 어리지만 중심이 확실했기에 용기를 낸 것입니다. 그런 그를 하나님이 어찌 높이시지 않겠습니까. 입다 역시 멸시천대 가운데서도 그는 오직 하나님만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런 그에게 설욕의 기회가 왔고, 하나님께 서원하여 그는 변두리 인생에서 역사의 주인공으로 변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에스더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아인 에스더가 왕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힘이었습니다. 제가 우리 성도들에게 올해 말하고 싶은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을 인생의 중심에 두어 변두리 인생을 마감하고 역사의 주인공으로 주목 받는 자들이 되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열거한 믿음의 선친들처럼 말입니다.

그와 대조적으로 하나님 중심이었던 자가 인간 중심이 되어 역사의 중심에서 변두리로 밀려나,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처참한 인생을 마감한 자도 있습니다. 바로 사울과 가룟 유다 입니다. 하나님을 자기중심에서 빼 버린 자는 하나님도 하나님의 중심에서 빼버린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관심이 없어진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에서 멀어진 자야말로 가장 비참한 자 아니겠습니까.

중심이 흔들리면 전체가 흔들립니다. 그러나 내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에 바로 선다면 절대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기준이 흔들리면 다 흔들거리게 됨을 아시지요? 체육시간에 줄을 맞출 때, 기준이 왔다 갔다 하면 그 반 전체가 왔다 갔다 합니다. 컴퍼스를 돌릴 때 기준이 흔들리면 원이 비틀어지지요. 그러니 가정의 기준이 되는 가장이 흔들리면 가정이 흔들리고, 단체장이 줏대 없이 흔들리면 그 단체의 앞날은 보나마나 입니다. 교회의 목사가 남의 말에 춤을 춘다면 어찌 그 교회가 부흥되겠으며, 국가의 통치권자가 흔들리면 그 나라가 어찌 바로 서겠습니까.

제가 21년을 지나오며 핍박과 환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았기에 오늘의 우리 예루살렘 교단이 있는 겁니다. 제가 왜 흔들리지 않았느냐 하면 제 중심이 예수로 단단히 서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와 우리 교단이 역사의 중심에 설 수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예수중심교회 아닙니까. 중심에 서다보면 때론 돌도 맞고, 시기, 모함도 받게 됩니다. 영광이 많으면 비판소리도 높고, 비난도 많은 법이거든요. 그렇다고 변두리 신세가 되고 싶습니까? 그 영광이 비난소리쯤은 덮을 수 있지 않을까요?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식과 지혜의 근본입니다. 근본이 무엇입니까? 기본입니다. 하나님을 우선으로, 중심으로 두는 것은 우리 인생의 기본입니다. 내 인생이 하나님 우선주의로, 중심으로 갈 때 우리가 역사의 주역이 될 수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나 김구 선생의 중심에 오직 조국이 있었기에 그들이 역사를 빛낸 위인이 된 것처럼, 우리 중심에 오직 하나님을 모셔 우리도 역사의 중심에 섭시다.

이제 2006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우리 인생의 자서전을 엑스트라 전기로 적지 말고 역사의 중심에 선 주인공이 되어 써 봅시다. 역사에 끌려가는 자가 되지 말고, 역사를 주도하고 실현하는 자가 되어 보자는 겁니다.

당신 마음의 중심에 무엇이 서 있습니까? 하나님이 서 계십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올해 당신이 기대하는 것 이상의 것을 거두고 이룰 것입니다. 할렐루야!

역사는 하나님의 시나리오다 그 역사의 주인공이 되라

영웅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만들어지는 것이다

305호 다른 글

커버스토리
성도들의 간증
지혜의 말씀
귀를 기울이세요
Cartoon
붕우칼럼
교단소식
나눔의 지혜
잠언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