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부하게도, 가난하게도 마옵소서
아들아,
나는 가끔 최초의 사람인 아담을 생각해 본다. 하나님은 그 아름답고 풍성한 에덴을 아담에게 통째로 주었지. 거기에는 손만 뻗으면 먹을 것이 얼마든지 있고, 다스리고 정복할 것도 무진장했지. 그런데 왜 아담은 하나님이 딱 하나 손대지도 말고 먹지도 말라는 선악과까지 손을 대었을까? 물론 이는 악한 마귀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기 때문이지만, 결국 욕심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저것만 가지면 다 가지게 된다’는 욕심 말이다.
TV나 신문에 불명예스럽게 오르내리는 사람들을 보면 누가 봐도 그 사람이 없어서 세금을 포탈하고 뇌물을 받았으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평생, 아니 자자손손 먹고 남을 재산을 두고도 몰염치한 일을 저지른 것을 보면 정말 할 말이 없다.
아들아,
아비는 이 세상에 미련이 없다. 그래서 아비 명의로는 휴대폰 하나도 해둔 것이 없다. 나는 많은 재물보다 하나님의 은총을 택하기로 했다. 내가 너무 많은 재물로 인하여 하나님을 모른다 할까 두렵기 때문이지. ‘설마’ 그러기까지야 하겠느냐고 너는 묻고 싶겠지만 돈맛을 알면 그것은 곧 마약과 같아 절대 거기서 헤어날 수 없지. 돈이 얼마나 좋으면 성경에도 하나님과 돈을 비겼겠니? 그러나 반대로 도적질이라도 해야 할 만큼 너무 가난하여 하나님이 없다 해도 안 되겠지.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거 아니겠니? 과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는 오직 필요한 양식을 채우시는 것으로 감사하며 살면 된다. 광야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오늘 먹을 만큼의 만나만을 취하라고 하셨지. 그런데 그들은 오늘 양식 외에 더 많은 것을 취해 쌓아놓았다. 그러나 이튿날 아침이면 다 상하고 말았지.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라고 주님은 가르치셨다. 이는 너더러 하루살이 인생이 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과한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것이다. 두 벌 옷이 있거든 없는 자를 입히고, 포식하지 말고 주린 자를 주고, 과용할 것으로 없는 자와 나누라는 것이다. 나눌 때 진정한 삶의 만족이 오는 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