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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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내 것이 최고야! (약 1:12 ~15)

237호 · 2004-09-08

해병대에서 군복무하던 때 일입니다. 해병대의 훈련강도는 여느 부대보다 고된 것으로 정평이 나있습니다. 그 훈련 도중 가끔 간식으로 빵을 주었는데 이상하게 제가 잡은 빵은 늘 옆 동료의 것보다 작아 보이는 겁니다. 그래서 ‘아 저걸 잡을 걸….’ 하고 내 빵과 동료의 빵을 번갈아 봐가며 후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한창 식욕이 왕성할 청년시절인데다 훈련으로 배가 고플 때였으니 그 신경전이 얼마나 치열했을지 상상되실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는 겁니다. 제 옆 동료는 제 것이 더 커 보인다고 자꾸 넘겨다보곤 했거든요. 정말 재미있지 않습니까?

남의 떡이 커 보이는 법입니다. 남의 잔디가 더 푸르게 보이고, 남의 밥에 있는 콩이 더 굵어 보이는 법입니다. 그 이유는 욕심 때문이고, 질투심 때문입니다. 남보다 좋은 것을 갖고 싶은 욕심, 남과 비교해서 이기고 싶은 질투심이 그 요인으로 작용한 것입니다.

조금 오래 전에 우리 교회 집사를 만났는데 그 집사가 제가 매고 있는 넥타이에 관심을 갖는 겁니다. “목사님, 넥타이가 너무 멋집니다.” 하도 그러기에 그것을 풀어주었습니다. 굉장히 기뻐하더군요.

그는 그 자리에서 자기가 매고 있던 넥타이를 풀고는 제 것을 매는 것이었습니다. 흐뭇해하고 있는 그에게 “그거 고속터미널 지하상가에서 3천 원 주고 산거야.” 했더니 그 집사 얼굴이 조금 전과는 다르게 일그러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목사님이 매신 거라 무척 비싼 건 줄 알았습니다. 제 것은 45,000원짜리인데 왜 목사님 것이 더 좋아 보였는지 모릅니다.” 이것의 원인은 마음의 노예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내 마음의 주인이 된 자는 내가 가진 것을 당당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내 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내 나라, 내 가족, 내 교회, 내 목자, 내 직장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을 하지 못하고 남의 것을 기웃거리기 때문에 불행한 것입니다. 행복이란 많이 가져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만족하고 감사할 때 나타나는 것입니다. 행복지수란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내 나라가 최고입니다. 내 나라에 대한 애국심과 자긍심이 없는 사람은 국민으로서 자격이 없다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외국에 나가 봐도 우리나라만큼 좋은 나라가 없습니다. 사계절이 뚜렷하고, 종교의 자유가 있으며, 이만큼 풍족한 나라가 정말 흔치 않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나라의 장점을 보는 것이 아니라 단점을 확대해서 보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의 긍지가 없는 것입니다. ‘땅덩어리가 작고, 교육환경이 너무 열악하고, 남북이 대치되어 있어 불안하다’는 생각이 지배하다보니까 이 나라에 불만이 쌓이는 겁니다.

내 가족이 최고입니다. 내 아내가 절세미인이 아니면 좀 어떻습니까? 미인소박은 있어도 음식솜씨 좋은 아내 소박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늘 맛있는 것을 만들어주고, 늘 세심하게 챙겨주는 아내가 최고 아닙니까? 알뜰하게 살아주면 대만족 아닙니까? 그 아내에 만족하고 감사하면 가자미눈 뜨고 다른 여자를 쳐다보는 일 따위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 내 남편이 비록 돈은 많이 못 벌어 와서 다이아몬드 반지는 못 끼었을망정 건강하고 성실한 것에 감사하면 내 남편이 최고로 보일 것입니다.

그런데 “옆집 여자는 남편이 모피코트 사줬대. 나는 코트 하나 변변한 것도 없는데….” 이렇게 비교하기 시작하면 내 남편이 우습게 보이고 작게 보이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비교해서 발전할 수 있으나 아내나 남편은 절대 비교의 대상이 아닙니다. 글쎄 비교하는 순간 제 빵이 작게 보이더라니까요? 또 내 부모가 비록 행상을 할망정 나를 사랑해 주고 함께할 수 있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내 자녀가 우등생은 아니더라도 속 안 썩이는 것에 감사한다면 가정이 말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입니다.

내 교회가 최고입니다. 저는 가끔 성도들에게 묻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러면 어떤 사람은 링컨이니, 이순신이니 이러는 겁니다. 저는 그럴 때 이렇게 가르칩니다. “아니, 자기를 낳아주신 부모님을 존경하지 않고 누굴 존경합니까?” 또 “세계에서 가장 좋은 교회가 어디입니까?” 그러면 우리 성도들이 “예수중심교회입니다.”라고 답합니다. 그러면 또 제가 묻지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목사는 누굽니까?” 그러면 우리 성도들이 일제히 “이초석 목사님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별 걸 다 시킨다고 웃으십니까? 절대 웃을 일이 아닙니다.

자기 교회에 대한 자부심이 없이 어찌 그 교회를 섬길 수 있습니까? 자기 목자에 대한 사랑과 신뢰, 그리고 자부심이 없이 어찌 따라갈 수 있습니까? 우리 교회와 목자에 대한 긍지가 없으면 다른 교회로 가야 합니다.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교회와 목자를 찾아 가야 한단 말입니다. 그래야 내 영이 살 것 아닙니까?

저는 우리 성도들이 세계에서 가장 좋은 성도이며, 가장 자랑스러운 성도라고 자부합니다. 그래서 어딜 가든지 우리 성도들을 자랑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기도를 많이 하는 성도’, ‘가장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 ‘가장 순종을 잘하는 성도’라고 자랑하고 다닙니다. 그래서 많은 목회자들이 우리 성도들을 만나보고 싶어합니다.

내 회사가 최고입니다. 어떤 사람의 이력서를 보면 이력이 화려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여기서 조금 있다가 저기가 좋다하면 저기로 옮기고, 저기 조금 있다가 다른 곳에서 보수가 좋으면 다시 다른 곳으로 옮기는 철새와 같은 자입니다. 그들은 둥지 없는 새와 같아 겨울이 오면 얼어 죽게 되어 있고, 뿌리 없는 나무와 같아 비바람에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회사가 그런 사람을 신뢰하겠습니까? 둥지가 없으니 알을 낳을 수 없고, 뿌리가 없으니 높이 자랄 수 없는 것은 당연지사인 것입니다.

내 직업이 최고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그에게 맞는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그것이 어떤 것이 되었든지 내 직업을 천직으로 여긴다면 그 분야에 최고가 될 것입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최고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당신의 독생자를 아낌없이 주신 하나님, 그리고 그 아버지의 뜻을 따라 순종하여 낮고 천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묵묵히 십자가를 지고 우리 죄를 대신 하여 주신 예수 그리스도. 누가 나를 위해 대신 자신의 아들을 주겠으며, 누가 내 대신 죽어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외는 아무도 그럴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죽을 몸이 영원히 사는 몸으로, 천한 몸이 존귀한 몸으로 되었는데 어찌 그 이름을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잠시 받는 고난 앞에 하나님을 팔아버리는 자들, 핍박이 두려워 예수의 이름을 버리는 자들,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신앙의 지조를 버리고 타협하는 자들,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라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하나님이 최고이심을 인정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내가 그 분을 최고로 인정하면 그 분도 나를 최고로 인정하실 것입니다.

‘남의 고기 한 점이 내 고기 열 점 보다 낫게 보인다’고 합니다. 이것이 다 욕심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내 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게 가장 좋은 것으로, 가장 합당한 것으로 주셨습니다. 그것에 만족하고 감사해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살 수 있고, 뱁새가 황새를 좇아가면 가랑이가 찢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과한 욕심을 버리고 내게 있는 것으로 감사합시다. 욕심이 과하면 죄를 짓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에 이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섬기는 예수 그리스도가 최고인 것을 잠시도 잊지 맙시다. 그 분만이 나의 구원자시며, 동역자시며, 친구가 되심을 기억하여 마지막까지 잘 갑시다.

남의 떡이 더 커보이는 것은 욕심이 잉태되었기 때문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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