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속에 미래가 있다 (잠 27:1)
미국의 한 젊은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장군이 되고픈 마음에 군 입대를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가 배치된 곳은 군의 식사를 담당하는 취사반이었습니다. 그곳은 청년이 꿈꾸던 것과는 너무 다른 곳이었습니다. 낙심하던 그는 불현듯 성경 말씀을 생각해냈습니다.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마6:34).’ 그는 생각했습니다. ‘그래, 오늘만이 인간의 것이지 내일은 내 권한 밖의 것이야. 나는 내게 주어진 오늘에 충실하면 되는 거야. 내일 일은 하나님의 일이야.’ 그는 취사일이 끝나면 장군이 되기 위한 전술, 전략에 관한 책을 탐구하는 등 오늘에 충실했습니다.
그는 그 후 16년 동안 소령계급장을 달고 있었지만 불안해 하지 않고 늘 오늘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결국 그런 그는 맥아더 장군의 눈에 띄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3년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5성(星)장군으로 도약했고, 그는 유럽연합군 최고사령관으로 임명됩니다. 그리고 노르만디 상륙작전을 감행하여 성공시킴으로 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키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우게 됩니다.
전후(戰後), 그는 미국 대통령에 출마하여 8년 간의 대통령직을 수행했는데 지금까지 그는 많은 미국인들의 기억에 남은 인물입니다. 그가 바로 아이젠하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일에 대한 꿈을 꿉니다. 그러나 내일의 기반이 되는 오늘에는 무성의하고 나태합니다. 이는 마치 지하 없는 고층빌딩을 짓겠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가당치 않은 일이란 뜻입니다.
우리는 지나간 시간을 과거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과거를 살았습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산 것은 분명히 오늘이었습니다. 지나간 오늘이 과거입니다. 마찬가지로 다가올 오늘이 미래인 것입니다. 곧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오늘 뿐입니다. 고로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은 우리의 최초의 날이며, 최후의 날인 것입니다. 오늘을 최초의 날이며, 최후의 날로 생각한다면 오늘 할 일을 어찌 내일로 미루겠으며, 어찌 오늘을 대충대충 살겠습니까?
마을의 젊은이가 사또를 찾아가 물었습니다. “사또님,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르쳐 주십시오.” 사또는 청년의 물음에 “가서 큰 사발에 술을 가득 담아오너라.”고 하인에게 명령했습니다. 하인은 즉시 사발 가득 술을 담아 가져왔습니다. 사또는 이 젊은이에게 사발을 건네주며 말했습니다. “이 술이 담긴 사발을 들고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오너라.” 그리고 이어 포졸을 불러 명령했습니다.
“너는 이 청년이 동네를 돌 동안 동행하다가 이 자가 술을 한 방울이라도 떨어뜨리면 즉시 칼을 꺼내 청년의 목을 치거라.” 젊은이는 사또의 말에 심히 놀랐으나 사또의 기세에 눌려 동네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술을 흘리지 않기 위해 진땀을 흘리며 애를 쓴 청년이 간신히 돌아오자 사또가 물었습니다. “동네를 도는 동안 무엇을 보고 들었느냐?” 그러자 젊은이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아니, 술을 떨어뜨리면 목숨이 날라갈 판인데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들을 수 있었겠습니까?
아무 것도 보지 못했고, 듣지도 못했습니다.” 그러자 사또는 말했습니다. “그렇다. 네가 목적을 세우고 그것을 이루지 못할 때 뒤에 칼이 너를 내리친다고 생각해라. 그러면 네가 지금처럼 그 일에 최선을 다하게 될 터이니 반드시 성공하게 될 것이다.”
맞습니다. 오늘 하루에 배수진을 치는 것이 성공의 비결입니다. ‘오늘 못하면 내일하지.’가 아니라 ‘오늘 나에게 주어진 일을 못하면 나는 죽는다.’라고 생각한다면 오늘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술을 흘리면 포졸이 칼로 내리칠 거야.’ 하는 생각으로 오늘을 임한다면 무엇인들 이루지 못하겠습니까? 사도 바울도 자신의 생활, 즉 오늘에 배수진을 쳤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전9:16).’
악한 마귀는 우리에게 ‘내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래, 기도하지 말라는 게 아냐. 오늘 피곤하니까 내일 해.” “오늘만 세상에서 즐기고 내일 교회가면 되잖아.” 합니다. 그러나 그 내일은 영원히 내일입니다. ‘오늘만은 기도해야지.’ 하면 그것이 평생이 되는 것이고, 정말 내일 응답을 가져올 것입니다.
‘오늘만은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하면 내일 성공을 얻을 것이며, ‘오늘만은 내 가족을 사랑해야지.’ 하면 영원히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누가 그러지 않습니까? ‘돈 벌어서 효도해야지.’ 했더니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안계시더라고…. 오늘 효도하고, 오늘 사랑하고, 오늘 공부하고, 오늘 주의 일하고, 오늘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종착역이 오늘이며, 내일의 시발점이 바로 오늘입니다.
저는 절대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습니다. 오늘 해야 할 일은 밤을 새워서라도 마치고야 맙니다. 그러다보면 식사를 거르고 종횡무진(縱橫無盡)해야 할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사흘씩 꼬박 밤을 새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했기에 오늘날 세계를 교구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공이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일의 성공이란 오늘과의 한 판 씨름입니다. 지금 어떻게 샅바를 잡았느냐가 승패를 좌우하는 것처럼, 오늘 무엇을 어떻게 했느냐가 내일의 성패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즉 오늘에 사활(死活)을 거는 겁니다. 사활을 걸면 최선을 다하는 것은 당연지사이고, 그러면 오늘에 성공하게 되고, 오늘의 성공은 곧 내일의 성공으로 이어지게 되는 겁니다. 주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눅13:33).’
내일은 우리 능력 밖입니다. 고로 내일 일을 자랑하지도, 내일 일을 염려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야곱이 그토록 사랑하던 아들 요셉을 만나기 불과 며칠 전까지 그는 그의 아들 시므온이 애굽에 볼모로 잡혀 있어 심히 슬퍼하고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며칠이 못 되어 요셉을 상면했던 것입니다. 반대로 기고만장하던 벨사살왕은 예루살렘 전(殿)의 기물에 술을 따라 마시다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서 하루 저녁에 죽고 맙니다. 고로 내일에 교만해서도, 내일에 낙망할 필요가 없이 우리는 오늘에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내일의 자산이요, 오늘 만이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입니다. 자산 없는 사업은 승산이 없고, 시위를 떠난 활은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결단합시다. ‘오늘을 나의 일생(一生)으로 살겠다.’고 말입니다. ‘오늘을 최후의 날로 생각하고 살겠다.’고 말입니다. 그러면 오늘 최선을 다하게 되고, 오늘 깨끗하게 살게 되고, 오늘 사랑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럼 아름다운 미래가 당신을 향하여 손짓하며 달려올 것입니다.
내일 여유 있게 살고 싶으십니까? 오늘 저축하십시오. 내일 성공하고 싶으십니까? 오늘 노력하십시오. 내일 행복하기를 원하십니까? 오늘 사랑하십시오. 내일 하늘의 면류관과 상을 얻기를 원하십니까? 오늘 주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충성하십시오. 바보들은 매일 결심만 합니다. 당신은 바보가 아닙니다. 바로 오늘, 바로 지금 행하십시오.
오늘 해야 할 일을 최선을 다하여 하셨습니까? 내일 하시겠다고요? 뒤에 칼을 든 포졸이 있는데도요? 등 뒤에 벼랑이 있는데도요? 오늘 하십시오. 할렐루야.
오늘은 내일의 자산이요 오늘만이 주어진 기회다
바보들은 매일 결심만 한다 오늘 결단하고 행동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