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글씨 크기 보통16
297호 목차 › 내가 체험한 예수

아픔만큼 성숙해 지는 법이다

297호 · 2005-11-03

멕시코 피에드라스네그라스(Piedras Negras) 집회는 정말 누구의 말처럼 얼음을 깨는 집회였다. 첫날 너무 힘겹게 집회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나에게 누군가 해준 말이 있다.

“집회 첫날은 꽁꽁 얼어붙은 심령을 깨는 시간이랍니다.”

그 말이 아주 실감되었다. 그러나 물러설 수 없는 전쟁임을 안다. 나는 한국의 성도들에게 합심기도를 요청하고 애통하며 하나님께 매달렸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아, 갈라디아 교인들아’ 하며 기도를 요청한 심정을 나는 이해한다. 그리고 나는 나의 성도들이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것이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짐을 확신하는 목사다.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이 기도하는 그 시간에 편차 없이 놀라운 은혜를 쏟아부어주셨다. 소경이 눈을 뜨고 벙어리가 말을 하며 각색 질병들이 놓임을 받았다. 어찌 내 개인의 힘과 능으로 이런 기적을 나타낼 수 있겠는가. 이는 오직 성경이 응하는 사건이며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현재성이 나타난 것일 뿐이다. 그 하나님을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으랴!

피에드라스네그라스 집회를 모두 마친 이튿날 아침 7시, 나는 다시 짐을 꾸리고 몬테레이(Monterrey)를 향해 출발했다. 다음 집회 도시인 까데레이따(Cadereyta)는 몬테레이에서 차로 약 30분 거리에 있다고 한다. 일단 몬테레이에서 일박하며 목회자 세미나를 해주고 까데레이따로 이동하여 집회를 가질 계획이었다. 몬테레이까지는 차량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나는 전날 밤, 헤라르도(Gerardo) 목사에게 ‘큰 차를 준비해서 다함께 한 차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두 대 이상으로 분승할 경우 떨어진 차량에 신경 쓰느라 도무지 편한 마음으로 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침에 숙소로 온 차량을 보니 짐과 승객을 모두 수용하기에는 좀 부족했다. 이른 아침 다른 차량을 수배할 수도 없었고 결국 좁아도 그냥 가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마지막 한사람이 탈 자리가 없다는 한 전도사의 보고를 듣고 ‘그렇다면 헤라르도 목사가 짐칸에 타고 가도록 하라’고 말했다. 문제를 야기한 당사자가 직접 불편함을 감수하는 경험을 해야 다시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을 거란 생각이었고, 이참에 매사 얼렁뚱땅하기 좋아하는 헤라르도를 교육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일행이 모인 자리에서 내 아들이야기를 해주었다.

내 큰아들 녀석이 해병대에서 갓 제대하고 돌아온 때인 것 같다. 정원에 심겨있는 나무를 보며 내가 뭔가 마땅찮은 표정을 하고 있자 아들이 묻는다.

“아버지, 제가요, 해병대에서 공사로 잔뼈가 굵은 놈입니다. 뭐 옮기실 거 있음 말씀만하세요. 저 나무요? 까짓것 저 혼자도 충분히 옮길 수 있다고요.”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그래? 그럼 지금 당장 저 나무를 반대편으로 옮겨 심어라.”

아들 녀석은 설마 내가 진짜로 시킬 줄이야 하고 내뱉은 흰소리였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 말에 책임을 지라는 뜻에서 당장 실천을 강요한 것이다. 녀석은 결국 하루 종일 끙끙대며 나무를 옮겨 심을 수밖에 없었다. 그 바람에 그만 비싼 정원수를 죽이고 말았지만 말이다. 또 한 번은 집안 도배가 별것 아니라고 이 녀석이 또 큰 소리를 치기 시작한다. 나는 그 즉시 ‘당장 도배하라’고 명령했다. 사실 도배가 멀쩡히 잘되어있는 방이었지만 역시 같은 취지에서 실천을 명한 것이다. 아무튼 그 후로 아들 녀석은 다짐에 다짐을 하며 다시는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절대 함부로 말하지 말자’는 생각이 아들 녀석 몸속에, 뼈 속에 깊이 각인되었던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헤라르도 목사에게 해주면서 ‘대충 얼렁뚱땅하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 오늘 한번 절실히 몸으로 느끼고 깨닫기 바란다.’ 고 가르쳤다. 헤라르도 목사는 나에게 감사하다고 말하며 거의 4시간 동안을 짐 위에 앉아 가면서도 오히려 매우 기뻐하는 표정이었다. 한국 세미나 시간에 책상에 편히 앉아 받은 교육보다 더욱 실제적이고 가슴에 와 닿는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비록 온몸이 결리고 쑤시겠지만 아픔만큼 성숙해질 거라고 웃으며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바로 깨닫는 헤라르도 목사에게 정말 감사한 마음이었다. 솔직히 아무리 말해주어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 다시는 쳐다보기도 싫다.

나는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있다. 바로 ‘전무후무한 깨닫는 종이 되게 해 주소서’하는 기도이다. 인간이 인간인 것은 반성과 깨달음을 통해 변화하고 성장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을 살아가며 반성도 없고 깨달음도 없이 산다면 짐승과 무엇이 다르랴!

아집으로 똘똘 뭉쳐있는 사람은 제아무리 좋은 말을 해주어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법이다. ‘소귀에 경 읽기’라는 말이 바로 이런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인데, 이래서는 절대 발전이 있을 수 없다. 나는 정말 매사 배우는 자세로 살아가려 노력한다. 어린아이에게라도 배울 것이 있다면 귀담아 듣고자 애쓴다.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니다. 모르면서도 아는 척하는 것이 문제요, 그런 자는 절대 성장할 수 없다. 모르면 물어보라. 그게 어떻단 말인가.

4시간이면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인데, 사실 헤라르도 목사도 엉덩이가 꽤나 아프고 사지가 저렸으리라.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 싫은 내색 전혀 않고 가르침에 감사하며 기뻐하는 그를 보니 내 마음에도 절로 감사와 기쁨이 넘쳤다. 가르치는 자로서 제자가 스승의 가르침을 기쁨으로 깨닫는 것 이상 더 기쁘고 감사한 일이 무엇이랴!

이초석 목사

297호 다른 글

커버스토리
Text 주일설교
지혜의 말씀
귀를 기울이세요
Cartoon
붕우칼럼
교단소식
나눔의 지혜
잠언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