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인도의 영혼들을 찾아서
마하트마 간디와 힌두교의 나라 인도. 인구 10억의 대국 인도가 문을 열고 있다.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강국으로 발돋움하고 있지만 인도는 아직도 깨지지 않는 카스트 계급제도의 오랜 구습과 우상숭배에 짓눌려 대중의 삶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엄청난 빈부의 격차와 통제하기 어려운 무질서, 비위생적인 환경이 인도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그 옛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도마가 복음을 전하다 순교한 땅이지만 기독교 인구는 아주 미미한 수준이다. 힌두교, 이슬람교, 불교 등의 영향력 아래 오랜 사회통제규율이 자리 잡고 있어 기독교의 복음은 이들에게 사회전반을 뒤엎는 혁명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완악한 땅에 그리스도의 현재성을 보여주는 것 외에 달리 어떠한 선교전략이나 전술이 필요하겠는가! 바로 강력한 성령의 역사만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에, 우리 교단이 중앙아시아의 회교 국가들에 이어 인도를 공략하게 된 것이다.
성령의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각색 질병을 고쳐주고 가난과 저주와 고통을 몰아내는 권세 있는 새 교훈만이 회교권과 이방신들의 나라 인도를 확실히 장악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번 인도 1차 집회는 지난 2002년 한국의 영성세미나에 참석했던 캐나다의 론 목사와 인도의 나약 목사를 통해 점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짧지만 많은 해외 선교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사전에 현지 조사 및 정지 작업이 필요함을 절감했다.
그리하여 사람을 찾고 있던 중 홍콩에서 사업에 매진하고 있는 임윤석 형제가 인도 현지조사를 자원하고 나섰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자신의 바쁜 사업 일정을 전폐한 채 자원하여 나선 것이다. 사실 인도 첫 집회가 진행될 도시는 오리사 주의 나와랑푸르(Nawa-rangpur)라는 도시였다. 이 지역은 아직도 여러 부족들이 작은 마을을 이루고 원시적 삶을 살고 있는 곳이다.
하여 각 마을을 돌며 전도하고 이들을 집회 장소까지 차로 데려와 숙식을 제공해야 했다. 이 지역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루터란 교단 측과 현지 목사들은 처음에는 집회 장소를 제공하는 등 협조를 아끼지 않을 듯이 보였지만 결국 그들의 기득권에 어떠 침해도 용납지 않겠다는 자세를 드러내고 말았다. ‘귀신도 쫓지 말라, 할렐루야도 외치지 말라, 미사형식으로 집회를 진행하자’며 동원될 인원에 따라 돈을 요구하고 나서는 것이었다. 이것은 아니었다. 결국 총회장 목사님은 집회 취소를 명령했다.
나와랑푸르 지역에서 철수한 현지 집회준비팀은 나와랑푸르에서 60km 떨어진 자그달푸르(Jagdalpur)지역으로 이동하였다. 모든 준비를 새로 시작해야 했다. 예정된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고 준비도 미비했다. 나약 목사를 비롯한 현지 집회 준비팀은 큰 난관에 봉착하였지만 희망을 잃지 않았다.
임 형제는 특유의 뚝심으로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감리교단과 현지 국회위원 등 지역유지들의 협조를 끌어내고, 하루 30~40km의 강행군이 시작되었다. 자전거, 오토바이 및 2대의 지프차로 선교팀을 모두 6~7개 팀으로 나누어 나와랑푸르가 있는 오리사 주와 자그달푸르가 있는 체티스커 주 각 마을로 보내 군사 작전을 방불케 하는 치열한 노력으로 전도에 매진하였다.
지극히 약한 자를 들어 큰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마치 어린 나귀처럼 순종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대역사를 준비하고 계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도 첫 집회의 장을 이렇게 열어주셨다. 지극히 약한 자를 들어 큰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마치 어린 나귀처럼 순종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대역사를 준비하고 계셨던 것이다.
총회장 목사님을 비롯한 우리 일행은 5월 4일 새벽, 인도 서부의 인도양 연안도시 뭄바이(Mumbai)에 도착하였다. 공항에는 이번에 집회 준비를 위해 헌신적으로 수고한 임 형제가 나와 있었다. 약 4시간을 기다려 국내선으로 갈아타고 ‘바이작’이란 휴양도시에 도착하였다. 나약 목사 일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3대의 지프차로 갈아탄 우리는 동쪽으로 약 300km 떨어진 자그달푸르를 향해 10여 시간을 달려야 했다. 도로 사정이 매우 열악하여 밤늦게야 집회도시인 자그달푸르에 도착하였다. 성도들의 열렬한 환영과 만찬이 이어졌다. 그들은 꽃으로 만든 목걸이를 걸어주고 발을 씻어주며 정말 그리스도를 대접하듯 우리 일행을 맞아주었다. 집회를 헌신적으로 도운 지역 국회의원과 감리교단 총회장, 오순절 교단 목사들도 자리를 함께 해주었다.
이튿날 집회장소에 가보니 대형천막과 단상, 앰프 및 스피커 시스템 등이 설치되고 있었다. 총회장 목사님은 수만 명이 운집할 예정이라는 준비팀 측의 보고를 접하고 천막철거를 지시했다. 며칠 밤을 지새우며 설치한 천막이 철거되기 시작했다. 대역사를 이루고자 하는 자는 궁극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떠한 변경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총회장 목사님의 지론이다.
오후가 되자 각 지역으로 성도들을 실으러 나갔던 대형트럭들이 속속 집회장으로 도착했다. 이들은 감리교단 소유의 집회장 내 건물에 각각 수용되어 집회기간 동안 숙식을 제공받게 된다. 인도 전통의상을 울긋불긋하게 차려입은 부족민들이 연이어 집회장으로 몰려들었다. 정말 정겨운 풍경이었다.
저녁 8시, 운동장 가득 불을 밝힌 가운데 집회시작에 앞서 대형 스크린에 총회장 목사님의 해외집회 실황을 담은 영상물이 상영되었다. 용신할 틈없이 집회장을 가득 메운 수만 인파는 숨을 죽이고 영상에 몰두하였다. 그리고 잠시 후 영어(임훈 박사)와 인도어(마태 전도사) 통역을 통해 총회장 목사님의 인도 첫 집회가 시작되었다. 우상의 땅 인도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이 선포되는 순간이었다. (다음주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