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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일의 가치를 아는 자가 성공한다 (막10 : 46 ~ 52)

242호 · 2004-10-13

남편이 아내를 위하여 꽃가게에서 만 원어치 장미를 샀다고 칩시다. 물론 그것은 만 원어치의 값어치를 가진 꽃다발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내의 손으로 전달될 때 그것의 값은 절대 만 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값을 뛰어넘는 가치를 창출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아내의 마음을 사는, 값으로 측량할 수 없는 놀라운 가치를 낳은 것입니다.

이와 같이 값과 가치가 절대 비례하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의 것들은 대체로 가치가 높을수록 값이 비싼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예외도 있습니다. 그런 법칙이 파기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주신 구원과 영생이 그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피를 흘려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죄인이었던 우리를 의인으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에게 새생명을 주셨습니다. 그것도 값없이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값없다고, 거저 주셨다고 가치가 없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값없다함이 값이 싼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요, 무가치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값으로 측량할 수 없기에, 절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기에 거저 주신 것입니다.

가치란 곧 효율성, 유익성, 활용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거듭나고, 예수의 이름을 소유하면 권세와 능력이 따라옵니다. 그러나 그 이름을 소유하고만 있으면 구원받는 믿음의 경지에 이를 수는 있으나 은사적인 믿음에는 도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경지에 이른 자는 그 이름을 활용하여 엄청난 가치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악한 것들을 내어쫓을 수 있어 만사가 평안하고, 경내가 편안하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을 소유하고 있으나 그 가치를 모르기 때문에 활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돈의 가치를 몰라 돈을 두고도 궁색하게 사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예수 이름 앞에는 하늘의 것과 땅의 것, 그리고 땅 아래 있는 것들이 다 무릎을 꿇게 되어 있습니다. 또 예수 이름으로 구하는 모든 것은 다 얻게 되어 있습니다. 이는 예수 이름으로 구할 때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 이름보다 귀한 것이 없고, 예수 이름보다 값진 것이 없고, 예수 이름보다 아름다운 것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구하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도 얻을 수 있습니다. 솔로몬이 오직 지혜만을 구하였더니 부(富)와 명예와 장수가 따라 온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지혜의 가치란 이처럼 대단한 것입니다. 그 대단한 지혜가 어디서부터 옵니까? 바로 하나님에게서부터 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 이르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제가 세계 70여 개국에 나가 어떻게 복음을 전합니까? 바로 예수 이름의 권세를 가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 이름으로 병든 자를 고치고, 꼬부라진 것을 펴고, 죽은 것을 살리는 것입니다. 예수 이름의 가치를 모르는 자, 그 자가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자요, 무식한 자인 것입니다.

왜 돈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을 무시하는 줄 압니까? 거저 주니까, 값이 없으니까 관심이 없고, 별 볼일 없다 생각하는 겁니다. 만일 예수의 피 값이, 예수의 이름을 소유하는 값이 수천만 원, 아니 억대라고 한다면 아마 줄을 설 겁니다. 쌍코피 터져가며 덤벼들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예수는 가난하고 소외되고 병든 자를 찾아오셨기 때문에 자신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지 않으시고 값없다 하심으로 거저 주신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저 그 은혜에 할말을 잊을 뿐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예수 이름의 가치가 창출되지 않는 것은 잘못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실질적이며, 구체적인 것을 구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 삶 속에 예수 이름의 가치가 나타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가끔 대표기도를 하라고 하면 사람 들으라고 폼 잡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높고 높은 보좌에서 이 낮고 천한 자리에 오신 예수여.” 이렇게 미사여구를 쓰며 장황한 기도를 하는 자들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러실 것입니다.

“그래,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네 용건이 뭐냐?” 기도란 사람 들으라고, 아니면 누구 훈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형편과 사정을 아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것, 꼭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할 것을 구해야 합니다. 제 아들 녀석이 제게 무엇을 요구할 때 “예루살렘 교회 총회장 되신 이초석 목사님!” 이러지 않습니다. 그냥 “아버지!” 라 부르고 용건을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을 멀리 계시는 ‘여호와’라 생각하면 안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지엄하시던 여호와 하나님이 친아버지가 되셨으며, 그 이름이 성령으로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 아버지께 무엇을 숨기며, 구하지 못할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의 바디매오는 예수의 가치를 분명히 알고 있었기에 ‘다윗의 자손 예수여’라고 불렀으며, 그가 가장 절실하며 필요한 것을 구한 것입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예수께서 물으실 때 그는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들으시고 예수는 곧 그를 고쳐주셨습니다. 그가 만일 예수가 메시아요, 구원자임을 몰랐다면 그는 그의 아비 디매오처럼 몇 푼의 자비를 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디매오는 예수의 가치를 제대로 알았기에 그의 소원을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외국 집회를 다니다보면 많은 어려움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먹을 것이 없을 때가 가장 난처해집니다. 먹어야 힘을 내서 집회를 할 텐데 당장 먹을 것이 시원찮으니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외국 집회에 나가기 전에 항상 이렇게 기도합니다. “이번 집회기간에는 풍성히 먹을 수 있도록 주시옵소서.” 그러면 하나님은 어김없이 우리 선교일행에게 최고 좋은 것으로 풍성하게 먹을 것을 주십니다. ‘뭐 쩨쩨하게 그런 것까지 하나님께 구할 수 있냐?’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주님이 가르쳐준 기도에도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소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어떤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까? 중언부언(重言復言)하는 기도가 뭔 줄 압니까? 심중에 있는 기도를 하지 않고 언저리만 뱅뱅 도는 기도가 그것입니다. 외식하는 바리새인 기도 같은 것이 중언부언 기도인 것입니다. ‘돈을 주세요.’, ‘집을 주세요.’, ‘직장이 필요합니다.’, ‘배필을 주세요.’ 이렇게 구체적으로 필요한 것을 구하세요. 그러면 하나님이 주실 것입니다. 사막에서 다이아몬드는 무가치한 것입니다. 사막에서 가장 절실한 것은 오아시스인 것처럼, 지금 필요한 것을 구하십시오.

성공하기를 원하십니까? 성공하려면 가치 있는 것에 투자를 해야 합니다. 가장 확실한 투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 하는 것입니다. 이것보다 큰 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없습니다. 주를 위해 당신의 시간을, 물질을, 당신을 투자한다면 엄청난 부가가치를 얻게 될 것입니다. 이 땅에서 잘 되고, 강건한 축복은 물론 내세에 가서도 예수님과 한 자리에서 떡을 떼는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

값은 없으나 가장 귀하고 가장 값진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 들이고, 그 이름의 권세를 활용하여 우리 삶 속에서 살아 계신 예수를 나타내 보입시다. 값없다는 것이 값싼 것이 아님을 알고 늘 감사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합당한 자들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할렐루야!

개 돼지에게 진주를 주지 말라 가치를 아는 자에게 맡겨라

죽을지언정 포기하지 않을 가치있는 일을 소유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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