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에 성공해야 인생에 성공한다 (요 4:23~24)
주일예배를 마치고 성전 앞에서 목사님이 성도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 집사가 목사님을 보고는 달려가 두 손으로 목사님의 손을 잡으며 말했습니다. “목사님, 오늘 설교 너무 좋았습니다. 정말 설교 잘하셨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정색을 하며 말했습니다. “집사님은 오늘 예배를 보러 오셨군요. 관람 평을 아주 잘하십니다. 관람료는 많이 내셨습니까?”
당신도 예배를 보러 교회에 나가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교회 문을 나서기가 무섭게 목사 설교는 어디가 틀렸고, 성가대 수준은 어떻고, 장로 기도는 앞뒤가 안맞고 하는 관람 평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헌금을 관람료 내듯 던지고 말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지만 예배는 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겁니다. 예배란 예도 예(禮)와 절 배(拜)로 ‘허리를 굽혀 예를 갖춘다’는 뜻이니 곧 신령과 진정을 다해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대상16:29).
세상의 왕이나 대통령을 만나러 간다고 가정해 봅시다. 아니 그게 너무 과한 가정이라면 누군가의 결혼식에 간다고 해봅시다. 그때 적어도 있는 옷 중에서 좋은 옷을 찾아 입고, 머리도 다른 때보다는 신경 쓰고,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던 반지라도 하나 끼고 갈 겁니다. 그런데 만왕의 왕을 알현하는 주일에 당신은 어떻습니까? 입고 있던 옷에 슬리퍼 끌고 느지막이 와서 대충 때우고 가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이 이를 가납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인격자십니다.
감정이 있다는 겁니다. ‘네가 대우한대로 나도 너를 대우하리라.’ 하십니다.
미국에서는 주일의 명칭이 지난 백 년 동안 네 번이나 바뀌었습니다. 백 년 전에는 ‘거룩한 안식일(holy sabbath)’이라고 불렸는데, 약 60년 전부터는 ‘안식일(sabbath)’, 약 30년 전부터는 ‘일요일’(sunday), 지금은 보통 ‘주말’(week-end)라 부릅니다. 이는 미국인들의 신앙의식의 변화를 단적으로 말해 주는 겁니다. 주일이 ‘하나님의 날’에서 휴식의 날로 변화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는 필경 미국의 경우만은 아닙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마다 예배시간이 짧아지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입니다. 예배시간이 길면 성도가 떨어질까 간단하게 드린다는 겁니다. 바쁜 세상에 긴 예배가 대수냐, 얼른 예배드리고 갈 데가 많다는 겁니다. 이것이 말이 됩니까? 대통령을 만났는데 바쁘니까 먼저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습니까? 모처럼 쉬는 날이니까 악수나 하고 헤어지자고 할 수 있냐는 겁니다. 주일(主日)은 주님의 날, 바로 우리 주인의 날입니다. 쉬는 날이 아닙니다. 그날은 주인의 낯을 뵙는 날이니 가장 기쁜 날이며, 가장 예를 갖춰야 하는 날입니다.
예배의 성공은 곧 인생의 성공입니다. 솔로몬이 받은 지혜와 축복이 어디서 비롯되었습니까? 일천 번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일천 마리의 소로 일천 번제를 드림은 곧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한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에게 전에도 없고 후에도 없는 지혜와 부유가 넘친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 안에 거했던 이유도 이것입니다. 여호와의 궤가 다윗성에 들어올 때에 다윗이 자기의 몸이 드러날 정도로 여호와 앞에서 뛰고 춤추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아내 미갈이 비웃었지만 다윗은 개의치 않고 여호와를 기쁘게 했습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여호와를 찬양했기에 하나님이 다윗을 애지중지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온전히 드리는 자에게 하나님은 넘치도록 은혜를 부으시며 복을 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에 성공하면 세상에서도 성공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다 실패해도 예배에 성공해야 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제가 몇 년 전에 뇌출혈을 일으켜 눈이 거의 실명위기에 처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가 맞을 짓을 했습니다. 외국 집회 중에 여러 가지 복잡한 일로 노심초사하고 있었는데 속을 썩이던 어느 목사가 저도 모르는 예배시간을 일방적으로 잡아 놓고는 와달라는 것입니다.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있던 저는 그에게 “내가 거기 예배드리러 온 줄 아느냐?”고 소리를 버럭 지르고는 대충 예배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왔는데, 그날 밤 제가 하나님께 한 방 얻어맞은 겁니다. 예배를 대충 드린 대가입니다.
그후로 저는 단지 몇 명이 모였어도 절대 예배를 대충 드리지 않습니다. 구약시대 때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는 심정으로 오늘을 마지막으로 알고 최선을 다합니다. 하나님이 저를 지켜보고 계시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를 지켜보는 하나님이 당신을 보고 계십니다. 어떤 마음으로 예배에 오는지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십니다. 슬리퍼 신고 오는 게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새 옷을 입으라는 말은 더욱 아닙니다. 마음이 문제입니다. 예배드리려고 옷을 빨고 다리면 그때부터 예배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런 자에게 하나님이 어찌 은혜를 퍼붓지 않겠으며, 복을 빌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지 못해 몸살이 나신 분입니다. 조금만 잘하면, 조금만 노력하면 예뻐서 어쩔 줄을 몰라 하십니다. 그런 그 분이 하나님을 뵈려고, 하나님을 경배하려고 전날부터 몸과 마음을 정비하는 당신에게 어찌 사랑과 은혜를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런 자에게 어찌 복을 안주시겠습니까?
주일에 끌려온 소처럼 어쩔 수 없이 예배에 참석하고, 아니면 놀러갈 계획 세워놓고 잠시 출석체크나 하러 오는 것은 예배라고 할 수 없습니다. ‘너희가 눈 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너를 가납하겠느냐’(말1:8).
예배에 성공하면 생수의 강이 넘칩니다. 생수의 강이 넘치면 인생이 풍성하게 됩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인생이 늘 푸르러 마르지 않을 것이며, 많은 열매가 맺을 것입니다. 또 예배에 성공하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그래서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으로 이기며, 환난 날에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일의 소망을 주신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형식적인 행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뵙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예배를 만홀히 여기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만왕의 왕이십니다. 그 분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진정과 신령으로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은 흠향하십니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시29:2).
그렇다고 예배시간이 군주 앞의 백성처럼 무거울 필요는 없습니다. 아버지 앞에 예의를 갖추나 자유한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그것도 친정아버지 말입니다. 아무렇게나 하라는 말이 아니라 자유하라는 것입니다.
이제 예배시간에 늦지 맙시다. 준비되고 설레는 마음과 차림새를 갖춥시다. 그러면 예배는 성공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쏟아질 것입니다. 솔로몬과 다윗처럼, 에이브라함 링컨이 예배에 늦지 말라는 어머니의 유언을 지켰더니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이 되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이번 주일에 달라진 여러분들을 기대합니다. 할렐루야!
대접을 받고자 하면 먼저 남을 대접하라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악을 선으로 이기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