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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기스스탄에 부는 새로운 바람

302호 · 2005-12-07

키르기스스탄은 민주화를 향한 빠른 변화의 물결을 타고 있는 중이다. 비록 회교 국가이지만 주위의 여타 회교국에 비해 상당히 자유스러운 분위기다. 3년 전에 갔을 때만해도 공공장소에서 기독교 집회를 할 수 없었고, 집회를 교회에서 하는데도 KGB의 조사를 받기도 했었다.

그러나 최근에 일어난 민주화 시위로 정권이 바뀌고 많은 크리스천들이 정부의 요직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번에 만난 인사들 중 몇몇은 정부의 요직과 재계, 사회단체 등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 나라를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번 집회는 여러모로 우리에게 신선한 경험과 새로운 비전을 주고 있었다. 그동안 회교권 선교에 헌신을 다해온 나빈 선교사의 열매가 나타나는 것이겠지만, 기대 이상의 결실을 보며 우리는 회교권 복음화를 열망하시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알라를 섬기고 있고 기독교의 유일신 하나님을 인정한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알라와 동일한 신임을 알고 있다. 즉 유일신 사상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 있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결국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그들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다. 어찌 하나님은 한분이신데 또 무슨 아들 하나님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이름 앞에 더러운 귀신이 소리를 지르며 떠나가고, 각색 질병이 고침 받는 역사의 현장을 목도한 그들은 그야말로 ‘그러면 어찌할꼬’ 하며 엎드러졌던 유대인들처럼, 하나님의 새로운 법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었다.

한분이신 하나님께서 정하신 새로운 법,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새로운 소식을 그들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결국 불신자를 깨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현재성을 그들 앞에서 직접 보여주는 것 이상 없다. 복음은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들에게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해도 이해가 될 수 없는 일이다. 복음은 장엄한 선포요, 따라서 그것을 믿고 나오는 자에게는 구원이지만, 믿지 않는 자는 정죄와 멸망의 지옥이 기다릴 뿐이다. 이것이 절대자 하나님의 법인 걸 상대자인 우리가 어찌한단 말인가!

집회를 정리해주러 온 경찰들도 거부할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를 넋이 나간 표정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몰려드는 인파로 체육관 문짝이 두 개나 부서지고 2층 붕괴를 우려한 체육관 측 관리책임자가 문을 폐쇄하는 등 한바탕 법석이 일곤 했지만, 성령의 역사를 막을 것은 그 어느 누구도 그 무엇도 없었다. 하나님이 여신 문을 그 누가 닫을 수 있겠는가!

질서 없이 물밀듯 밀려드는 인파를 감당할 수 없어 목사님은 경찰의 보호 속에 가까스로 집회장을 피해야했고, 뒤에 남아있던 나빈 선교사는 무리에 둘러싸여 꼼짝도 못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무리의 요청에 따라 안수를 시작했는데, 무리에 밀려 그만 단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단 아래에도 용신할 틈 없이 사람이 모여 있는지라 단 아래로 떨어지면서 사고를 막기 위해 몇 사람의 머리를 짚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와중에도 역사하셨다. 단 아래에 몇 년 동안 걷지 못하고 앉아있던 자가 마침 단 아래로 떨어지는 나빈 선교사의 손에 머리가 닿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그가 고침을 받아 걷기 시작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옷자락만 만져도 병이 낫는다는 성경의 기록이 사실로 입증되는 사건이었다.

몽골을 접수하고 이제 키르기스스탄도 하나님의 나라로 접수했다. 이는 믿음의 선포요, 우리의 분명한 목적의식이다. 하나님의 계획이 급하고 강한 바람처럼 이곳 키르기스스탄 비시켁에 몰아치고 있었다. 그 누구도 막아설 수 없는 새로운 바람, 새로운 물결이 밀려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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