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과 동업하지 말라 (대하 18:28 ~19:2)
일생일대 최고의 복을 받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악한 자와 함께하지 말고, 악한 자와 동업하지 말며, 악한 자의 자리에도 앉지 말아야 합니다. 생선가게에 들어가면 생선을 만지지 않아도 비린내가 몸에 배게 되어 있고, 숯 가까이 있으면 바람에 저절로 숯이 묻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둘째 아들 녀석이 속을 썩여서 몽둥이로 때린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 형은 동생이 맞는 것이 안타까웠던지 감싸다가 대신 몽둥이를 맞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맞는 사람 옆에 가면 같이 맞게 되어 있다. 저리 가라.”고 큰 아들 녀석에게 호통을 친 적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장작 패는 옆에 가면 튕겨져 나온 장작에 눈이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떡 치는 이 옆에 가면 떡고물이라도 챙기게 되는 것입니다.
당신은 누구와 함께하고 있습니까? 만일 당신이 악한 자와 함께하고 있다면 당신은 악한 자의 공범입니다. 공범은 주범과 함께 처벌받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여호사밧이 그 경우입니다. 여호사밧은 분명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여호사밧에게 부귀와 영광이 극에 달하도록 축복하셨습니다.
그런데 여호사밧이 그만 아합의 딸을 며느리로 맞아들이는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여호사밧이 아합왕을 방문했을 때, 아합왕은 수리아의 손에서 길르앗 라못을 되찾는데 공동전선을 펼 것을 제의합니다. 선지자 미가야가 이를 저지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말을 무시하고 전쟁터에 나간 아합은 선지자 미가야의 예언대로 죽고 유다왕 여호사밧은 하나님께서 살리셨습니다. 전쟁에서 패배하고 돌아온 여호사밧을 만난 하나님의 사람 예후는 이렇게 말합니다.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이 가하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
정책적인 차원으로 보면 아합을 도운 여호사밧의 결단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현명한 판단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앙적인 면에서 볼 때 아합은 우상을 숭배하는 자였고, 그의 백성들을 저급한 우상숭배로 몰아넣은 장본인이었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적이었던 것입니다. 여호사밧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싸운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를 도운 것이므로 곧 하나님을 대적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공범이 된 것입니다. 고로 그에 상응한 보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를 돕는 것은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됩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 믿는 자를 잡으러 혈안이 되었을 때, 다메섹에서 한 음성을 듣게 됩니다. “사울아 사울아 어찌 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사울이 놀라 “뉘시니이까?” 하고 묻자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울은 예수를 핍박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예수 믿는 자를 핍박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좇는 자들을 핍박한 것이 곧 예수를 핍박한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 제가 우리 교회 소속 목사를 지교회에 파견했는데 그 교회가 그를 대접하지 않고 멸시했다면 그들은 그 파견된 목사를 무시한 것 뿐 아니라 저를 무시한 것 아닙니까?
악한 자를 따라가면 악한 자와 함께 멸망을 받게 됩니다. 모세에 대항한 오만불손한 고라와 그의 추종자 250명의 족장이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은 그 온 가족과 함께 땅에 삼킨 바 되고, 250인은 불로 소멸되었습니다(민16장 참조). 또 루시엘이 하나님을 대적할 때 동조했던 천사 3분의 1이 영원히 결박당한 것을 보고 깨달아야 합니다.
복 있는 자는 절대 악인을 좇지 않습니다. 복 있는 자는 하나님의 사람과 함께하며,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과 동업하며, 하나님의 사람을 돕습니다. 그러면 그는 하나님을 돕는 자로, 하나님의 동지로 기억될 것입니다. 엘리야에게 먹을 것의 전부를 대접한 사르밧 과부와 엘리사를 성심성의껏 대접한 수넴 여인은 죽은 아들을 되돌려 받는 축복뿐 아니라 엄청난 물질의 축복도 아울러 받았습니다.
또 기생 라합은 여리고에 파견된 정탐군들을 숨겨주고 그들이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하여 여리고가 함락된 때 일가족이 함께 구원되는 축복을 받습니다. 성경을 주목하십시오. 예수를 도운 요안나, 수산나 그리고 사도 바울을 섬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하나님께 기억된 바 되어 하늘의 축복을 받지 않았습니까! 이처럼 하나님의 사람을 도운 사람들, 하나님의 사람과 동업하는 자는 하나님의 확실한 축복을 받습니다.
지금 당신은 누구와 동업하고 있습니까? 성경은 분명히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돈 때문에, 명예 때문에, 권력 때문에 믿지 않는 자, 즉 하나님과 반대편에 선 자와 선뜻 손을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잠시 잠깐은 아무 일 없고 순풍에 돛단 듯 순탄한 것 같지만 그 결과는 언젠가 폭풍과 태풍을 만나게 되고 맙니다.
믿지 않은 자와 결혼을 했다고 합시다. 주일마다 교회에 나가는 것부터 부딪치게 될 것이고, 명절에 제사문제로 언제나 다투게 되며, 순간순간 밀려오는 영적 갈등은 어쩔 겁니까? 소와 양이 멍에를 같이 메었으니 그 결과가 어쩌겠냐는 겁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외적 요건을 보고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안에 계신 하나님을 보고 결혼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믿지 않는 자 혹은 우상을 숭배하는 자와 동업한다고 칩시다. 우선 개업일부터 의견대립이 될 것입니다. 안 믿는 자는 돼지머리 놓고 고사를 지내야 한다고 우길 것이고, 당신은 예배드리자고 할 것이고…. 문 열기 전부터 티격태격하니 어찌 그 사업이 순탄하게 가겠습니까? 아마 배가 산으로 갈 겁니다. 그러니 처음부터 어떤 사람과 동업해야 하며, 결혼해야 하며, 어떤 자리에 앉아야 하는지 잘 생각해야 합니다.
제게 두 아들이 있는데 이제 장성하여 결혼할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에 둘째 아들이 사귀는 여자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들어보니 정말 나무랄 데 없는 아가씨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를 안 믿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단호하게 ‘안된다.’고 했습니다. 아들 녀석이 ‘그 여자랑 결혼하지 못하면 죽는다.’고 되려 아비인 저에게 엄포를 놓았지만 저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완강했습니다. 결국 아들 녀석은 그 아가씨와 헤어졌습니다. 제가 왜 제 아들 가슴 아픈 줄 알면서 그리 했겠습니까! 그 녀석이 잘되라고 그런 것입니다. 믿지 않은 여자와 결혼하여 신앙이 헤이해지고 나태해지면 지금 가슴 정도겠습니까?
사업 종류도 하나님이 원치 않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쓰라’고 했다고 돈 되는 것이면 무조건 덤비면 안됩니다. 언젠가 일본에 갔을 때 어떤 집사가 제게 심방 좀 가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갔더니 술집이었습니다. 집사는 “술집 주인이 십일조도 많이 드리고 열심이다.”고 제게 설명했습니다. 저는 그 집에 가서 기도하기를 “하나님, 얼른 이 술집이 문 닫게 해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저를 데려간 집사가 몹시 당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어느 부모가 자기 딸이 몸 팔아 번 돈으로 호의호식하고 싶겠습니까? 그 술집 여인은 깨닫고 저를 찾아와 고백했습니다. “많은 목사님들이 심방을 오셨지만 목사님 같은 분은 없었습니다. 곧 청산하겠습니다.”
의와 불법이 함께할 수 없고, 빛과 어두움이 공존할 수 없으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조화될 수 없습니다. 고로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메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편에 설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반대편에 설 것인가를 생각하십시오. 그 결정은 당신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책임도 당신이 져야 함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저는 평생에 하나님의 편에, 하나님의 사람 편에, 하나님의 일에 동참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과 사랑을 입는 길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일생일대 최고의 축복을 받는 비결, 그것은 악한 자와 동업하지 않는 길임을 명심하십시오. 할렐루야!
죄는 용서받을 수 있으나 죄의 대가는 반드시 치러야 한다
하나님 편에 설 것인가 마귀의 편에 설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