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구제하는 것은 보험에 드는 것이다 (눅 12:33~34)
지난 주에 저는 일본 동경 중심부에 있는 우에노 공원에서 집회를 가졌습니다. 이 집회를 배설한 심목사는 일본의 노숙자를 대상으로 목회를 하고 있는데, 현재 3천여 명의 노숙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물론 그들을 먹이고, 입히고 있습니다. 심 목사는 일본 도심의 빌딩숲 그늘에 가려진 가난하고 헐벗은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며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목사를 따라 오사카의 서범석 목사도 노숙자를 상대로 복음을 전하며 구제 사업에 힘쓰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중심교회가 복을 받고 세계로 뻗어나가는 데는 다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로 베풀며 구제하는 것에 인색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 하려니와 못 본체 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많으리라’(잠28:27).
저는 구제하는 것은 보험에 들어놓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보험이 무엇입니까? 어려울 때를 대비하여 미리미리 돈을 넣어두는 것 아닙니까? 내가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 보험이듯, 구제 사업도 내가 심은 만큼 거두게 됩니다. ‘이것이 곧 적게 심은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은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고후9:6).
보험 드는 것과 구제 사업은 공통점이 참 많습니다. 첫째는 많이 내면 많이 탄다는 것입니다. 보험료를 한 달에 몇 만 원 내는 사람하고, 몇 십만 원 내는 사람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나 만기가 되었을 때 타는 액수가 엄청나게 차이 납니다. 구제도 그렇습니다. 구제를 많이 하는 자는 이 땅과 내세에 더욱 윤택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잠11:25). 우리 교회가 지금처럼 윤택하게 된 것은 구제에 힘썼기 때문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어려운 사람이나 목회자들을 수없이 도왔지만, 교단 차원에서 구제한 것은 이루 말로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물질적인 것은 물론 제 비디오테이프나 오디오테이프를 보내는 영적인 구제 사업도 힘에 겹도록 했기에 우리 교단이 풍성하고 윤택한 것입니다.
미국이 200년의 짧은 기간 동안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이 된 것은 그들이 전세계적으로 펼친 구제 사업에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나라도 미국의 경제적인 도움을 많이 받았지 않습니까? 어린 시절, 미국이 전해준 구제물품을 저도 받아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제 받는 입장이 아니라 베푸는 나라가 됨을 감사할 뿐입니다. 가까이는 북한이요, 멀리는 저 아프리카까지 우리나라가 펼치는 구제 사업은 우리나라를 더욱 윤택하게 할 것입니다.
둘째로, 보험은 대체로 아무도 모르게 들어놓는다는 겁니다. 가끔 보험수당을 노리는 사람들로 인해 좋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봅니다. 입에 오르기도 구차한 일들이 보험수당 때문에 일어나지 않습니까? 구제 사업도 아무도 모르게 해야 합니다.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마6:3,4).
제 어머니가 마당 한 구석에다 상추씨를 뿌려놓았는데, 이것이 암만 기다려도 싹이 안 나더랍니다. ‘뭐가 잘못 되었구나’ 하고 다시 씨를 뿌리려다 보니 옆집 지붕에 사는 비둘기가 계속 어머니만 쳐다보고 있더랍니다. ‘저 놈들이 다 쪼아 먹었구나.’ 그래서 이번에는 씨를 뿌린 후 비닐을 쳐두었다고 합니다. 구제사업도 너무 알려지면 악한 것들이 침범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교단이 하는 어떠한 구제 사업도 신문에 내지 않습니다.
물론 이 땅에서 칭찬을 받으면 주 앞에 갔을 때 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선이 뭉쳐 다니면 몽둥이로 맞게 되어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알기에 저는 은밀히 합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가장 봉사를 많이 했던 사람도 우리 교인입니다. 그가 어쩔 수 없이 TV와 인터뷰를 하게 되었을 때, ‘어느 교회에서 나왔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우리 목사님이 선은 은밀한 가운데 하라 했으니 밝힐 수 없다’고 당당히 밝혔다고 합니다. 진짜 멋지지 않습니까?
셋째로, 보험은 어려워도 계속 넣어야 합니다. 어렵다고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으면 결국 내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구제 사업도 그렇습니다. 보험이 재난을 대비하는 것이기에 어려워도 마땅히 해야 하듯, 구제 사업도 내가 어렵더라도 나보다 더 어려운 자에게 펼쳐야 하나님이 내게 넘치도록 채우시고, 혹 어려울 때를 만나더라도 주님이 건지시고 책임지실 것입니다.
가난한 자를 돌보는 것은 곧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보험 드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높은 이자로 갚아주시겠습니까?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마25:35~37,40).
주위를 한 번 돌아보십시오. 당신의 사랑과 손길을 필요로 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우리 사회는 빈익빈, 부익부(貧益貧富益富) 현상이 심해져 없는 자들이 더욱 고통 중에 있습니다. 그들에게 당신의 마음을 열고 손을 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합시다. 우리가 가진 것이라고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것은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자녀끼리 나누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그렇게 하면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많았던 다비다를 살리신 하나님이 당신의 가정과 기업을 살리실 것이며,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된 고넬료처럼 하나님께 인정받는 자가 될 것입니다.
배고픈 자에게 ‘배부르라’ 하지 말고 먹이고, 벗은 자에게 ‘입으라’ 하지 말고 입히십시오. 하나님이 당신에게 넘치도록 갚아주실 것입니다. 이 땅에 보험을 드는 것도 좋지만 확실한 보장과 책임을 지실 하나님께 보험드는 일이 더욱 현명한 일입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주시리라’(잠19:17). 할렐루야!
적게 심은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은 자는 많이 거둔다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더 복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