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호 목차 › 붕우칼럼
효는 실천이다
219호 · 2004-05-04
고려시대, 고려장이 있던 시절 이야기다. 아들이 노모를 지게에 메고 산 속 깊이 들어갔다. 아직은 어린 아들과 함께 산중에 들어온 아들이 어미를 내려놓고는 하직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어린 아들이 지게를 낑낑거리며 어깨에 들쳐 메는 것이다.
아비는 “왜 지게를 메느냐?” 하자 어린 아들은 “나중 아버지도 늙으면 여기로 모셔야 하는데 그 때 써야죠.” 아비는 깜짝 놀랐다. “아, 나도 늙는구나.” 그래서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충신 집안에 충신 나고, 효자 집안에 효자 난다’고 했다. 효가 이렇듯 내림인 까닭은 효란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본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곧 효(孝)란 실천이다. 효에 대한 강령보다 효를 실천하는 것이 산 교육인 것이다.
요사이 고려장 뺨치는 심각한 사태가 일고 있다. 부모를 양로원에 맡겨 버리거나 부모학대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한다. 그런 자들에게 나는 엄히 경고하고 싶다. “너희도 곧 늙는다. 너희가 애지중지하는 그 아이들이 너희를 양로원에 던질 것이며, 너희를 학대할 것이다.”
하나님도 효하는 자에게 부귀와 장수를 주신다고 했다. 효는 마땅한 도리요, 의무다. 곧 사람의 근본이다. 근본 즉 기초가 삐딱한 곳에 무엇을 세워봐라. 다 무너지는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일 아니겠는가.
믿음의 형제·자매들이여, 보이는 부모에게 충실하지 못하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효한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요,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오늘 부모를 잘 모셔라. 내일 네가 효를 받게 되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