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은 곧 생명이다
카자흐스탄의 수도 알마아타로 가는 길에 끝없이 펼쳐진 중앙아시아의 대평원은 마른 풀포기들만이 모래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약 5시간을 차로 달리는 동안 눈앞에 펼쳐진 영상은 그저 끝없는 광야뿐이었다.
‘모세가 200만의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가던 곳이 이러했겠지.’ 하는 생각이 들자 성경에 기록된 그 지난했던 역정들이 눈에 그려지는 듯했다. 알마아타는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시켄트나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와는 달랐다. 규모면에서나 도시환경에서나 발전 속도에서나 마치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를 연상케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도시의 인구 50% 이상이 러시아인들이라고 한다. 카자흐스탄 원주민들보다 러시아에서 흘러들어온 이방인들이 더 많은 셈이다. 그리고 카자흐스탄 정부가 국가발전을 목표로 거의 무제한적인 개방정책을 시행하고 있어 중앙아시아 국가 중 그 어느 곳보다 도시의 활력이 넘치고 있었다. 곳곳에서 건축과 개발의 힘찬 굉음이 울리고 도시의 공기도 자유가 넘쳐 보였다.
알마아타 시내로 진입하니 슬라바 목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누군가 했더니 지난 라트비아 리가 집회 때 만났던 고려인 3세 사업가 ‘콘스탄틴 최’였다. 그는 지난 7월 리가의 세미나 장에서 아들과 함께 찾아와 총회장 목사님과 만났었는데, 그때 말하기를 카자흐스탄에 오시면 꼭 대접하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런데 정말 약속대로 그는 고급 벤츠 승용차를 몰고 나와 총회장 목사님을 직접 모시며 우리 일행에게 연일 최고의 음식으로 대접해 주었다.
그는 집회 도중 미국에 가게 되었는데 그는 떠나가면서도 우리가 떠날 때까지 먹고 마시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모든 조처를 아끼지 않았다. 여러 나라를 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지만 성공자들은 역시 삶의 자세가 다르다. 성공자들은 약속을 생명으로 안다. 그러한 신뢰를 공고히 쌓았기에 성공에 이를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성공한 자들의 가치를 인정해 주고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그들에게 배워야하는 이유는 바로 그런 기반을 쌓기 위해 그들이 기울인 노력과 땀이 결코 거저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관계나 사업관계에 있어 매순간 성실하고 정직하게 공고한 신뢰를 구축해 나갔기에 성공의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이다. 알마아타 집회를 배설한 빅토르 목사는 라트비아 리가의 알렉세이 목사가 이끄는 뉴 제너레이션 교회의 알마아타 지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러시아인이었다. 그도 라트비아 리가에 와서 총회장 목사님께 은혜를 받고 이번 집회를 열게 된 것이었다. 사실 정식 집회를 계획했던 것은 아니고 키르기스스탄을 다녀가는 여정에 알마아타에 아시아나 항공의 직항노선이 있어 들른다는 소식을 듣고 일일집회를 연 것이었다.
카자흐스탄 원주민들은 별로 찾아볼 수 없었고 대부분 러시아인들만이 참석한 집회였다. 이 집회 역시 동일한 역사 가운데 더러운 귀신들이 소리를 지르며 떠나갔다. 이튿날 귀로에 앞서 총회장 목사님은 빅토르 목사의 요청에 따라 목회자 세미나를 진행했다. 그런데 이 자리에 참석했던 한 고려인 목사가 있었다. 이름은 니꼴라이 현, 나이 60세. 그는 마치 한국인처럼 한국말을 유창하게 구사하고 있었는데, 총회장 목사님의 강의에 너무 큰 은혜를 받았다며 비록 나이는 늙었지만 총회장 목사님의 중앙아시아 사역에 도울 일이 있으면 적극 돕겠다고 나섰다.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한 것은 기억치 않으시나 우리가 기도한 것은 반드시 기억하고 응답하시는 분이다
그렇지 않아도 나빈 선교사가 우즈베키스탄의 제한적인 환경에서 힘들게 선교를 하고 있어 무대를 옮겨야 하지 않을까 하는 구상을 하고 있었는데 하나님은 적시에 사람을 준비하고 계셨던 것이다. 더구나 러시아말과 한국말을 유창하게 구사하니 우리에게는 꼭 필요한 인재가 아닐 수 없었다. 가는 곳마다 이렇듯 사람을 준비하시고 붙여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슬라바 목사도 그동안 한국말이 유창하지 못하여 한국의 영성세미나 때마다 늘 마음에 짐을 느꼈는데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고 기뻐했다.
귀로에 앞서 마지막 만찬을 하는 자리에서 우리는 나빈 선교사와 슬라바 목사로부터 기쁜 소식을 들었다. 지난 해 타시켄트 집회 때 멀리 테르메스(우즈베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접경지역의 광야)라는 곳에서 귀머거리에 벙어리인 한 여인이 3일 간이나 버스를 타고 집회에 참석하러 왔었다.
그런데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 안수도 받지 못하고 마냥 울며 기도만 하다가 돌아갔는데, 놀랍게도 돌아가는 차 속에서 갑자기 몸이 떨리면서 귀와 입이 열리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이 알려진 것은 테르메스 지역에 핍박이 거세지며 약 70여 명의 크리스천들이 투옥되었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러 갔던 세르게이 목사의 변호사가 감옥에서 그 여인으로부터 간증을 듣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지난 4월의 드네프로페트롭스크 집회 때 휠체어를 타고 왔던 청년이 집회를 마치고 볼따와의 집에 돌아가 다리가 완전히 펴지는 기적을 체험했고, 7년 간 들것에 누워있던 여인도 볼따와의 집에 돌아가 3일이 지났는데 그녀의 딸이 찾아가보니 어머니가 들것에서 일어나 집안 청소를 다해놓았더란다. 이 사건을 계기로 볼따와 지역에 우리 지교회가 서게 되었다고 한다. 정말 감격적인 이야기들이 아닐 수 없었다.
이것이 바로 사도행전이 아니고 무엇일까! 우리가 가는 곳마다 수많은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지만 주의 성령께서는 우리가 떠나도 믿는 자들과 함께 계속해서 역사하고 계셨던 것이다. 잊지 말라.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반드시 기억하고 응답하신다는 사실을.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한 것은 절대 기억치 않으시지만, 우리가 기도한 것은 반드시 기억하신다. 우리의 참 기쁨과 소망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