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한 건강을 위한 7가지 습관 - 스트레스 관리와 마음의 평안(6)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1:2)
아프리카로 간 두 명의 신발 판매원이 있었다. 거기서는 아무도 신발을 신지 않는다는 사실을 둘 다 알게 되었다. 한 사람이 말했다. “여긴 팔 곳이 없어. 나는 돌아갈래.” 그러나 다른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여긴 엄청 큰 시장이야. 나는 백만 켤레의 신발을 주문했어.”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자, 옳은 사람도 그른 사람도 없다.
아프리카에서 신발을 신지 않는다는 사실은 우리가 만든 의미 외에는 아무 다른 의미가 없다. 그들은 단지 각자 만들어 낸 비전이나 전망을 통해서 그들의 상황을 받아들인 것이다. 한 세일즈맨은 “맨발”을 성공의 기회라고 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다른 세일즈맨은 “맨발”을 절망으로 간주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태도와 경험의 개척자이다. 우리는 우리가 세계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선택에 따라 그러한 세계를 설계하게 된다.
어느 날 어떻게 내가 스스로 만들어 낸 해석으로 인해 거의 기분이 안 좋아 스트레스를 받을 뻔 했었는지 말해주겠다. 나는 내 아들에게 자기 방을 청소하라고 했다. 그는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지만 내가 그의 방에 갔을 때 방은 청소가 되어있지 않았다. 나는 막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즉시 나 자신에게 물었다. “나는 어떤 의미로 이것을 보고 있는가?” 내 생각은 이렇게 외쳤다. “그 녀석은 나를 존경하지 않아.” 여러분의 아들에게 방 청소 좀 하라고 했는데 청소가 되어 있지 않다고 가정해보라. 여러분은 어떠한 해석을 하겠는가? 여러분은 그가 아마 잊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가 게으른 아이라고 생각했거나, 아니면 나중에 청소할 작정이겠지 라고 생각을 했거나, 혹은 아마도 청소를 했지만 그 아들은 그만하면 된 것으로 여긴다고 생각해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중에, 나는 내 아들이 방과 후에 청소할 예정이었다는 것을 그로부터 알게 되었다. 그의 지저분한 방은 단지 “지저분한 방” 만을 의미하는 것이지 아무 다른 의미가 없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의 부재”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나는 그것이 단지 나의 해석이었음을 깨달았다.
내가 나의 해석이 진리나 사실인 것처럼 집착하고 있었다면 필요 없이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우리는 변화할 수 있다. 우리는 달라질 수 있다. 우리는 지나온 내력에 도전할 수 있다. 우리의 관점을 바꾸고 믿는 바를 바꿈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다. 이럴 때에 믿는 바에서 오는 우리의 태도, 생각, 느낌, 그리고 행동을 바꿀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선택권을 주셨다. 선택은 우리에게 달려있다.
