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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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2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대접하는 대로 대접 받는다 (마 7:12)

282호 · 2005-07-20

처음 남미대륙에 전도 집회를 갔을 때, 남미의 목회자들은 강사와 일행을 영접조차 하지 않아 당황하게 했습니다. 식사는 말할 것도 없고, 이동에 필요한 차량도, 심지어는 집회를 위한 구성원까지 준비된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와 우리 일행은 일일이 작은 것부터 나서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세계 영성세미나 차 우리 교회를 찾았을 때, 저와 우리 교단은 그들을 예수님 모시듯 영접했습니다. 공항에서부터 그들을 리무진으로 모셨고, 고급호텔에서 유숙하게 했으며, 식사는 물론 쇼핑에 관광까지 완벽하게 왕처럼 모셨습니다.

그리고 기도원에서도 그들에게 가장 좋은 환경에서 배울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저는 늘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하는 전제하에 일을 진행하기 때문에 한 치의 소홀함도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변했습니다. 멕시코를 가도, 아르헨티나를 가도, 남미 어느 지역을 가도 이제 그들은 저와 일행을 왕처럼, 예수님처럼 대접합니다.

서로 대접하려다 오히려 싸움이 날 지경입니다. 저는 그들에게 ‘대접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 라고 가르친 적이 없습니다. 다만 제가 먼저 그들을 왕처럼, 예수님처럼 대접했더니 그들이 받은 대로 그대로 돌려준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 말씀은 진리 중의 진리로 하나님과 또 사람과의 관계에서 적용됩니다.

하나님은 지성과 감성과 의지를 가지고 계신 인격체이십니다. 그 분도 우리가 대접하는 대로 우리를 대접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대접해 드리지 않으면, 그 분도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대접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너를 가납하겠느냐’(말1:8).

육의 아버지께도 가장 좋은 것으로 드리는 것이 옳듯이, 하나님께도 가장 좋은 시간과 가장 깨끗한 마음과 몸, 그리고 가장 귀한 물질로 섬겨야 그 분을 제대로 대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헌신(獻身)이요, 헌금(獻金)이라 하는 것입니다. 자기 할 일 다하고 남은 자투리 시간을 드리고, 세상의 욕망으로 가득 찬 찌든 심신을 드리고, 쓸 것 다 쓰고 억지로 동냥하듯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하나님이 그에게 축복과 사랑과 은혜를 아낌없이 부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우선으로,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자들에게는 하나님도 그를 우선삼고, 그를 중심삼아 세계를, 인류를 움직이십니다. 아브라함이 그랬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을 자신의 주관자로 모셨더니, 하나님이 그를 주관하사 복의 근원이라 축복하셨고, 열국의 아비로 세워주셨습니다. 또 하나님 뜻대로 행한 다윗에게는 나와 마음이 합한 자라 칭하시고 사울의 왕권을 빼앗아 그에게 안기셨습니다.

저도 정말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라 믿고 그의 충실한 종으로 살려고 제 인생을 그 분께 올인(all-in)했습니다. 부모보다 먼저 하나님을, 처자보다 우선으로 예수님을 먼저 섬기고 최선을 다해 대접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도 저에게 올인하시고 넘치도록 사랑하사 이 민족과 세계를 저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 물으신 후 양 떼를 맡겨주신 것은 대접한 대로 행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여실히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당신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하면 하나님께 대접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혹시 당신은 사람들 앞에서는 식사기도도 못하고 하나님을 부끄러워하는 모습은 아닙니까? 믿지 않는 상사의 눈치 보느라 하나님을 외면하고 돼지 머리에 절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면 하나님도 당신을 ‘모른다’ 하실 것입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마10:32,33).

가정에서 대접받지 못하는 남편들을 보면 대체로 아내를 대접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곧 대접 받지 못하는 이유가 자기에게 있다는 말입니다. 아내를 종 부리듯 하는 남편들이 종종 있습니다. 자기는 가만히 앉아 ‘이것 가져와라’, ‘저것 해와라’ 하는 남편들의 노년은 대개 불행합니다. 아내들이 ‘지금은 내가 힘이 없어 시키는 대로 하지만 늙어봐라, 그 때 다 갚아 줄 거다.’ 이렇게 벼르기 때문입니다.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골3:19).

아내의 젖은 손을 잡고 구성지게 옛 노래라도 하나 불러주면 아내가 달라집니다. 아내에게 예쁜 옷이라도 사주면 내일 아침 반찬이 분명히 달라집니다. 아내를 굴복시키려고 완력을 쓸 것이 아니라 아내를 대접하여 순한 양으로 만드는 것이 지혜인 것입니다. 또 아내들도 남편을 대접해야 자신도 대접을 받는 것입니다. 하인하고 사는 사람은 하인입니다. 그러나 남편을 왕처럼 섬기면 자신은 왕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머리인 남편을 대접해 주십시오.

기업에서도 경영진과 근로자가 서로 대접하면 마찰이 없게 됩니다. 상하(上下)의 개념을 버리고 돕는 협력자로, 동역자로 생각한다면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니 노사분규란 남의 집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스프링을 누르면 압력만큼 튕겨져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대접받은 대로 대접받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 입니다.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통령이 애민사상으로 가득 차지 않으면 국민에게 심판을 받게 됩니다. 대통령이 배라면 국민은 물입니다. 물이 힘이 없는 듯 하나 물이 한번 출렁하면 배는 침몰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대통령이 되어야 국민들도 조국에 대해 애국심이 고취될 것이고, 대통령을 존경하게 될 것입니다. 국민을 우습게 여긴 통치권자들의 최후가 어떠한지 우리는 많이 봤지 않습니까.

교회에서도 주의 종들이 성도들을 어떻게 대접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주의 종된 자들은 성도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대접해야 합니다. 자기에게 맡겨진 양떼니까 내 맘대로 한다는 식의 목회는 절대 성공할 수 없습니다.

제가 공사 중인 인천교회에서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수고하는 성도와 신학생 들에게 “고맙다.” 하며 등을 두드려 주고 손을 잡아주는 것입니다. 제가 성도들을 자녀처럼 대하니 성도들이 저를 아버지처럼 대접하는 것입니다. 또 우리 몸에게도 좋은 것을 대접해야 합니다. 우리 몸을 술과 담배, 더는 마약 같은 해롭고 악한 것으로 채우면 우리 몸은 약해지고 병들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며, 우리의 육체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도구입니다. 그러니 잘 관리해야 합니다.

자연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지구의 온난화현상 같은 것은 자업자득입니다. 오염된 지구를 만든 것이 우리이니 우리가 그 대가를 치러야 함은 마땅합니다. 지금이라도 우리가 사는 이 지구에 좋은 것을 대접하면 시간은 걸리겠지만 이 지구도 우리에게 좋은 환경을 선사할 것입니다. 나무에게 물을 주지 않고 휘발유를 준다면 어찌 열매를 거두겠습니까? 마지막으로 대접받은 대로 대접받는 것이 있다면 말입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말이 있습니다.

산에 올라 큰 소리로 욕을 해보십시오. 그 욕이 메아리가 되어 다시 내게 돌아옵니다. 내가 먼저 말을 곱게 해야 상대에게서 좋은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6:38). 하나님께든 사람에게든 좋은 것으로 주면 좋은 것이 넘치도록 돌아올 것이나 나쁜 것을 주면 나쁜 것이 넘치도록 돌아오니 누구에게나 먼저 좋은 것으로 대접하는 자가 됩시다. 할렐루야!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

왕 대접을 받고 싶은가 상대를 왕처럼 대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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