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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맛을 잃지 않으면 멸망하지 않는다 (롬 9:15 ~24)

262호 · 2005-03-03

사람들은 조석변(朝夕變)입니다. ‘화장실 갈 때 마음 다르고, 올 때 마음 다르다’는 말이 있듯이 변덕이 죽 끓듯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때는 ‘하나님은 나만 사랑하시나봐’ 하다가도 조금 환난이 오면 ‘하나님이 계시기는 한 거야?’ 하는 자들을 많이 봅니다.

그러나 나뭇가지는 바람이 불어 잎이 떨어져야 잘 보이는 것처럼, 믿음은 고난을 통과해봐야 제대로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과 환난을 주신 것은 우리가 미워서 고생시키려는 것도, 잘못했다고 벌주시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을 통하여 믿음을 성장시키려고, 그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체육시간에 장애물 경기를 해보셨지요? 100m 장애물 경기를 하면 장애물은 약 10m 간격으로 여러 개가 놓여 있었습니다. 하나를 넘고, 조금 가다 또 하나를 넘고 몇 개를 넘어야 결승점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장애물을 설치할 때 선생님이 제자들을 넘어뜨리려고 일부러 만들어 놓았을까요? 또 넘지도 못할 정도로 높이 설치하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장애물은 조금 노력하면 누구나 넘을 수 있도록 만들고 설치합니다. 장애물 경기는 교육의 일환이고, 훈련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고난과 환난은 신앙생활의 일부이며, 성장을 위한 교육이며 훈련인 것입니다.

고난과 환난 중에도 한결같은 믿음을 보이는 자들을 볼 때 감사가 절로 나옵니다. 정말 하나님을 원망할 만도 한데 변함없이 그리고 묵묵히 믿음을 지키는 자들을 볼 때면 가슴 한 편이 뭉클해지곤 합니다. 제가 이 정도인데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시겠습니까? 그들은 변질되지 않는 맛을 지닌 자들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소금입니다. 그러나 소금이 맛을 잃으면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밟힌다고 했습니다. 신앙의 맛, 즉 믿음이 변질되거나 아예 믿음을 잃어버리면 맛을 잃은 소금같이 하나님께 버림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 2:4).

성경은 신앙의 맛을 지킨 자와 신앙의 변절자, 즉 맛을 잃은 자에 대하여 적나라하게 적어놓았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금신상에 절하지 않아 풀무불에 들어갈 위기 앞에서도 그들의 믿음을 지켰고, 다니엘은 삼십일 동안 왕 외에 다른 신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들어간다는 금령 앞에서도 굳건히 신앙을 지켰습니다. 그들은 고난과 환난 앞에서도 끝까지 맛을 지킨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그들을 풀무불에서, 사자굴에서 구원하셨고, 그 전보다 더 놓은 영광의 자리에 앉히셨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처음의 믿음을 버려 왕의 자리를 빼앗겼을 뿐 아니라 자식과 함께 죽는 비운을 맞았고, 가룟 유다는 예수를 은 삼십 냥에 팔아 넘겨 배창자가 터져 죽는 최후를 맞습니다. 맛을 잃으면 이렇듯 비참한 말로(末路)를 맞게 됩니다.

오늘날 가정이 왜 그토록 많이 깨져나가는 줄 압니까? 맛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남편의 맛을 잃었고, 아내가 아내의 맛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맛이란 곧 멋과도 상통합니다. 서로가 맛을 잃으면 서로에게 멋을 찾을 수 없고, 그러니 각기 밖으로 돌게 되는 것입니다.

세월이 가서 모습은 변할 수 있습니다. 아름다움도 사라지고 얼굴에 주름이 잡히고 머리에 흰 꽃이 피게 됩니다. 이처럼 모습은 달라질망정 맛이 변하면 안 됩니다. 진정한 맛은 오래 묵을수록 나는 법입니다. 간장이나 된장은 오래 묵은 것이 더 구수한 법이고, 인사동에 가면 오래된 것이 더 친근합니다. 남편들이여, 아내들이여! 맛을 잃지 않는 것이 가정을 지키는 법입니다.

왜 정치인들이 쇠고랑을 많이 차는 줄 아십니까? 맛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정치에 입문할 때는 애국(愛國), 애민(愛民)사상으로 무장되어 있던 자들이 어느 덧 해이해져 점점 재력과 결탁하여 국민은 안중에도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늘 언제나 그 맛 그대로 지닌 채로 국민을 위해 사는 정치인들도 있습니다. 국민들은 그들의 맛이 변치 않을 것을 먼저 알고 다음 선거에도 그들에게 표를 던지는 것입니다.

기업도 맛을 잃으면 언젠가 문을 닫게 됩니다. 많은 기업들이 어떤 상품에 좀 인기가 있다 싶으면 어느새 슬쩍 제품의 질을 떨어뜨리거나 단가를 올리거나 하는 얄팍한 수법을 씁니다. 요즘 사람들이 어디 바보입니까? 그럼 한순간 등을 돌리게 되지요.

저는 남미집회 경유지로 미국 LA에 자주 가는데 그때마다 꼭 가는 음식점이 있습니다. 북창동 순두부집인데 그 집은 언제나 사람이 북적거려 예약을 하거나 줄을 서야 합니다. 늘 나를 인도하는 집사에게 ‘왜 그 음식점이 그렇게 늘 성황중인가?’ 물었더니 ‘목사님은 그럼 왜 늘 이곳으로 오십니까?’ 하고 반문하며 ‘처음 개업했을 때부터 그 깊은 맛 그대로 변치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맛이 한결같으면 사람들이 찾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진리를 버리고 문화적인 면에 치우치게 되면 사람들의 혼을 채워 잠깐 동안은 사람들이 몰릴지 모르나 곧 영적 갈증을 느끼는 성도들이 그곳을 떠나게 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곳입니다. 교회가 맛을 잃으면 유럽의 교회처럼 박물관이나 관광지가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 예수중심교회는 확실하고 고유한 맛을 지니고 있습니다.

방언으로 뜨겁게 기도하고,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으며 각색 질병을 치료하고 예수의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체육관에서 예배를 드려도 부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천한 제가 오늘날 세계 70여 개국에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이유는 제가 맛을 잃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로 저는 첫사랑을 잃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능력을 누가 뭐라고 해도 지켜왔습니다.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는 썬다싱의 말대로 저는 귀는 막고 오직 앞만 보며 달렸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은 분에 넘치는 축복을 제게 주셨습니다.

누구나 고유한 맛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달란트라고 합니다. 그런데 자기 달란트는 우습게 여기고 남의 것만을 부러워하고 탐내는 자들이 있습니다. 본래 남의 떡이 커 보이는 것이고, 남의 잔디가 푸르게 보이는 것입니다. 농가의 한 집에 개와 닭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개는 늘 집을 지키는 것에 비해 닭은 아침에 지붕에 올라가 ‘꼬끼오’ 하고 한 번 우는 것으로 주인을 깨우는 것이 고작인데 주인은 늘 닭을 칭찬했습니다.

주인의 사랑을 받고 싶은 개는 어느 날 이른 아침에 지붕에 올라가 닭처럼 하늘을 보고 ‘멍멍’ 하고 짖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개가 망령이 낫나?’ 하더니 식당에 팔아버렸습니다.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롬 9: 20).

자기 고유의 맛을 살리고 지킵시다. 크리스털 그릇은 비싸고 좋은 것이지만 어쩌다 한 번 주인의 손에 들릴 뿐입니다. 그러나 밥그릇은 크리스털 그릇보다 비싸지는 않지만 늘 주인 곁에서 주인의 건강을 챙기고 있지 않습니까? 토기장이가 쓸 곳과 용도를 알고 토기를 만들듯이 하나님은 우리에게 맞는 달란트를 주신 것이니 감사하며 주어진 달란트를 가지고 최선을 다해 주를 위해 삽시다.

우리말에 ‘맛이 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음식을 두고 ‘맛이 갔다’고 하면 음식이 쉰 것을 말하고, 사람이 ‘맛이 갔다’고 하면 제 정신이 아니거나 옛날 같지 않고 이상할 때 쓰는 말입니다. 맛이 간 사람이 되면 안 됩니다. 어떠한 고난이 와도 믿음을 지키는 맛을 잃지 않는 성도가 되며,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되도록 남편은 남편의 맛을, 아내는 아내의 맛을 지켜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고 지킵시다. 기업인은 양심을 지켜야 그 맛이 영원하게 되고, 정치가도 돈을 멀리하고 국민을 가까이 하는 것이 맛을 지키는 방법이며, 교회는 다시 1세기 교회로 돌아가는 것이 맛을 찾는 비결입니다. 맛을 지킵시다. 맛을 잃었다면 그 맛을 다시 찾읍시다. 할렐루야!

남의 잔디가 더 푸르게 보이고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법이다

포장과 그릇은 변할 수 있으나 진리의 맛이 변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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