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의 아량을 가져라
에콰도르 집회에서도 다시 한 번 방송광고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방관자나 훼방자들과 일하시지 아니하고 적극적인 조력자들과 일하심을 여실히 입증해 주셨다. 어느 일에서나 거기에는 적극적으로 돕는 자가 있는가 하면 적극적으로 훼방하는 자들이 있고, 또한 ‘어찌되나 보자’ 하며 그저 방관하며 팔짱이나 끼고 있는 자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역사의 발전이나 진보는 결코 훼방자나 방관자들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은 일의 시작을 함께했으면 마지막까지 열정적으로 참여하여 열매를 거두는 자이다. 등정을 시작했으면 정상에 오를 때까지 묵묵히 참고 인내하여 정상 정복의 쾌락을 맛보는 자이다. 내 삶이나 내 목회에 늘 이런 철학과 자세로 임했기에 오늘의 내가 있고 우리 예루살렘 교단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일단 정상에 오른 정복자는 모든 세상을 품을 수 있는 포용력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 열매를 따먹고도 모자라 승리의 기쁨을 나누지 못하고 모두 소유하려는 욕심은 결국 다 얻어놓은 승자의 지분을 모두 잃게 만드는 첩경이기 때문이다.
이번 집회도 예외 없이 수많은 훼방자들과 방관자들이 나타나고 사라졌다. 그러나 지금까지 단 한번도 그들의 의도대로 우리 집회가 훼방 받아 취소되거나 실패한 적은 없다. 오히려 그런 와중에 더 소문이 나고 사람들은 더 몰려들어 성황을 이루곤 했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시기 때문이다.
이번 집회를 배설한 마누엘 목사는 크리스천 TV채널을 통해 매주 2회씩 1시간짜리 광고방송을 3개월 이상 계속해서 내보내고 있었다. 그로 인해 이곳 과야킬 시내는 이미 내가 도착하기도 전에 소동이 일고 있었다.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등을 돌리고 말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평신도 실업인들을 들어서 더 큰 일을 이루셨다. 집회는 대성황을 이룬 것이다. 그러자 집회가 끝나고 내 숙소로 일단의 목회자들이 찾아왔다.
집회를 반대했던 목사들이었는데 집회를 직접 목도하고는 회개하며 용서를 구하고 다음 집회를 요청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다. 그들은 마누엘 목사에게 축하한다고 말하고 자신들의 판단착오를 매우 면구스러워 했다. 그리고 다음에는 수도 키토에서 집회를 갖자고 제의했다.
그때 마누엘 목사의 표정이 그리 밝지 않아 보였다. 나는 예전의 칠레 란까구아 집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도 알렉스 목사는 집회를 대성공으로 이끌고 나서 잠시잠깐 혈기를 다스리지 못해 많은 목회자들을 잃었고, 결국 모든 열매를 수확도 하기 전에 된서리를 맞았던 적이 있었다. 나는 가만히 듣고만 있다가 마누엘 목사에게 말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을 하고, 하나님의 생각을 갖는다. 또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품는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사람의 말을 하고, 사람의 생각을 하며, 사람의 마음을 품기에 상처를 주고 욕심을 부리다가 결국 다 잃고 만다. 우리는 집회를 성공리에 마쳤다. 우리는 승자인 것이다. 승자는 모든 것을 품고 포용해 줄 수 있는 아량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저들이 깨닫고 이렇게 찾아와 자네에게 축하를 보낼 수 있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라고 보네. 나는 자네가 마음을 열고 저들을 품어 더 큰 일을 바라보는 승자의 아량을 가지기 바라네.”
마누엘 목사도 크게 깨달은 듯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고 함께 자리한 모든 자들도 깊이 깨닫는 느낌이었다.
우리가 더 큰 일을 바라보는 자세만 견지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품을 수 있고 또한 대업을 이룰 수 있으리라 믿는다. 목전의 이익으로 인해 소탐대실하는 자가 되면 안된다. 제발 마누엘 목사가 내 말을 잘 받아서 이 과야킬뿐만 아니라 에콰도르 전역을 복음화 하는데 선봉장이 되길 간절히 바라마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