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중의 최대 농사는 자식 농사다 (시 127:1~5)
자꾸 제 아들 얘기를 해서 아들 녀석들에게 좀 미안한 마음도 없진 않지만, 그러나 여러분에게 유익하다면 저는 지금까지 저나 제 가정의 어떤 부끄러운 면도 개의치 않고 공중 앞에서 증거해왔기에 지난 얘기지만 좀 해볼까 합니다. 지금도 이 얘기를 꺼내면 둘째 녀석은 손사래를 치곤하지요.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집회 때 목회자 세미나에서 거기까지 찾아온 둘째 녀석을 앞으로 불러내서 직접 말하라고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 때가 아마 둘째 녀석이 중학교에 다닐 때인가 봅니다. 그 때는 매주 전국으로 부흥회를 다니던 시절이라 월요일이면 보따리를 싸서 나갔다가 금요일에야 집으로 돌아오곤 했었습니다. 그 날도 부흥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대문 앞에서 오토바이를 탄 아저씨가 둘째로부터 검은 비닐봉지를 받아 나오더군요. 그래 그 아저씨를 불러 물어보았죠. 비디오가게에서 비디오테이프를 수거하러 오신 분이었습니다. 대문으로 들어서니 둘째 녀석이 번개같이 달려 나와 저에게 잘 다녀오셨냐고 인사를 합니다.
“호규야, 누가 왔다가셨냐?”
“아, 예에~, 슈퍼마켓에서 배달 왔다 갔어요.”
인석이 내가 다 확인한 줄도 모르고 거짓말을 하는 거였습니다. 물론 내가 워낙 무섭게 교육을 하기에 지레 겁먹고 그랬겠지요. 그러나 저는 어릴 때부터 아들들이 거짓말을 하면 창고에 가둬서라도 반드시 징계를 통해 거짓말은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임을 주지시켜 왔었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이 그래도 거짓말을 하는 겁니다. 저는 그 때부터 4개월 동안 둘째 놈을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인사를 해도 받아주지 않고 일절 사람 취급을 안 한 것이지요. 후에 그 녀석이 저에게 울며 하는 말이 차라리 아버지한테 매를 맞고 용서를 받는 게 낫지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고 하더군요. 어쨌든 그 후로 우리 아들들에게 거짓말은 발붙일 틈도 없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 자녀들을 아주 엄하게 교육시켜왔습니다. 제가 자주 돌볼 시간이 없는데다가 목회자 자녀들이 삐뚤어지는 경우가 허다함을 잘 알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양육한 것입니다. 얼마나 엄격했는지 한번은 두 아들놈들이 제가 친아버지가 아닌 것 같다는 얘기까지 하더군요. 그러나 아비가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어찌 징계하겠습니까? 남의 집 자식이라면 잘못 좀 한다고 그럴 수 있겠습니까? 그냥 쯧쯧 혀를 차고 말 뿐이지요. 이는 아마 모든 아비, 어미의 마음일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순종하지 않는 자들을 멸절시키겠다고 경고하시는 말씀(신6:15)을 오해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멸망이나 저주에 있지 않습니다. 그분의 뜻은 오로지 당신의 자녀들이 그릇된 길로 가지 아니하고 당신의 말씀 앞으로 나와 순종하며 복을 받아 세상을 지배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를 죽여서까지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몸부림치신 것입니다. 따라서 그분이 주시는 경고의 말씀은 바로 아비의 심정으로 외치는 절절한 사랑의 음성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요즘 부모들이 너무나 자녀들을 오냐오냐 하며 키우는 것 같습니다. 옛날처럼 자녀들이 많을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요즘은 하나, 많아야 둘밖에 안되니 자식이 무엇보다 귀하고 귀하겠지요. 그러나 그렇다고 너무 받아주기만 하다가는 나중에 그 자식들로 인해 고통 받게 됨을 명심해야 합니다. 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재능이 뛰어나면 뭐합니까?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심방을 가서 예배를 인도하려는데 그 집 어린 아들이 불쑥 나오더니 어미에게 돈을 달라고 하더랍니다. 지금은 예배 중이니 이따 주겠다고 했더니 다짜고짜 어미의 뺨을 때리고 나가더랍니다. 너무 놀라 어리둥절해있는 목사님에게 역시 당황한 그 어미가 하는 말이 참 황당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목사님, 그래도 저 애가 학교에서 1등하는 우등생이랍니다.”
“아니, 집사님. 1등 아니라 그 할아비라도 그런 자식을 어디다 쓰겠습니까? 그게 어디 사람입니까? 짐승과 다를 게 무엇입니까? 자녀 교육 단단히 시키세요.”
목사님은 이렇게 단호히 말씀하고는 돌아서 나왔답니다. 정말 착각도 보통 착각이 아닙니다. 개망나니로 길러놓고 나중에 어떤 꼴을 당하려고 하는지 한심할 따름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버려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잠29:15). 정말 이 경우에 딱 들어맞는 예언의 말씀 아닙니까?
근래에 아비, 어미를 욕되게 하는 자식들로 늙은 아비가 홀로 죽어가고 자식에게 맞아 죽고 하는 어처구니없는 사건들이 일어나곤 합니다. 다 교육부재에서 오는 현상들입니다. 어린가지는 잘 휘기 때문에 잡아서 곧게 자라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커버린 나무를 바로 잡으려하다가는 부러지고 마는 법입니다. 초달을 아끼지 마세요. 자기 자녀를 때렸다고 학교로 달려가 선생님들에게 따지는 몰상식한 부모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외려 그런 선생님께 감사를 표할 수 있는 지각 있는 부모가 되어주십시오.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잠13:24)
‘네 자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평안하게 하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잠29:17)
개, 돼지는 그냥 두어도 개, 돼지가 됩니다. 그러나 사람은 내버려두면 짐승이나 다름없게 됩니다. 사람은 반드시 교육을 받아야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 받은 자는 하나님의 자녀로 세상의 머리가 되는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요즘 자녀들을 돌보기는커녕 돈만 쥐어주며 사육하는 무책임한 부모들이 많습니다. 사육은 잡아먹으려고 하는 겁니다. 그러나 양육은 사회의 책임 있는 구성원으로 키워 남을 가르치며 이끌 수 있는 인재로 만들어내는 일입니다. 자녀를 사랑으로 양육하는 것은 부모의 책무입니다.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라고 오늘 본문에 말씀하지 않습니까? 기업을 잘 경영하는 길은 기초를 튼튼히 하고 지속적인 관심으로 점검하며 관리하는 것입니다. 경영은 곧 관리요 점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교육에 대해 얼마나 강조하셨는지 자녀들이 집에 앉아있거나 길에 다닐 때나 자고 일어날 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손목에, 미간에, 집 문설주와 바깥 대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라고 까지 말씀하셨습니다(신6:7~9). 말하자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부지런히 자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라는 말씀 아닙니까?
또한 자녀들에게 명령합니다. 부모에게 효하라고 말입니다. 이는 약속 있는 이 땅의 첫 계명입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이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2,3)’
부모에게 효하는 사람치고 못된 사람 없습니다. 예로부터 효자 집안에서 충신이 난다고 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부모도 섬기지 못하는 자가 어찌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을 섬기겠습니까?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는 겁니다.
제가 올해 일생일대 최고의 복을 받자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가정이 바로 서고 예배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자녀를 올바르게 양육하는 길은 무엇보다 먼저 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정예배를 통해 자녀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오늘 당장 시행하세요. 매일 말씀만 듣고 마는 삶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자식농사가 최고의 농사임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또한 부부가 서로 사랑으로 화합하는 것 이상 더 좋은 교육이 없습니다. 가정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따뜻한 5월입니다. 오늘 말씀이 여러분 심령에 잘 박힌 못이 되어서 사랑이 무르익는 아름다운 가정들로 활짝 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집은 돈으로 세울 수 있을지 모르나 가정은 사랑으로만 세워지는 것이다
어린 가지는 잡을 수 있어도 큰 가지는 잡다 부러질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