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는다는 것
몇 해 전에 저명한 철학자요, 대학교수이며, 무엇보다 진정한 크리스천인 김형석 교수를 우리 신학교에 초청하여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그 때 나도 참석해서 그의 강연을 들었는데, 그의 강연은 너무 재밌고 쉬워 그는 역시 강의의 달인, 대가라 칭함을 받아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 날의 주제는 ‘늙었다’라는 것이었는데,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이 하나 있다. 그는 나이에 따른 아내의 반응을 이렇게 표현했다. 40대에는 집에 들어가면 아내가 ‘김 마담한테 갔었어?’ 하고 반응하고, 50대에는 ‘이제 왔수?’ 한단다. 60대에는 ‘갈 데가 그렇게 없수?’ 하고, 70대에는 ‘제발 좀 나가슈, 애들 보기 창피하니..’ 한단다. 그는 늙을수록 행동반경이 좁아져 고독을 느끼게 된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늙을수록 생활반경이 좁아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대신 깊이가 가일층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젊을 때야 조금 안면만 있어도 친구라고 줄줄이 만나지만, 나이가 들면 말이 필요 없는 지인 몇이면 충분하고, 젊을 때는 수박 겉핥기식의 지식을 가지고도 떠들어댔지만 나이가 들면 심오함을 깨달아 잠잠하게 된다. 웬만한 일에는 부화뇌동함이 없이 바다에 돌을 던진 것 같으니, 그것이 바로 깊이다.
물론 내 전 재산을 주고라도 사고 싶은 것은 젊음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더 정열적으로 일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지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이 서러워서는 아니다. 일출이 동적이라면 저녁 노을은 정적이다. 나는 김 교수의 강연에서 세월의 맛을 느꼈다. 늙는다는 것, 그것은 여유와 노련을 친구 삼는 것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