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최대의 기쁨
지난 주일은 내 어머니의 80세 생신이었다. 나는 2005년 새해를 맞으며 ‘일생일대 최고의 복을 받는 한해가 되자’고 성도들에게 선포하면서 내 나름의 개인적인 목표가 하나 있었다. 그동안 오직 주의 일에만 전심전력하는 삶으로 인해 내 육의 어머니에게 효도할 기회를 많이 갖지 못했다.
어디 그뿐인가? 내가 믿는 예수 때문에 제사를 지낼 수 없다고 선포했다가 어머니께 버림받고 집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당해야했고, 어머니 회갑 때에도 나는 부흥회에 초청을 받아 지방으로 내려갔다. 나는 그렇게 살았다. 무수한 모함과 핍박 속에서도 나는 오로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일을 더할까에 골몰하고 고심해왔다.
그로인해 오랜 세월, 어머니를 만날 수도 없었고, 혹여 라도 찾아갔다가는 머리를 뽑히고 옷을 찢기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우리 어머니의 구원을 위해 눈물로 기도해왔다. 내가 가산을 다 복음 전하는데 탕진해가며 예수에 미쳐있을 때, 어머니는 집안이 망했다며 눈물로 지새우셨으리라.
그러나 내가 목회에 성공을 거두고 전국적으로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자 어머니의 마음도 녹기 시작하였고, 드디어 동생과 제수씨의 손에 이끌려 교회에 나오기 시작하셨다. 예수가 뭔지는 모르지만 자식이 저렇게 성공을 거두고 하는 말마다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을 목도하다보니 어머니로서야 이전에 교회나 예수에게 가졌던 부정적 시각을 이제는 더 이상 고집할 이유가 없어진 셈이다.
콩나물시루에 물이 다 빠져나가도 콩나물이 자라듯 우리 어머니의 믿음도 교회에 나오시는 횟수가 늘어남에 따라 점점 성장하셨다. 계면쩍어 하시면서도 내가 전화를 드리고 기도해드리면 ‘아멘’으로 화답하기 시작하셨다. 직접 모시지도 못하고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는 마음이 어찌 편할 리야 있겠는가. 그러나 나는 내 일에 얽매일 수 없는 그리스도의 군사요, 하나님의 종이 아닌가. 늘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권사의 직분을 받고 큰 상급을 받아 천국에 들어가시길 간절히 소망하며 기도해왔다.
팔순이시니 이제 얼마를 더 사실까. 물론 나는 어머니를 예수 앞으로 인도한 것이 가장 큰 효도를 했다는 자부심은 분명하다. 그러나 자식된 도리를 다하지 못한 마음에 올해는 어쨌든 어머니의 여든 번째 생신에 대대적인 잔치를 열어드려 지금까지 못해드린 효도를 다해드리고 싶었다.
그런데 팔순잔치를 얼마 앞두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계시를 주셨다. 지금 인천성전건축을 진행하고 있고 아직 봉헌도 하지 못한 시점에서, 어머니 팔순잔치를 열어드린다는 것이 도저히 용납되지 않았다. 예배를 마치고 저녁에 하면 되지 않느냐는 말도 있었지만 주일을 온전히 드려야 함을 생각하고 나는 결단했다. 나는 지금까지 하나님을 기쁘게 할 것인가, 사람을 기쁘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머뭇거림이나 아무 거침이 없었다.
나는 내 부모나 처나 자식이라도 정말 하나님 앞에서는 그 누구도 아껴보지 않았다. 나는 언제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에만 몰두해왔다. 그런 내가 어찌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겠는가. 나는 하나님께 깊이 회개하고 어머니께 나의 진실을 말씀드렸다. 옛날 같으면 펄펄 뛰셨을 어머니신데, 놀랍게도 이번에는 너무도 변하신 모습이었다. 나는 그런 어머니께 진지하게 말씀드렸다.
“어머니, 어머니 팔십 평생에 생일 감사헌금 드려보신 적 없지요? 이제라도 자식들이 잔치 해드린다고 모은 돈 500만원, 하나님께 드리시길 바래요.”
그러자 어머니께서 “아멘” 하시며 “그래, 주일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야지. 에미야, 나 생일잔치 안한다. 그날 미역국도 끓이지 말아라.” 하시는 것이 아닌가. 나는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 내 어찌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 누가 이런 엄청난 일을 이루실 수 있단 말인가. 어머니는 이 결단으로 올해 이미 일생일대 최고의 복을 받으신 것이니 나로서야 더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내가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렸더니 하나님께서는 우리 집안에 이런 큰 복으로 갚아주신 것이다. 이제 우리 어머니 여생에 더욱 하나님을 사모하고 많은 상급을 쌓으셔서 천국에서 크게 칭찬 받는 딸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