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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5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지금 네가 하는 말이 미래를 결정한다 (약 3:1 ~ 12)

275호 · 2005-06-02

처음 우리교회의 이름은 ‘철산예루살렘교회’이었습니다. 제가 개척한 동네의 이름을 따서 그렇게 붙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한국예루살렘교회’라 부르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철산리 지하에서 목회하던 시절이라 이 분부를 받잡는 것이 민망했습니다만 저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과감히 개명(改名)했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는 교회로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몇 해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집회 중 인도양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은 다시 교회 이름을 ‘예수중심교회(Jesus Centered Church)’라 명명(命名)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부터 ‘예수중심세계하나되기운동’이 세계적으로 펼쳐졌고, 전세계 교역자들을 교육하고 양성하는 시스템이 이루어져 명실 공히 세계적인 교회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사람을 쓰실 때 먼저 이름을 바꿔주신 적이 자주 있었습니다. 야곱이 그랬고, 베드로가 그랬고, 바울이 그랬습니다. 왜 이름을 바꾸셨는지 아십니까? 이름이란 사람들에 의해 자주 불리게 되어 그 이름대로 삶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이 ‘얘야, 말이 씨 된다. 말조심해라.’ 하십니다. 맞습니다. 말은 씨와 같아 뿌린 대로 나게 되어 있습니다. 포도 씨를 심으면 포도나무가 나오고, 무씨를 심으면 무가 나오듯 긍정적인 말을 뿌리면 긍정의 나무가, 부정적인 말을 뿌리면 부정의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그런데 자녀들에게 ‘빌어먹을 놈’, ‘망할 놈’ 하는 것을 예사로 아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나는 안 돼.’, ‘내 팔자에 무슨….’ 이런 말을 입에 노상 달고 사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가시나무 씨를 뿌려놓고 장미꽃이 피기를 바라는 것과 같고, 감람나무에서 포도를 기다리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아무리 물주고 공을 들여도 절대 장미도 포도도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 만고의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누에고치를 본 적이 있습니까? 누에가 자기 입에서 뿜어내는 실로 자기 몸을 칭칭 감지 않습니까! 말이란 것이 그렇습니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이 나를, 내 삶을 동여매게 됩니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니라’(약3:2).

그래서 저는 기도원에 입 모양을 만들어 성전 벽에 걸어두었습니다. ‘제발 입단속하고, 말 좀 잘 뿌리라’는 의미에서 말입니다. 긍정적이고 희망적이며 남을 살리는 말은 내 삶의 보약이나, 그렇지 않고 부정적이며 회의적이고 남을 죽이는 말은 내 삶을 죽이는 독약과 같습니다. 당신이 지금 부정적인 말을 내뱉었다면 당신은 한 모금의 독약을 마신 셈이고, 긍정적인 말을 했다면 당신은 보약 한 재를 먹은 것과 같습니다.

말이란 곧 마음입니다. 마음속에 있는 것이 말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됩니다.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긍정적인 사람인지 아닌지, 학식이 있고 없고, 인격이 갖추어져 있는지 아닌지를 알게 됩니다. 자고로 똥자루에서는 똥이 나오는 법이고, 쌀자루에서는 쌀이 나오는 것이니까요. 속에 있는 것이 나오는 겁니다.

언젠가 제가 성능 좋은 초소형 녹음기를 차고 하루를 지내본 적이 있습니다. 목사인 나는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자가진단(自家診斷)하는 차원에서 말입니다. 밤에 집에 돌아와 녹음된 제 말을 들어보니 정말이지 부정적인 말 하나 없이 다 긍정적인 말, 남을 살리는 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저를 칭찬했습니다. “이초석, 너는 역시 하나님의 종답다. 정말 대단해.”

저는 성도여러분들께 ‘나를 닮으라’고 종종 말합니다. 저를 닮을 것이 뭐 있겠습니까만 믿음과 열정, 그리고 늘 긍정적인 마음과 말만은 닮으라는 것입니다. 어찌 교회 없이 20년을 오는 과정이 평탄만 했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언제나 ‘우리 교회는 문제가 없다’고 뿌렸습니다. 예배장소가 없을 때에도, 교단에서 이단이라고 쫓겨났을 때도, 살인자요 사기꾼이라는 누명을 쓸 때도, 재정이 바닥났을 때도 ‘우리 교회는 문제가 없다’고 늘 말로 뿌렸습니다. 그랬더니 20년이 지난 지금 그 말의 씨가 잎이 나고 열매를 맺어 지금은 아무런 문제없이 순풍에 돛단 듯 잘 나가고 있습니다.

다윗이 그러지 않았습니까? 그는 압살롬에 쫓기고, 사울에 쫓기면서도 ‘시냇가에 심은 나무같이 만사가 형통하며 내게는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고백을 듣고 그에게 왕권을 넘기셨고 정말 부족함이 없게 하셨습니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민14:28).

가나안을 정탐하러간 10명의 사람들 중 여덟 명은 스스로를 ‘메뚜기 같다’고 했고,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했습니다. 그 결과 그 땅에 대해 악평과 부정적인 소견을 밝힌 자들은 다 죽었고,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말이 곧 당신의 미래입니다. 즉 ‘지금 어떤 씨를 심었느냐가 곧 내일 어떤 나무가 되느냐’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신문을 보면 암울한 말투성입니다. ‘경기회생불가’, ‘사상최대 경기 악화’라는 등 부정적인 말 일색입니다. 그런 말 대신 ‘우리는 어려운 IMF도 이겨냈으니 능히 지금의 난관을 이길 수 있다’, ‘이제 바닥을 쳤으니 올라갈 일만 남아있다. 다 같이 힘을 냅시다.’ 라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소망이 끓어오르지 않겠냐 이 말입니다. 왜 매스컴이 대단한 줄 압니까? 곧 말을 전달하는 매체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큰 배라도 키 하나로 움직입니다. 키는 극히 작은 것이나 그것이 좌로 움직이면 항공모함도 좌로 가고 우하면 우로 움직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이라는 배도 우리가 하는 말에 의해 희망의 나라로도 갈 수 있고, 절망의 나락으로도 떨어질 수 있습니다. 강원도 양양의 산불을 기억하십니까? 작은 성냥불 하나가 강원도 일대 산을 다 태웠습니다. 성냥불 하나 툭 던진 것이 몇날 며칠동안 산불을 내었듯, 툭 던진 말이 우리 인생을 다 태울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벙어리 귀신 들린 아이를 데리고 온 아비가 예수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라고 하자 예수께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외치셨습니다. 이는 무엇을 말씀하신 것입니까? ‘덥지도 차지도 않는 말에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기도에 응답하실 거야’가 아닙니다. ‘반드시 응답하신다’라고 뿌려야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병을 고쳐주실 거야’가 아니라 ‘고쳐주신다’ 라고 뿌려야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플러그를 콘센트에 반쯤 꽂으면 전기가 안 들어옵니다. 확실하게 꽂아야 불이 들어오고 전기가 흐르는 법입니다. 말도 그렇습니다. 분명하고 확실한 말이 사람에게는 신뢰를 주고, 하나님께는 믿음을 보이는 것입니다.

오늘 자녀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점검하십시오. 혹 부정적인 말을 하고 있다면 초달을 아끼지 말고 훈계하십시오. ‘커나가는 애들이 한 말인데.’ 하고 간과하면 나중에 가시나무아래서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실수로 씨를 뿌려도 싹이 나거든요. 부모들도 자녀들에게 좋은 말, 살리는 말을 하십시오. 교회 안을 휩쓸고 다니던 천방지축 빌리 그래함에게 ‘넌 활달해서 나중에 설교하면 잘 하겠다’는 한 할머니의 칭찬이 대 부흥사 빌리 그래함을 만들었고, 목청이 커서 늘 천덕꾸러기였던 임웅균이 ‘넌 목청이 커서 훌륭한 성악가가 될 거야’란 소리에 힘을 얻어 대한민국 공인 최고 성악가가 된 것입니다. 자녀에게 ‘넌 어쩜 그렇게 잘 생겼니.’ ‘넌 무엇이든 할 수 있어.’라고 말을 해주세요. 자기 스스로에게도 ‘하나님은 나를 돕고 계신다’라고 힘을 주고, ‘넌 할 수 있어.’ 라고 말하십시오. 반드시 잎이 나고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사과 씨 속의 사과를 헤아릴 수 없듯이 당신 말의 위력도 헤아릴 수 없다

매사 오늘에 최선을 다하면 미래가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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