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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성공을 원하면 편안하기를 포기하라(행20:22~38)

302호 · 2005-12-07

위대한 사람과 평범한 사람의 차이를 아십니까? 위대한 사람은 분명한 목적을 향하여 뛰는 사람이고, 평범한 사람은 일상의 소망 가운데 사람입니다. 분명한 목적이 있는 사람을 보십시오. 그는 편안하기를 포기하고 목적을 위해, 그것에 도달하기 위해 죽도록 달립니다. 결국 분명한 목적이 위대한 인물을 만드는 것입니다.

‘본토와 아비와 친구를 뒤로 하고 죽음을 앞세우고 주만 따라 갑니다’, ‘세상의 부귀와 영화를 다 버리고 이 세상 땅 끝까지 주만 따라 갑니다.’, ‘ 환난과 핍박과 모함을 뒤로 하고 십자가 등에 지고 주만 따라 갑니다.’

이것은 제가 1992년에 작시한 ‘사도의 길’이라는 찬양 가사 일부입니다. 저는 이 가사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주의 종 길을 갔습니다.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제게 주어진 사명, 즉 분명한 목적이 있었기에 일신의 안일과 행복을 포기하고 앞만 보며 달렸습니다. 그 길은 정말 물 없는 사막이었고, 눈 덮인 산야였지만 저는 한 점 후회함이 없이 그 길을 갔습니다. 그렇게 21년, 좁디좁고 난코스였던 주의 길이 사실은 성공의 길이요, 승리의 길이었음을 저는 새삼 느낍니다. 오늘의 예루살렘 교단의 부흥과 세계 70여 개국에 복음을 전파하는 일은 오직 편안하기를 포기하고 말씀대로 간 증거입니다. 그래서 결과만이 과정을 대변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성공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편안하기를 포기하십시오. 한 시대에 맥을 그은 인물들이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위인들, 그리고 하나님께 인정받은 믿음의 선친들을 보면 모두 하나같이 목적의식이 분명했었습니다. 그래서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편안함을 거부하고 스스로를 고난의 길로 몰아넣은 자들입니다. 핍박과 모함에 정면 돌파 했으며, 또 안주하려는 자신과 싸워 이긴 자들이었다는 말입니다.

사도바울도 그런 자입니다. 빌립 집사의 딸 중의 하나가 예루살렘에서 바울이 당할 수난에 대해 예언을 합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내려가는 것을 막았습니다. 그 때 바울은 말합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래서 죽음도 불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도 이번 키르기스스탄 집회를 가려할 때 많은 만류가 있었습니다. 지난 집회 때 KGB에 불려가 취조를 당했기 때문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사실 그곳에 다시 간다는 것이 그리 탐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이 있기에 저는 주저함 없이 다시 그곳에 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에게 합심기도를 요청하고, 제 개인적으로도 많은 기도를 하고 그곳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집회는 우리가 생각한 이상으로 성황을 이뤘습니다. 비시켁이라는 도시 사상 최대 인파가 몰려 경찰력이 동원되었고, 저도 경찰의 도움을 받으며 피신해야 할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저는 감사했습니다. 주님이 제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 같았습니다. “이것은 네가 편안하기를 포기한 상이다.”

능욕과 핍박을 거부하는 주의 종은 참 종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평안한 길을 버리고 정말 힘들고 어려운 십자가의 길을 가셨는데, 그의 종이라 하는 자가 편안하기를 구한다면 어찌 종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 학문의 박사가 되는 것도 엉덩이에 땀띠가 나도록 애써야 이루는 일이거늘, 명장도 전쟁에 이기기 위해 잠을 잊고 전술전략을 꾀하거늘 주의 종이 안일을 꾀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평안하다, 안일하다 할 그 때 도적이 드는 겁니다. 편안하면 잡다한 생각이 들게 되고, 그 틈으로 악한 것들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처를 범할 때가 언제이었습니까? 가장 한가할 때였습니다. 밤도 아닌데 저녁때에 침상에서 일어난 것으로 본 것을 보면 심적으로나 육적으로 굉장히 편안했을 때라 여겨집니다. 그 때 목욕하는 밧세바를 본 것입니다. 그러자 그녀를 취하고픈 충동이 일었고, 그로 말미암아 비극적인 상황에 빠져든 것입니다.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살전5:3).

왜 안일을 꾀하는 줄 아십니까? 목적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분명히 말하지만 어디에 서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디로 가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지금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위치에 ‘여기가 좋사옵니다.’ 하며 안주하는 것은 곧 포기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목표의 설정이 중요합니다.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빨리 될 것입니다.

토끼는 자기가 빨리 뛰어 어느 정도에 이르자 그곳에 안주하여 편히 잠을 잤습니다. 자기가 가야할 방향을 잊고 그저 거북이보다 빠르게 뛴 지금에 만족한 것입니다. 그러나 거북이는 자기가 가야할 목적지와 방향을 정확히 알고 있었기에 쉬고픈 마음을 접고 열심히 기었습니다. 그 결과 발 빠른 토끼를 이긴 것입니다. 거북이는 자신이 토끼를 이길 것을 동경했습니다. 동경했기에 무리이다 싶은 경기를 한 것입니다. 그 옛날 사하라 사막을 넘은 것은 군인과 장사꾼 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정복자와 거부의 꿈을 동경했기에 죽음의 모래바람 속을 통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부자가 되기를 원하면 목적을 거기에 두고, 그것을 동경해야 합니다. 그리고 저택에서 사는 자기를, 그리고 고급차를 타고 다니는 자기를 그려야 합니다. 배를 만들기 전에 망망대해를 동경하면 왜 배가 필요한 지 목적이 생기고 그것을 향해 달리게 되어 있는 겁니다. 노아가 40주야 동안 비가 내리는 상황에서도 자기와 자기 가족이 구원될 것을 그리면서 열심히 배를 만든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그날의 영광을 그리며 오늘을 뛰고 있는 것 아닙니까.

성공하기를 원하십니까? 편안하기를 포기하십시오. 목적을 향하여 일신의 안일을 버리고 오늘을 뛰십시오. 그러면 분명히 목표에 다다를 것입니다. 목적을 이룬 그 때 더 큰 영광을 얻을 것입니다. 오늘 포기한 편안함이 분명 더 큰 것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성공한 후에 남들이 누리지 못하는, 남들보다 더욱 큰 평안을 누리십시오. 주님이 오시는 그날 우리가 더 큰 평안을 누리게 됨과 같이 말입니다.

위대한 사람으로 기억되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분명한 목적을 위하여 오늘의 편안함을 포기하십시오. 현재의 고난은 장차 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할렐루야!

지금 어디 있느냐 보다는 어리도 가느냐가 중요하다

배를 만들기 전에 바다를 동경(憧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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