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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관객 없는 배우는 없다 (창 39:1~23)

243호 · 2004-10-19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할까요? 수영장에 가면 화장실이 한가합니다. 여름철 아이들이 북적일 때도 화장실은 대조적으로 한가하기만 합니다. 왜냐하면 대부분 사람들이 수영장 안에서 급한 것을 해결하기 때문입니다. 물 속에 실례를 해도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굳이 화장실까지 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수중카메라를 설치해 놓았다고 수영장 이용객에게 알린다면 과연 그런 몰상식한 행동을 할 사람이 있을까요?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면 부도덕한 행동, 비신사적 행동, 그리고 비상식적인 행동을 자제하고, 의식적으로 모범적이며, 바람직한 행동, 선행만 골라 할 것이 분명합니다. 누구나 사람들의 시선에 민감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사람들 대부분이 두 얼굴을 가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이 보는 곳에서와 보지 않는 곳에서 전혀 다른 얼굴, 전혀 다른 인격체가 되는 이중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어느 때의 모습이 진정한 자신의 모습일까요? 물론 혼자 있을 때,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을 때 표현되는 모습이 자신의 본모습일 것입니다.

인생은 연극 무대요, 우리는 그 무대 위의 배우입니다. 그런데 연극을 보러 가보면 객석은 굉장히 캄캄합니다. 무대에는 조명이 비추어 환하지만 관객이 있는 객석은 어두워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배우는 관객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딴청을 부리거나 대충 연기하지 않습니다. 맡겨진 배역을 최대로 표현하려고 최선을 다합니다. 왜냐하면 관객은 보이지 않으나 관객이 바로 가까이에서 보고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혼자 있을 때가 이런 경우입니다. 아무도 없다는 것은 객석에 불이 꺼져있는 것일 뿐입니다. 보이지 않으나 분명히 우리를 보고 있는 관객이 있습니다. 그 관객은 곧 하나님과 천사, 그리고 악한 영입니다. 하나님과 천사, 악한 영의 눈은 피할 수 없습니다. 객석이 캄캄할수록 무대는 더 잘 보이거든요.

오늘 본문의 요셉은 늘 하나님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음을 시인한 사람입니다. 어두운 객석에도 관객이 있음을 알고 최선을 다하여 스타가 된 사람입니다. 요셉은 형들에 의해 바로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범사에 형통케 하심으로 그는 그 가정의 총무로 모든 일을 관할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의 준수한 외모에 매료되어 동침하기를 청합니다.

그 때 보디발의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고 성경에 적혀 있습니다. 불이 꺼져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요셉은 옷을 잡는 보디발의 아내를 밀치고 도망했습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요셉은 사람은 없으나 하나님이 불꽃같은 눈으로 늘 감찰하고 계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른 처신을 한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은 요셉을 향하여 기립박수를 치시며 “부라보!”를 외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를 높이사 시위대장보다 높은 국무총리 자리에 앉히셨습니다.

관객이 인정하면 스타가 되는 겁니다. 대박 나는 것이 무엇입니까? 관객이 많이 드는 영화나 연극이 대박 나는 것 아닙니까? 곧 관객이 스타를 만드는 겁니다. 관객의 평가에 따라 일류가 되느냐, 삼류가 되느냐 판가름이 나는 것입니다. 스타가 되면 부와 명예, 그리고 인기는 절로 따라오는 것이지요. 만일 요셉이 까짓 질끈 눈 한번 감고 보디발의 아내의 청을 들어주었더라면 관객 중에 악한 것들이 일어나 “부라보!”를 외쳤을 것이고, 요셉은 삼류인생으로 전락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을 피할 수 있을까요?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후 하나님의 눈을 피하여 나무아래 숨었지만 하나님은 다 보고 계셨고,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였을 때도 하나님은 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우리아를 죽이고 그의 아내를 취했을 때도,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그의 재산을 팔아 일부를 숨기고 베드로 앞에 내어 놓았을 때도 하나님은 다 보셨던 것입니다. 사람의 눈은 속일 수 있으나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너희를 감찰하시면 좋겠느냐 너희가 사람을 속임같이 그를 속이려느냐’(욥13:9). 그러므로 사람이 보지 않는다고, 혼자 있다고 거짓되게 살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항상 내 길을 감찰하시고, 내 걸음까지 세고 계신다는 것을 안다면 늘 의롭고 깨끗하고 정직하게 살게 될 것입니다.

저는 설교할 때 흰 양복을 입습니다. 그것은 ‘깨끗하게 살겠다.’는 제 의지의 표명입니다. 사람 앞에서 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고 거짓 없이 살려고 늘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 ‘큰 자가 되기 전에 깨끗하고 진실한 자가 되라.’고 늘 제자들을 독려하고 있고, 제 자신이 먼저 본이 되려고 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그 나라에 가면 제 일생이 다큐멘터리로 상영될 것을 저는 압니다. 거기에는 저 혼자 있을 때 모습까지 낱낱이 기록되어 있을 겁니다. 그 때 부끄러운 행동으로 인하여 난감해 하지 않으려고 주님 앞에 얼굴 못 들 일을 아예 하지 않으려 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당신은 어떻게 행동하십니까? 추잡하고 더러운 행동은 하지 않습니까? ‘설마 누가 보겠어?’ 하며 다른 인격체로 변신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람들이 여행을 가면 많이 풀어지는데 이는 ‘여기엔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여행지에 아는 사람은 따라가지 않아도 하나님은 동행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늘 보고 계신다는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고 계신다는 것을 든든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무서운 밤길을 간다고 해도 아버지 손을 잡고 가면 무섭지 않듯, 하나님이 나를 보고 계시고 함께 계신다고 한다면 무엇이 무섭겠습니까? 누가 나를 건드리겠습니까? 믿음의 선친들이 그렇게 당당하게 복음을 전파했던 것도 다 하나님이 나를 지켜보고 계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이 사자굴 속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도,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가 불 속에 들어가는 것을 겁내지 않았던 것도, 스데반이 돌에 맞을 때도 담대할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이 나를 지켜보고 계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린 아이가 골목에서 큰 아이들을 만나도 큰소리칠 때가 언제입니까? 뒤에 아버지가 따라올 때입니다. 아버지가 따라 옴으로 행동의 제약을 받는다고 생각지 말고, 든든한 백그라운드라고 생각하십시오.

지금도 하나님은 당신을 보고 계십니다. 당신의 마음까지 헤아리고 계십니다. 구약에는 간음해야 죄를 지은 것이나 지금은 음란한 생각만 해도 간음죄가 됩니다. 지금은 누구를 죽여야 살인죄가 적용되는 때가 아니라 누구를 미워해도 살인죄에 해당됩니다. 고로 하나님 앞에 행동뿐이 아니라 마음까지, 생각까지 깨끗하고 바르고 정직하게 가져야 합니다.

아무도 모르게 헌금 궤에 두렙돈을 넣었던 과부를 보신 하나님,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던 나다니엘의 마음까지 읽으셨던 하나님, 뽕나무 위에 올라가 있던 삭개오를 찾으셨던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을 보고 계십니다. 당신의 언행심사는 물론 믿음까지 다 보고 계십니다.

우리는 관객 앞에 서 있는 배우입니다. 객석에 불이 꺼져 있어 안 보인다고 절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늘 바르고 정직하게 깨끗하게 삽시다.

오늘은 과거의 종착역이며 내일의 시발점이다

정직하고 분명하면 떳떳하고 당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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