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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호 목차 › 선교기행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242호 · 2004-10-13

우리는 키르기스스탄에서 참 귀한 경험을 하였다. 집회기간 내내 총회장 목사님을 차로 운전해 준 에르킨 집사의 초청을 받아 비슈케크 도착 이튿날, 우리는 비슈케크 교외에 위치한 에르킨 집사의 별장에서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다.

한쪽에는 만년설이 펼쳐져 있고, 그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 동네 어귀에서 한가로이 놀고 있는 소 떼의 울음소리, 정말 정겨운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은 집 뜰 울타리 밖 텃밭 같은 곳에 자리를 깔아놓고 그 위에 각양각색의 음식을 차려놓았다.

눈은 시원한 전원풍경을 바라보고 귀는 계곡물소리를 들으며 맛난 음식을 먹는 기쁨이란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다. 식사가 끝나자 에르킨 집사는 산책을 하러 가잔다. 먹은 걸 좀 소화시키고 다녀와서 진짜 맛있는 요리를 주겠다나? 총회장 목사님 말씀처럼 눈도 먹여주고 귀도 먹여주고 발도 먹여줘야 한다는 말이 실감났다. 하나님은 참으로 섬세하신 분이다. 일용할 양식으로 걱정하지 말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을 기억하시고 넘치도록 풍성하게 먹여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찬양하며 산책길에 나섰다. 해가 기울자 집으로 찾아드는 소 떼며 양 떼들이 길마다 가득하다. 계곡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 물소리를 들으며 산을 내려왔다. 산 속이라 그런지 해가 금세 지고 사위가 어두워진다. 다시 동네로 돌아왔을 때는 완전히 한밤중이었다. 낮에는 따사롭던 날씨가 밤이 되니 으쓱으쓱 춥다. 이미 밖에 펼쳐있던 자리를 옮겨 방에다 음식을 가득 차려놓고 있었다. 에르킨 가족과 우리 일행이 둘러앉아 양고기 파티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그때 에르킨 집사가 양머리를 들고 들어왔다. 순간 우리는 멈칫했다. 양머리를 들고 칼을 잡는 모습이 너무 낯선 장면이었기 때문일까? 그러더니 에르킨 집사가 칼로 양머리의 귀를 자르며 이것은 주인이 먹는 거란다. 소리를 잘 들어서 늑대나 이리로부터 양 떼를 지켜야 한단다. 그리곤 눈을 빼서 친구에게 준다. 친구들이 자기들 양 떼만 보지 말고 우리 양 떼도 지켜봐 달라는 의미란다. 구수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며 양머리를 잘라가는 에르킨 집사의 모습이 왠지 슬슬 정겨워진다.

드디어 양의 얼굴 가죽을 벗기고 골을 파내더니 국에 조금씩 담아 돌린다. 이것은 모든 식구들이 돌려 먹고 머리가 좋아져야 한단다. 마지막으로 혀를 잘라 다듬더니 이것은 아가씨가 먹어야 한다며 우리 송 전도사에게 준다. 여자들이 말을 잘해야 현숙한 여인이 된다나? 구구절절 해석이 참 기가 막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그 엽기적인 요리들을 피할 수 없었다. 음식을 건네주고 말똥말똥 쳐다보는데 어찌 거절할 수 있겠는가.

아주 맛있게 먹어치우는 수밖에. 이것이 선교를 다니는 자의 의무 아니겠는가. 양은 정말 버리는 것이 없었다. 털로, 고기로, 머리까지. 총회장 목사님은 양을 통째로 먹으라는 하나님의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귀한 이야기를 들었다며 에르킨 집사가 양 머리를 여기저기 자르며 설명해 갈 때마다 무릎을 치셨다.

끝으로 가족 대표가 나와 노래를 한마디 하더니 국 사발을 건네며 노래 한마디를 하란다. 못할 거면 그 사발에 있는 국을 다 마셔야 한다나? 고된 선교여행에 이런 휴식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다. 집을 나서자 캄캄한 하늘에 별들이 총총히 박혀 쏟아져 내리고 계곡의 물소리가 더욱 크게 들려온다. 이국의 낯설음도 이 대목에선 마냥 정겨움으로 다가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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