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귀한 선택은 무엇일까? (잠 22:1)
어느 날, 왕이 중전과 여러 후궁을 불러 모아놓고 말했습니다. “오늘 이렇게 모이라고 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과인이 이제 나이가 많아 주변을 하나하나 정리할 필요를 느꼈소. 그래서 우선 중전과 모든 비(妃)들을 위해 무엇을 해 줄까 생각하다 그대들의 소원 하나씩을 들어주기로 결정했소.
그러니 원하는 것이 있거든 하나씩 말해보시오.” 왕의 말에 모두들 반색을 하며 궁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단 하나씩이라고 했으니 무엇을 선택해야 자신과 자신의 가문에 영광이 될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하다 중전이 먼저 말문을 열었습니다. “전하, 제 소원은 제 오라버니가 영의정에 오르는 것입니다. 그것이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그러자 왕은 ‘알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이어 서열순서대로 비들이 소원을 아뢰었습니다. ‘사대문 안에 있는 땅을 달라’, ‘아직 관직에 오르지 못한 동생에게 한 자리 달라’ 등등 평소 가슴에 있던 소원을 말했습니다.
그런데 맨 마지막에 들어온 어린 후궁의 차례가 되자, 그녀는 치마 안에서 큰 보자기를 꺼내 바닥에 펴놓으며 말했습니다. “전하, 저는 아무 것도 필요 없습니다. 저는 다만 전하만 모실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이 말에 왕은 감격했습니다. “넌 정말 지혜로운 자구나. 나를 얻었으니 무엇이 부족하겠느냐.”
왕의 은총을 입는 날이면 재물이나 명예는 더불어 얻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궁궐에 있는 모든 여인들이 성은을 입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왕의 눈에 들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하나님의 은총을 입는다면 어떻겠습니까? 오늘 본문에는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명예를 택하지 말고, 재물을 선택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총을 선택하면 인생의 높고 낮음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만물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이 사랑과 더불어 명예와 재물을 겸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많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됩니다. ‘어떤 친구를 사귀느냐, 어떤 배우자를 택할 것이냐. 어떤 학교를, 어떤 물건을, 어떤 집을 선택할 것이냐’로 고민하게 됩니다. 때론 그 선택이 인생을 결정짓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선택들은 설혹 잘못된 선택이었다 해도 그것에는 다시 기회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영생을 좌우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선택이 무엇이냐면, 절대 잘못 선택해서는 안 되는 것이 무엇이냐면 하나님과 세상의 것이 부딪칠 때, 그것이 하나님 우편의 것이냐 좌편의 것이냐 일 때의 선택입니다. ‘저희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요12:43)’고 한탄한 선지자 이사야의 말대로 세상의 것을 더 사랑하여 그것을 선택하면 우리는 영멸을 향해 미끄러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로 인하여 안락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유혹하는 보디발의 아내를 품에 안았다면 그는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께 득죄할 수 없다’하며 유혹을 이겼습니다. 그래서 옥에 갇혔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은총을 베푸사 나이 30세에 애굽왕 바로의 전권을 위임받은 국무총리 대신이 되게 하셨습니다. ‘쉬운 사람의 방법을 택할 것이냐, 하나님의 방법대로 진실할 것이냐’에서 요셉이 옳은 선택을 한 결과입니다.
다니엘은 메데의 세 명의 총리 중의 하나였습니다. 다니엘이 다른 총리들과 방백들보다 뛰어나자 이에 시샘한 자들이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찾다가 그가 하루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하여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왕에게 삼십일 동안 왕 외에 다른 신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자고 건의하고 그것을 금령으로 세워 어인을 찍게 했습니다. 총리인 다니엘이 이 금령을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그는 예전처럼 하루 세 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지켜보던 자들이 왕에게 참소하여 결국 그는 사자굴에 던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래도 다니엘은 자신의 선택에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은총을 더하사 사자입을 막아 그를 구하셨음은 물론 다리오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왕의 시대에 까지 다니엘을 형통케 하셨습니다. ‘명예를 지킬 것이냐, 더는 목숨을 지킬 것이냐’와 ‘하나님을 택할 것이냐’의 갈림길에서 그는 단호히 하나님을 택한 것입니다.
이방 여인 룻에게도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 있었습니다. 남편을 잃고 홀로된 두 며느리에게 시어머니인 나오미는 ‘네 백성과 신에게 돌아가라’고 합니다. 그러자 큰 며느리인 오르바는 시어머니의 말을 좇아 떠났으나 룻은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룻1:16)라며 시어머니를 따라 베들레헴에 오더니 보아스의 아내가 되는 축복을 받았고, 다윗의 조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의 선택이 탁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모든 일에 우선순위를 둡니다. 하나님 우선주의, 예수중심으로 제 인생의 서열을 정합니다. 그래서 어머니 생신과 집회가 겹쳤을 때, 어머니 가슴을 아프게 하면서도 저는 집회를 떠났고, 교단과 갈등이 있을 때도 교단이라는 배경을 버리고 하나님 편을 택했습니다. 그것이 좁은 길이었기에 당시는 힘들고 어려웠지만 돌아보니 제 선택은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것이었고, 제대로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요셉을 축복하신 하나님, 다니엘을 형통케 하신 하나님, 룻을 높이신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되사 저를 축복하시고 형통케 하시고 높이셨던 것입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1:10). 하나님을 섬기다 풀무불을 선택한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왕의 체통을 버리고 하나님을 찬양한 다윗, 장군이란 위엄의 투구를 벗어던지고 하나님의 사람의 말을 듣고 요단강에 뛰어든 나아만, 이 모든 자들이 선택을 잘 했기에 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재물과 명예를 택한 가룟 유다나 왕의 권위에 연연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사울은 그와 상반대인 무서운 저주를 받았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주일에 상사의 결혼식에 참석하지는 않습니까? 주5일 근무로 주일은 잊고 여행을 떠나지는 않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가는 세상의 방법으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 선택이 옳은지 그른지 지금 살피십시오.
샘의 근원을 파면 절대 목마르지 않는다
사람을 기쁘게 하랴 하나님을 기쁘게 하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